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강경석 외 지음, 이기훈 기획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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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기간 시위, 대규모 인파, 그러면서도 쓰레기 하나 남지 않는 촛불혁명!  돌도 되지 않은 아가 때문에 현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8시 소등으로, 인터넷 방송 생중계로 마음으로나마 동참햇었다.

쏟아지는 말들과 공연들, 이게 정말 시위인가 싶을 만큼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장기 시위를 구경하기 위해 전망 좋은 호텔들 객실이 동이났다는 말을 실감 또 실감했다.

 

시민혁명의 고장 프랑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저 촛불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IT 기술까지 동원한 핸드폰 액정 촛불과 LED 촛불의 아이디어는 또 어떻고!

 

우리 국민에게는 대체 어떤 유전자가 있기에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촛불혁명이라는게 가능했을까?

 

어줌짢은 지식으로 추적에 들어갔다. 소작농의 고된 서러움과 억울함을 마당놀이와 가면극에 기대어 웃음과 해학, 풍자로 승화시킨 가면극과 마당놀이가 그 한 몫을 담당했겠지?

 

역사적으로 보자면 동학혁명과 3.1운동, 광주항쟁 같은 약자지만 불의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의 삶을 개척한 사건들, 4.19와 6월 항쟁, 세월호의 기나긴 투쟁들도 역사적 유전자로 남아 한몫 했겠지?

 

그래도 왠지 내가 모르는 게 더 있을것 같은 조바심에 촛불혁명의 기원은 좀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목부터 끌리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여러 학자들이 모여 엮어낸 3.1운동 100주년 기념 종합 탐구서라고나 할까. 3.1운동 100주년이 현재 우리 삶, 좀더 구체적으로는 현 정부를 만들어낸 촛불과 어떤 관련을 맺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탐구해 보는 책이다.

 

책 첫머리는 이 책에 참여한 기획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나눈 대담집이다. 3.1운동을 기존대로 운동으로 볼 것인가, 3.1혁명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3.1이 내세운 조선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일깨웠고, 민중들 스스로가 자신을 국가의 주인으로, 대표로 자각하는 의식전환이 있었기에 혁명으로 보자는 얘기도 나오고, 그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전 민중의 각성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중들에게 뚜렷한 역사의식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혁명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과도하고 오히려 3.1 정신을 정치적 박제화하여 퇴보시킨다는 얘기도 나왔다.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설왕설래가 흥미롭다.

 

그러면 나는 혁명, 운동,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번 3.1절에 정부가 광화문에서 벌인 이제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다체롭고 강한 메시지가 있는 기념식은 보기 좋았다.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해 해방 후에도 국가를 다스렸던 권력집단들이 자신이 반대햇던 조선독립을 외친 3.1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혁명과 운동을 떠나서 지금보다는 좀더 조명되고 그 위상이 격상되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한것 같다.

 

가지각색의 깃발 아래 모인 촛불 시민들, 깃발 없이도 모인 촛불 시민들을 생각하며 3.1운동 과정에서의 깃발의 역할 부분은 생각지도 못한 재미가 있었다. 미디어의 홍수와 흔하디 흔한 현수막과 유인물 속에 사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그 당시를 제대로 반영한 3.1운동의 복원을 보는 느낌이랄까.

 

 대한민국 역사에 자기도 참여해서 한 몫을 차지하고 싶었던 여성 지식인들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망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래, 역사에서도 여성, 문학에 기울어진 사람들, 과학하는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야 당시의 삶이 다각도에서 다각적으로 그려지고 짜맞춰지겠지.

 

여러 글 중 뭐니뭐니해도 제일 눈길을 끈 부분은 기독교 근본주의와 반공주의가 결합해 해방 이후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4.3이나 각종 백색테어에도 알게 모르게 관여했던 서북청년단의 탄생과 교회와의 관계였다. 한국교회가 왜 이다지도 보수화됐고,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되었으며, 얼마 전 한 1인 미디어가 촬영한 영상으로도 보았듯 북한을 처부수자는 무시무시한 얘기들을 연습시켜 웅변 대회를 여는 반공의 온상으로 전락해 이념대결의 최전방에 섰을까를 조명한 김진호의 글이었다. 이들은 3.1운동의 훌륭한 뜻을 반공으로 포장해 왜곡했고, 타인을 탄압하는 울타리로 삼았다.

 

2018년 3.1절 광장 집회 실패로 더이상은 반공의 이데롤로기는 통하지 않지만 가짜 뉴스의 온상으로서의 교회는 아직 청산되조 못하고 있다는 점은 몹시 안타깝다. 그래도 저자의 말처럼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해 말을 잃은 사람들에게 말을 찾아주는 노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반갑기 그지없다.

 

독제 정권은 3.1운동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했고, 총칼에 맞섯던 민주 항쟁 투사들은 3.1에서 힘을 받고, 3.1을 정신적 지주 삼아 일어서고 위로받았다.

 

우리가 촛불을 들 때 3.1을 기억하며 촛불 든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촛불과 3.1을 관계맺음하려 하는지 우려스럽다는 한 저자의 물음에 내 나름대로 답을 하자면 이렇다.

 

나 역시도 3.1을 생각하며 촛불을 들지 않았지만 촛불 이후에 촛불을 더욱 빛나고 오래오래 타오르게 할수 있는 정신적 지주를 발굴하자면 3.1을 떠올리고, 4.19와 동학까지 내려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억들과 촛불을 단단히 묶어 촛불 정신을 더욱 오래오래 간직하는 토대로 삼고, 정상성을 공고히 하는 데 사용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민주 세력들이 3.1 운동을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 역사 전쟁을 벌였듯, 우리의 찬란한 나무가 이런 영양분과 함께 우리 역사 속에 단단히 뿌리내려 또다른 적폐가 쌓이지 않게 하는 나무 그늘이 된다면 3.1정신과 4.19, 6월 항쟁의 정신이 제 몫을 다하는 게 아닐까?

 

수많은 역사 중에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고, 미래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한 것들을 뽑아내는 것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올바른 역사를, 올바르게, 그 위상에 맞게 조명할수 있도록 나와 내 공동체, 내 국가를 바르게 만들어 가는 것도 우리의 몫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맞춰 좋은 책을 읽어 행복한 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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