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잔
로버트 잭슨 베넷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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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과 <셜록 홈즈>를 떠올리게 하고, 추리와 판타지가 결합되었다? 어떻게 서평단에 신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누구보다 먼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이 내 품으로 왔다.

이야기는 시약이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는 폐쇄적인 저택에서의 기괴한 암살 사건으로 시작한다. 피해자는 엔지니어 소속 커맨더 블라스. 그의 사인은 끔찍하게도 '순식간에 자라난 나무가 온몸을 꿰뚫고 흡수한 형태'였다. 기계가 아닌 식물과 생체를 개조해 기술로 부리는 독특한 세계관이기에 가능한 살인 방식이다. 어떻게 밀폐된 공간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피해자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 이야기는 '딘'이라는 보조 수사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서사의 한 축이 밀실 살인이라는 미스터리라면, 다른 한 축은 판타지다. 세계관 속 카눔 제국은 우기마다 육지로 들이닥치는 거대 괴수 '레비아탄'의 위협을 받는다. 이를 막기 위해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있고, 최전방 해벽의 군인들은 우기때마다 늘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 살아간다.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진격의 거인>을 떠올리게 한다.

캐릭터 설정들 역시 나 같은 오타쿠의 심금을 울린다. 먼저 화자로 등장하는 '딘'은 시술을 통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을 가졌다. 다만 그는 난독증이 있어 읽고 쓰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자신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것은 상관인 탐정 아나에게도 숨겨야 하는 결함이다. 그는 과연 이것을 책의 끝까지 아나에게 잘 숨길 수 있을까?

탐정인 '아나'는 모든 것을 너무 민감하게 느껴 눈을 가린 채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탐정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딘이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 게다가 백발에 금안이라니, 오타쿠의 심금을 건드리는 외형 묘사이지 않은가? 은둔형인 만큼 사회성이 부족해 말을 곱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또한 매력적이다.

주요 캐릭터는 모두 결함을 한 가지씩 안고 있다. 하지만 서로를 충분히 보완해 주기 때문에 왜 두 사람이 함께여야 하는지 확실한 설득력을 준다. 이 두 사람의 성격과 유대, 그리고 협동을 보고 있으면 <셜록>이 떠올라 가슴이 설렌다.

단지 판타지와 추리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충분히 생각할 만한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 외부의 위협적인 적이 존재하는 세계관은 자칫 극단적인 국가주의나 개인의 희생을 미화하기 쉽다. 하지만 책 속 인물들은 대놓고 질문을 던진다. 국가와 개인이란 무엇인가. 특히 탐정 아나의 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제국이 강한 것은 모든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국이 약한 것은 종종 강한 소수가 우리 다수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보통 추리소설을 완독하고 범인을 알고 나면 '재독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나는 이 책을 기꺼이 재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상을 알고 다시 복기를 시작했을 때 보일 수많은 복선이 있고, 위와 같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세계관을 책 한 권으로만 끝낼 이유가 없다 작가가 반드시 시리즈물로 다시 돌아와 주지 않을까?"했는데 이미 해외에서는 다음편이 발간된 것 같다 빠른 시일내에 한국에도 발간되기를 바란다. 이 정도로 다음 편이 기대되는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제껏 읽은 책 중에 정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어서, 주변에 "제발 나와 함께 이 책을 읽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책이었다. 내가 쓴 글로 이 책의 매력이 충분히 드러났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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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지옥
김인정 지음 / 아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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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 서평단에 선정되어, 인쇄되자마자 빠르게 접하게 된 소설집이다. 망한 사랑을 다룬 단편집이라 제목에 '지옥'이 들어간다는 건 알겠는데, 왜 '지옥' 앞에 '다정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책이다.

제아무리 꿈이어도, 제아무리 고난이 닥쳐도, 그리하여 종래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는 순간 닥친다 해도.

그래도 말했어야 했다, 그대 연모한 마음 후회하지 않는다고.

167p

이 문장을 보고 비로소 '아, 이래서 다정한 지옥이구나' 싶었다. 종말이 파멸일지라도, 혹은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는 순간이 올지라도 기꺼이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것. 그 무모함이 다정함이 되는 것일까? 비극이 예견된 다음 페이지를 멈추지 못하고 넘기게 되는 나의 마음 또한, 이런 맹목적인 사랑과 닮아 있을테다.

작품의 스펙트럼 또한 다채롭다. 판타지적이고 전래동화 같으면서도 인외 존재와의 서사까지, 정형화되지 않은 사랑의 형태들을 담은 이 책은 그야말로 '망사 종합 선물 세트' 같았다.

오랜만에 온전히 단편 속 이야기들에 나를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스토리를 따라가며 슬쩍 웃기도 하고 슬픔에 휩싸이기도 했던 그 경험이 참 좋았다. 다 읽고 나서도 각 단편이 남긴 여운 때문에,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한참이나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모든 단편이 하나같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파고를 일으킨 작품은 〈연화검, 혹은 흩날리는 티끌〉이다. 귀여운 너구리가 신선이 되기 위해 아씨를 위한 연화검을 찾는 내용인데, 초반의 가뿐하듯 유쾌한 분위기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독자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장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아름다운 단편들이 단편으로만 끝난다는 게 독자에게는 일종의 고통이라는 걸 작가님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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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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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저북 제공] 법이 약자를 지키지 못해 사적제재에 나서는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도 여성이 법으로 보호받기 힘든 상황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종종 법의 보호도 못 받고 죽을 바에는 사적제재라도 하고 가자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롤라마를 쫓게 될 스테파노의 도덕적 딜레마가 예상된다. 스테파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기에 내용을 찾아보았다. 실제 '아쿠아 토파나'라는 독약이 존재했고, 이 독약은 당시 이혼이 불가능했던 사회 구조에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성들이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총 600명 이상의 남성이 이 독약에 의해 죽었다는데, 주범이 잡히고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서구의 후대 여성들에게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막 서막이 올랐을 뿐인데 티저북이 끝나버려 감질이 난다. 옮긴이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본편에서 어떤 소용돌이를 만들어낼지 몹시 궁금하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

-고딕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
-독약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
-주인공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전개를 즐기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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