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을 보고 비로소 '아, 이래서 다정한 지옥이구나' 싶었다. 종말이 파멸일지라도, 혹은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는 순간이 올지라도 기꺼이 불꽃을 향해 뛰어드는 것. 그 무모함이 다정함이 되는 것일까? 비극이 예견된 다음 페이지를 멈추지 못하고 넘기게 되는 나의 마음 또한, 이런 맹목적인 사랑과 닮아 있을테다.
작품의 스펙트럼 또한 다채롭다. 판타지적이고 전래동화 같으면서도 인외 존재와의 서사까지, 정형화되지 않은 사랑의 형태들을 담은 이 책은 그야말로 '망사 종합 선물 세트' 같았다.
오랜만에 온전히 단편 속 이야기들에 나를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스토리를 따라가며 슬쩍 웃기도 하고 슬픔에 휩싸이기도 했던 그 경험이 참 좋았다. 다 읽고 나서도 각 단편이 남긴 여운 때문에,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한참이나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모든 단편이 하나같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파고를 일으킨 작품은 〈연화검, 혹은 흩날리는 티끌〉이다. 귀여운 너구리가 신선이 되기 위해 아씨를 위한 연화검을 찾는 내용인데, 초반의 가뿐하듯 유쾌한 분위기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독자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장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아름다운 단편들이 단편으로만 끝난다는 게 독자에게는 일종의 고통이라는 걸 작가님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