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 유럽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탄생 ㅣ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1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평점 :

"모든 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이타적인 목적들을 위해 헌신했고 고초를 겪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 또한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더 나은 세계를 원했다."
A.J.P.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 1차 세계대전> p357 / 페이퍼로드
양차 세계대전은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전쟁이다.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어 왔지만 그러한 콘텐츠들을 숱하게 접하고도 전쟁에 대한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진 못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지도와 사진으로 당시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고,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전쟁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으로부터 촉발됐다.
사라예보에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대공이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 당한 것이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격분해 동맹국인 독일을 끌어들였고,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편에 섰다.
프랑스와 영국은 러시아와 연합국을 이뤘다. 갑자기 전쟁이 시작됐다.
사실 이는 명분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 언급하고 있지만 당시 경제적으로 팽창하고 있던 독일은 프랑스, 영국에게는 경계해야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과잉생산은 식민지 확장을 가져왔고,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이에 대한 경쟁도 심화되었을 것이다.
언제든 전쟁을 통해 상대 것을 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글거리던 때, 팽팽했던 갈등의 활시위를 한 발의 총알이 당겨버린 게 아닐까.
1차 세계대전은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디어에서 자주 재현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왜 그랬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엉망이었다.
당시 상비군도 없었고, 제대로 된 군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가 태반이었다.
전쟁 막바지인 1918년에야 영국에서 처음 공군이 탄생했다고 하니, 우리가 상상하는 군의 모습은 1차 세계대전을 치루며 가까스로 형성된 것이다.
게다가 효율적인 전략, 전술도 없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군인들은 처참한 참호에 갇혀 적의 동태를 살펴야했다.
작전 미스가 특기인 각 국의 장군들이 승리에 취해 작전 개시를 부르짖는 날에는 수천, 수만명이 개죽음을 당했다.
작전은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공세가 아닌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 연합국과 대치했던 서부전선,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맹과 함께 러시아와 대치했던 동부전선 양 쪽에서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고보면 당시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영민하게 전쟁을 치뤘고, 군사력에 있어서는 우위를 차지했던 것 같다. 물론 이 때문에 많은 무고한 독일 청년들이 전장에 끌려가 목숨을 잃어야 했지만.
"이제 전쟁에는 목적이 없었다.
전쟁 자체를 위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를 시험하는 경쟁이었다."
A.J.P.테일러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 1차 세계대전> p169 / 페이퍼로드
전쟁은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인데도 각 국의 정치가들과 장군들은 패배했을 때 자신들이 지게 될 책임이 두려워 평화로운 종결인 강화를 거부하고 전쟁을 이어간다. 저자는 이런 한심한 윗선들의 판단에 꽤나 분노하고 있다.
1917년 전쟁은 두 인물의 개입으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국의 대통령 윌슨과 러시아의 레닌.
먼저 민족자결주의로 우리나라에게도 영향을 미친 윌슨은 민주주의를 통한 평화라는 이상주의적인 방향으로 전쟁에 개입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전쟁에 참전해 당시 군수 수출로 얻고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도 없지 않았다.
어찌됐든 1년 후 미국은 휴전을 원하는 독일에게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할 것을 권하고, 이후 베르사유 강화를 통해 독일과 그 동맹국의 피지배 하에 있는 나라의 독립을 보장해준다.
러시아에서는 소비예트의 성공적인 혁명 이후에 나타나 정권을 장악한 레닌과 볼셰비키에 의해 휴전이 선언된다.
레닌에게는 전쟁보다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이 더 시급했다.
그의 바람은 혁명을 두려워한 연합국으로부터 배척 당하며 러시아의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지만.
4년 간의 전쟁은 1918년 독일이 휴전을 요청하며 끝이 났다.
독일의 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 전략으로 자신들이 패배하지 않고 전쟁을 잠시 재정비하려 휴전 카드를 꺼냈지만, 분위기는 갑자기 '독일의 패배'로 흘러간다. 연합국은 이 모든 전쟁의 책임을 독일에게 떠넘긴다.
모든 이들의 '적'이라는 타이틀과 막대한 배상금을 떠안은 독일로서는 와신상담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었을 심정이었을 거다.
그렇게 미봉책처럼 마무리된 1차 세계대전,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촉발될 빌미가 된 건 아닌가 싶다.
전쟁은 각 국에 혁명을 낳았다. 제국은 붕괴하고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독립국가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이 임의로 처리한 국경선은 긴 세월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정치인들 간의 이권다툼과 장군들의 과잉된 자의식 등이 몰고온 참상에 더 없이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전쟁이 아니여도 국가를 이끄는 지도부의 무능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