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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12월
평점 :
"어거스틴은 하늘을,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늘 그랬듯이 저 별들이 그의 내부에서 차오르는 막막한 감정들을 하찮게 만들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되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별들은 그저 차갑게, 밝게, 멀리서 무정하게 눈짓할 뿐이었다.
(중략)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기력을, 외로움을, 두려움을."
릴리 브룩스돌턴 <굿모닝 미드나이트> 80~81p / 시공사
책을 읽기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조지 클루니가 감독하고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먼저 접했다.
천문대에 홀로 남겨진 어거스틴 박사,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아이리스라는 소녀, 빙하기와 유사한 지구 종말적 상황을 모르고 목성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는 에테르 호. 전반적인 골격은 유사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영화와 사뭇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
한때 잘나가던 천체과학자 어거스틴은 이제 고독한 노인이 되어 자신의 마지막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 몇 년째 북극 천문 기지에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북극의 모든 연구원들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지고 어거스틴은 이를 거부하고 홀로 북극에 남는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아이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삶의 희망이 없었던 어거스틴은 소녀를 돌보며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되고, 소녀의 미래를 두려워하며 교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매서운 추위를 뚫고 호수 인근의 관측소로 이동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인류 최초로 목성 탐사에 성공하고 지구로 귀환 중인 에테르 호. 통신전문가 설리는 몇일째 지구와 교신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지구에서 아무런 연락이 들려오지 않자 그들이 이뤄낸 세기의 업적은 무의미한 것이 된 느낌이다. 망망한 우주 속에 돌아갈 곳을 잃은 듯한 기분은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삶의 희망을 차츰 잃어가게 한다.
지구와 우주, 서로 다른 공간에서 느끼는 고립감도 너무나 잘 묘사되어 있는데, 까만 밤하늘 같이 아무것도 없이 막막한 시간은 어거스틴과 설리, 두 사람을 과거로 침잠하게 만든다.
항상 하늘만이 연구 대상이었던, 지상의 존재들에게 무관심했던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치기로 놓쳐버린 옛 사랑과 딸을 그리워하고, 설리 역시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린 딸과 이별했던 순간과 그 이후의 단절을 꼽씹으며 후회한다.
하지만 어거스틴에게는 당장 돌봐야할 어린 소녀 아이리스가 있고, 설리는 자신에게 임무를 주는 사령관 하퍼와 동료들이 있어 후회 속에 갇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앞으로 내딛을 수 있게 된다.
매우 극적인 장면들이 넘쳤던 영화와 달리 책은 끝이 없는 우주에 놓여진 듯 고독하고 담담하다.
우선 캐릭터 설정이 다소 달라졌다는 것도 책과 영화의 차이점이었다.
매일 투석 비슷한 걸 하며 이미 병이 들어 죽을 날을 앞둔 영화 속 어거스틴과 달리 책에서는 자신이 평생 바쳐온 천체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아이리스를 대하는 그의 감정변화도 따뜻한 온기에 녹아내리듯 느리지만 분명하게 보인다. 그는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면서 삶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사령관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임산부로 설정되어 있던 영화 속 설리는 책에서 딸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족이 되어주지 못해 후회를 거듭한다. 그녀에게는 10살까지 사랑했던 엄마와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족다움을 가지지 못한 결핍이 있다. 그녀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다.
영화가 어거스틴 혼자만의 이야기였다면, 책은 어거스틴과 설리 두 축이 다르지만 동일한- 고립과 지난 날에 대한 후회 속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준 가장 근원적인 것은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녀와 다시 연결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말을 하고, 말을 듣고 싶을 뿐이었다.
이 모든 세월이 지난 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정직한 순간을 보내고 싶었다."
릴리 브룩스돌턴 <굿모닝 미드나이트> 337p / 시공사
"사실 가족을 가진다는 것이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욱 힘들었다. 정말 그랬다.
늘 뭔가 결핍되어 있었고, 지금에서야,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 멀리 떠나와서야,
설리는 그게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온기, 그리고 열림.
한 번도 자라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무언가의 뿌리들이었다."
릴리 브룩스돌턴 <굿모닝 미드나이트> 344p / 시공사
영화와 책은 결말도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 속 에테르 호가 지구를 떠나 목성에서 새로운 구원을 찾는다면, 책에서는 '비록 이 것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비록 이 먼 길을 돌아와 결국 죽게 되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며 어떤 미래가 기다리든 지구로 다시 돌아온다. 지구 종말을 기꺼이 함께 하기로 그들에게는 생애 마지막에 온기와 열림을 깨달았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영화를 통해 인류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주길 원했다는 조지 클루니.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고독을 견디며 호숫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어거스틴의 굽은 등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