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남자는 불운 한복판에 있었다. 어머니를 여의고 의지했던 아버지마저 사고로 숨졌다. 사람에게 속고 한장 한장 쌓아올린 집은 불에 타 없어졌다. 일자리를 잃고 사회와 단절되었기에 지역 공동체의  마을회장 따위 직함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딱히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이 없고 -아주 없지는 않았었지만- 반려동물도 없다.

 

 

 

 

그는 혼자다. 그는 59세이고 사브를 몬다. 그것도 수동미션이다. 수동미션은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사이에 클러치라 불리는 페달이 하나 더 놓인, 멈출 때 1단 기어를 넣어줘야만 하는 차다. 언덕에서 멈췄다 재출발할 때 클러치를 부드럽게 다뤄주지 않으면 바로 시동이 픽, 하고 꺼져버리는 그런 차다.

수동미션 차량을 우리는 흔히 '스틱 차량'이라 부른다. 인풋 만큼 아웃풋이 나오는 정직한 미션이다. 급발진 따위는 오토미션에나 존재한다. 오베라는 남자는 오토미션이나 주차 센서, 전자장비 따위의 옵션을 보유한 차를 쓰레기로 여긴다. BMW나 일제 차량, 현대 차도 오베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1단 기어를 넣으면 1단 만큼, 2단 기어를 넣으면 2단 만큼, 후진 기어를 넣으면 뒤로 굴러가는, 행한만큼 갚아주는 정직한 기계를 오베는 신뢰한다. 하지만 오베가 만난 사람들은 수동미션처럼 정직하지 못했다. 믿음과 신뢰를 주었으나 배신과 멀어짐으로 갚았다. 1단 기어를 넣었는데 후진하는 꼴이다. 뒤쪽은 벼랑이다. 오베는 차라리 기계를 사랑하기로 한다.

 

 

 

 

오베는 하루라도 빨리 먼저 간 아내 곁으로 가고 싶다. 일없는 실직자지만 매일 죽느라 바쁘다. 쓰레기 같은 차를 모는 이웃들, 컨펌도 안 했는데 일상에 끼어든 멍청한 것들 때문에 죽는 일정이 자꾸 지연되는 게 짜증날 뿐이다. 오베는 단색의 사람이었고, 오직 그녀 -평생을 다해 사랑한 아내- 만이 무지개였다. 색맹 같던 오베에게 사랑하는 아내만이 컬러의 세계였다. 오베는 먼저 자신을 떠난 그녀 곁으로 가고자 꾸준하고 성실하게 노력한다. 다만 죽는 건 빌어먹게 어렵다. 고양이 따위가 집 근처에서 얼쩡대다가 눈에 파묻히는 바람에 녹여주고 씻겨주고 먹여주느라 오늘도 실패하고, 내일은 임신한 이웃집 여자 -클러치가 뭔지도 모르는- 따위를 병원에 데려다 주느라 못 죽는 식이다. 사는 것도 빌어먹게 힘든데 죽는 건 더 빌어먹게 어렵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로 채워진다. 깔깔깔, 또는 아랫배를 움켜쥐게 되는 폭소보다는 킥킥, 풋, 따위의 위트가 가득하다. 이야기는 1++ 등급인데, 붉은 빛 살을 채운 마블링은 '웃긴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폭발적인 웃음기가 1g쯤 모자라고, 오히려 오베라는 남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촘촘하게 짜인 게 맞다. 킥킥대다 불현듯 먹먹해지고, 이 아저씨 좀 웃기네, 하다가 눈물 또르르 구르거나 먹빛의 단색이 갑자기 무지갯빛으로 아롱져 보이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쪽이 이 책을 맛본 시식평이겠다. 무엇보다 붉은 살, 인생과 우정과 사랑의 '살 맛'이 나서 '살 맛 나게 만드는' 이야기다. 죽을 맛이 아닌 살 맛. 그토록 죽고자 했던 오베임에도 '살 맛 난다' 싶게 만드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동이 이 책이 지닌 핵심이다.

 

 

 

수많은 소설가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어려워하는 소설의 첫 문장. 오베라는 남자의 첫 문장은 이렇다.

'오베는 59세다. 그는 사브를 몬다.'

첫 문장부터 '사브'라는 차가 튀어나온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사브'는 줄기차게 등장한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사브는 독보적인 주행성능을 인정받던 차였다. 현대의 포니엑셀 신차 발표가 1985년이었는데, 80년대 후반 터보차저를 탑재한 사브는 미래사회에서 튀어나온듯 시속 200km 정도는 우습게 넘겼다. 독보적인 강함으로 사브는 매니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차였다. 비록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 회사는 사라졌고 사브의 성능은 전설처럼 남았지만 여전히 사브를 무기로 한 노병은 죽지 않았다.

 

 

 

소설의 시작이자 끝인 첫 문장부터 등장한 사브는 '오베'라는 남자의 분신과도 같다. 어쩌면 급격히 변한 현실사회를 '가상현실'보다 더 낯설어하는 오베에게 사브는 아바타일지도 모른다. '소싯적' 폭발적인 주행 성능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회사는 도산하고 차량은 단종된, 이제는 '전설'로 구전되는 사브의 현실은 '잘 나가던' 젊은 시절을 어딘가쯤 두고 내린 59세 독거노인 오베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오베는 인풋과 아웃풋이 정확한 수동미션을 탑재한 사브를, 쓰레기같은 BMW나 끌고 다니는 어린 것들은 절대 모를 '사브'라는 그 이름을 부르고 아끼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차를 자신과 동일시하지만, 스토리의 중심에 선 차는 더욱더 주인을 대변하기 마련이다. 영화 '매드맥스'의 거칠고 쓸쓸한 맥스​와 그의 차는 닮았고, '존 윅'의 클래식한 머슬카와 존 윅이 닮았다. 오베의 사브는 온전한 '남자 상'을 각인시킨 아버지의 유산인 동시에 세상이라는 적과 맞서 싸우며 함께 전장을 누비던 애마이자 천리마이다. 왜 남자들이 생명도 없는 기계인 차 따위에 애정을 쏟아 붓는지 여자들은 절대 이해 못하겠지만, 남자들은 아마도 알 것이다. 차에게도 생명이 있다고. 차의 가슴인 보닛 위에 손을 얹으면 심장인 엔진의 온기와 박동이 느껴지지 않느냐고, 차의 울음 소리가 아픈지 떨린지 벅찬지 말하고 있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남자들은 자동차는 알지만 여자는 모른다. 여자들은 남자를 모르지만 사랑은 안다.

오베는 기계와 자동차는 알고 '여자'인 아내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무지갯빛 아내를 통해 사랑을 알고 색깔에 눈을 떴다.

오베의 아버지와 오베의 장인어른, 오베까지, 남자들은 모두 일찍 상처하고 죽기까지 혼자였다. 마치 사브같던 그들은 쓸쓸히 자기의 길을 달렸다. 지구의 반을 채운 남자들은 그렇게 단순한 흑백으로 죽을 때까지 달리기만 한다. 지구의 반을 채운 반푼이같은 남자들을 완성시키는 건 지구의 나머지 반인 여자이자 남자 없이도 반쪽이 아닌 하나인 여자들이다.

책은 남자인 오베 위주로 말하지만 오베 너머에는 총천연색 아우라로 빛나는 여자들이 있다. 세상에 없는 여자들이 세상에서 의지할 데 없이 떠다니듯 살아가는 남자들의 발을 끌어내려 땅에 붙이고, 비로소 남자를 남자로 완성시킨다. 오베는 아내 때문에 자살을 꿈꾸지만 허공에 뜰 뻔한 오베의 발을 지상에 단단히 묶어두는 건 하늘에 먼저 간 아내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변 몇몇이 나의 소개로 '오베라는 남자'를 읽곤 터울지는 언니나 오라버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오베 같은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_<오베라는 남자>중

 

 

꿀벌은 삶에서 단 한 번의 결정적 순간에만 침을 쏠 수가 있다. 침을 적의 몸에 박는 순간, 독침과 함께 내장이 온통 딸려나오기 때문에 공격은 곧 마지막이다. 나이가 들고 혼자되면서,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 정치관 등을 꿀벌의 독침처럼 여긴다. 그것을 쏘는 순간 삶을 채운 모든 것이 온통 딸려나와 빈 껍데기로 추락할 것처럼 느낀다.

 

오베 역시 처음엔 툴툴거리고 신경질적인 오지랖 넓은 아저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웃과 쓸데없는 여자들 때문에 자신이 꿀벌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은 침을 쏘고 또 쏘아도 죽지 않는 말벌이며, 아직 잃지 않은 이 독침을 사랑하는 친구와 이웃을 지키기 위해 매운 맛으로 날려줘야 함을 알게 된다. 아니, 본인은 몰랐지만 어느새 그렇게 변해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살기 위해 날린 독침이 결국 죽음인 꿀벌처럼 오베는 매일 죽을 궁리에 바빴지만, 이웃과 남을 위해 아무리 독침을 날려대도 결코 죽지 않고 생명력이 배가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생전에 봤다면 기뻐했을만한 경험을.

 

 

 

역시 운전은 스틱 차량으로 시작했다. 정확한 기계덩어리였다. 주행거리 표시기가 액정의 전자화면이 아니라 악력기의 딸칵딸칵 넘어가는 숫자표시마냥 한 줄 한 줄 올라가는 순수한 기계덩어리였다. 이십이만이천이백이십이 킬로미터를 주행했을 때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한눈 판 사이 6km를 넘겨버렸다.

 

마냥 달리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시절이었다. 마음이 아프고 답답할 때는 가로등도 없고 직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편1차선의 시골길을 '이러다 잘못하면 죽겠구나' 싶은 속도로 내달렸다. 밤의 시골길에서 바람을 가르며 가끔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더 가끔은 울기도 했다. 세상은 온통 먹빛이고 나도 먹빛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내 곁에 무지갯빛이 있었다. 남자인 나를 완성시킨 것은, 온 우주가 뒤집어져도 나를 사랑해줄 여자는 단 두 명, 어머니와 아내였다. 내가 박아놓았던 못을 내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아직 못다 뽑은 못이나 말뚝 따위가 두 여자의 마음 어딘가에 지뢰처럼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닮은 아이는 크면서 아빠를 더 따랐고, 퇴근하고 돌아온 내 뒤를 오리새끼가 지 어미 뒤 따르듯 졸졸졸 따라온다. 가방을 내려놓을 땐 서재로 따라들어오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문 앞에 서있는다. 아빠 똥방귀 뀔 거라고, 문 앞에 앉아있지 말라고 하면 새끼오리 모이 받아먹듯 넙죽 "네"라 대답해놓고 벽 뒤에 숨어있다가 아빠 나오면 따라붙곤 한다.

 

 

 

오베도 처음엔 자신이 흑백인 줄 알았다. 아내만 무지갯빛인 줄 알았다.

시끄럽고 도움 안되는 이상한 것, 클러치도 모르는 여자의 딸이 오베를 그린 그림에서, 어느새 오베는 색깔을 지닌 사람이 되어있었다.

 

 

“걔가 보기엔 당신이 제일 재미있는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맨날 당신을 컬러로 그리는 거고요.”

"이제 충분해요, 사랑하는 오베." 그러자 충분해졌다. _<오베라는 남자> 중

 

 

책을 읽으며 아이와 아내를 떠올렸다. 여전히 술 취하면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되고, 똑같이 약주를 드셔야만 내 고백을 받아주시는 시골의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어디쯤에선가 울었는데 어디였는지 모르겠다. 한번쯤 울고 고장난 엔진마냥 자주 울컥했다.

 

당신이 지구의 반을 채운 성별 중 하나라면, 아니면 아직 절반밖에 차오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아들이거나 사랑받는 딸이거나 어떤 남자를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여자라면, 오베를 만나길 권한다. 헤매지 않게 인적사항 일러두겠다.

 

59세, 스웨덴 거주, 수동 미션 사브 소유.

집 있음. 아내 있음(지금 곁에 없다 뿐이지)

행복 있음. 감동 있음.

 

 

그녀의 여자 친구 중 하나가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소냐는 대부분의 남자는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난다고, 하지만 오베 같은 남자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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