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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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 312 = 724. 간단한 산수. 두 권이다. 1권이 412쪽, 2권이 312쪽이다. 판권이며 뭐며 다 날려버리고 순수한 소설의 텍스트만 헤아려도 700쪽에 육박하는 작품이다. 게다가 1권과 2권의 쪽수 차이는 정확하게 100쪽이다. 이왕이면 보기 좋고 사이 좋게 반반 갈랐을 법도 한데, 얇은 책 한 권이 1권에 더 붙어있는 분량이다. 책을 보니 한숨 나온다.


'요즘 누가 소설을 읽는다고. 두 권씩이나.'

 

 

그러나 읽는다. 영문학의 대가로 우뚝 선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양반 책은 독해력이 필요하다. '요즘 누가 소설을 읽는다고!'에 1+1으로 '독해력'까지 요하니,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읽는 맛이 있다. 작년에 출간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도 그랬다. 뛰어난 문학 에이전트이자 뮤즈였던 아내를 잃고난 후 5년이 흘러 소개된 작품이 바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경우, 읽으면서 '그래서 언제 슬퍼할건데?'라 묻고 싶을 정도로 문장의 호흡은 흐트러짐이 없다. 이거 원, 난중일기도 아니고, 아들의 죽음을 공문 기재하듯, 서부전선 이상 없다 보고하듯 한줄로 갈음하는 이순신 장군님마냥 반스의 글은 시종일관 고른 호흡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그의 문장은 슬픔에 집어삼킴을 당하지 않고 텍스트에 슬픔을 갈음했다. 은유와 우아함의 절정 속에, 후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느껴진다. 아니, '스며든다'라 말하는 편이 맞겠다. 읽다보면 반스의 작품에 항상 따라붙는 헌사 한 줄에서도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P.K.에게'.

 

반스의 모든 작품은 아내에게 바쳐졌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죽음 후 부부가 재회한다면 그는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여보, 봤어?" 나는 여전히 당신을 위해 글을 썼고 내 글은 당신에게 바쳐졌다고, 조용히 생색낼지도 모르겠다. 여러 면에서 반스의 작품은 항상 '(일독을 마친 책을)다시 읽고 싶고, 한 번 더 읽어야만 하는 작가'로 상위에 꼽힌다.


 

 

새로운 책 <용감한 친구들> 역시 그러했다. 왜 이 시대에 부담되게 소설이 두 권이어야만 했는지 장광설 풀었는데, 반스였기 때문에 가능한 두 권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1권을 중간쯤까지 읽다가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탐정 - 셜록 홈즈 - 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의 일대기이자, 책 속 명탐정 홈즈가 아닌 저자가 스스로 해결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이 이야기는 초반을 견디기가 만만치 않다. 억울한 누명을 쓴 인도계 영국인 '조지 에들지'의 '조지'와 '아서'의 유년기부터 교차 편집되며 이야기가 죽 이어지기 때문이다.

 

 


텍스트에 등장한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하듯, 반스가 평전 작가가 아닐진대 둘의 소싯적 이야기를 괜히 덧붙였을리가 없다. 서서히, 밀물 들어와 어느새 바짓단 적시고 어느새 허벅지, 이제는 목까지 차오르듯 삶과 인생과 그로인해 누적된 사건과 결과가 어느새 가슴에 들어차 있다.

어느 매체는 <용감한 친구들>(원제: 아서와 조지)를 일컬어 '사랑과 죄의식, 정체성, 명예와 용기를 그려낸 뛰어난 이야기의 승리.'라 평했다. 많은 이들이 1권의 중반부에서 마의 오르막을 만난 마라토너마냥 허덕이겠지만, 고개만 넘는다면 1권 후반부에서 '사랑과 죄의식'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설득으로 숨이 멎은 듯 읽어내려갈 것이다. 지쳐 포기할 때쯤 드러나는 '런너스 하이'랄까. 읽는 맛, 희열이다.

 

 

 

아파 쓰러진 아내. 아마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했을 아내. 그리고 신선하고 젊은 매력을 페로몬처럼 뿌리는 새 연인. 아서는 스스로 '플라토닉'한 사랑이라 말하지만, 몸은 집에 머물되 마음은 새 연인에게 온통 쏠려있다. 주머니의 송곳은 튀어나오게 마련인데, 이 말은 비단 재능에 국한된 게 아니다. 사랑은 감출 수 없다. 시작된 사랑의 설레임과 열기는 얼굴에서 지울 수 없는 법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평한 '사랑과 죄의식, 정체성'의 면모가 1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명예와 용기'는 2권의 몫이다. 결국 '불륜'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랑 앞에, 행여 아내가 어서 죽기만을 바랐을지도 모를, 단 한번이라도 그러한 생각을 품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 반스의 우아한 문체로 사실감있게 묘사된다. 읽는이마저도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 그와 함께 '아서' 편, '조지' 편으로 나뉘어 교차 전개되던 이야기는 '아서와 조지'로 만나 폭발한다.

 

책에 등장한 새 연인과 아서의 쪽지 이외의 것들 - 편지, 신문기사, 정부 보고서, 의회 기록, '아서 코난 도일 경'의 글 - 은 모두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다. 아서와 조지의 만남과 사건 해결은 아서의 자서전에서 짤막하게 등장하지만, 반스를 만나 두 권의 이야기가 되었다. 명탐정 창조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아서의 활약 덕에 조지의 누명은 벗겨지고, 후에는 영국의 사법체계마저 바뀌게 된다. 조지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이달지'라 발음하는 영국인들에게 '에들지'라며 발음을 정정해줄 것이고, 자신의 누명이 몸 속을 흐르는 피의 순도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아서'와 '조지'가 만나 같은 것을 보지 못했으나, 조지는 아서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아서가 '본 것'을 보게된다. 보는 것은 느끼고 믿는 것이다.

 

 

견딘 이들은 아서와 조지가 본 것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2권을 덮었을 때, 나는 다시 1권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많은 찬사가 입에 바른 말이 아니었음을, 왜 줄리언 반스가 맨 부커상 시상식장에서 <용감한 친구들>을 두고 가장 긴장했었는지 맛보게 될 것이다. 비록 <용감한 친구들>이 맨부커상 수상에 실패했고 6년이 지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너무 늦게' 수상하게 되었으나, 작가 스스로 수상에 대한 기대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는지 설득당하게 될 것이다. 2권 후에는 분명 1권을 다시 집어든 자신을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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