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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충호 만화 삼국지 1~5권 세트 - 제 1부 젊은 용들의 시대 (184년~197년)
황석영 정역, 이충호 만화, 나관중 원작 / 애니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을 다소 선정적(?)으로 달았는데, 사실 삼국지의 최고봉은 고우영 선생님의 만화 삼국지다. 나도 한 때는 만화가 지망생이었던지라 만화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목에 힘 좀 주게 되는데, 고우영 선생님은 정말 '선생님', '화백님(?)' 그리고 '천재님'이시다. 하지만 고우영 선생님의 삼국지에도 아쉬운 점이 있으니, 바로 '성인용'이라는 것이다. 뭐 '성인용'이라고 해서 야한 내용의 '19금'이라는 것은 아니고, 그 표현에 담긴 은유와 깊이가 아동용은 아니란 소리다.(물론 야한 장면도 살짝 나오긴 하나, 정말 내용의 부드러운 진행을 위해 삽입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만화 삼국지'가 쏟아져 나왔다. 어렸을 때 축약판(?) 어린이 삼국지를 읽었었고, 성인용 삼국지로는 이문열 삼국지를 읽었다. 딱히 이문열 삼국지를 선택한 배경은 없고, 일단 대중적 인지도가 워낙 높았던 작품이고, 한 때 유행처럼 너도나도 읽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물결에 휩쓸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문열 삼국지를 이희재 선생님(!)께서 만화로 그리셔서 어린이 삼국지로 만들었다고 하시길래, 냉큼 서점에 가서 휘리릭 읽어 버렸다. 물론 이희재 선생님은 고우영 선생님의 포스에는 못 미치지만, 이 분 공력도 장난이 아닌지라 내심 기대를 했던 것이다. 이문열이 쓰고 이희재 선생님이 그린 만화 삼국지라니, 그 이름만으로도 뭔가 지갑을 열게 하는 주문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난, 이문열 이희재의 만화 삼국지를 보고 조금 실망했다. 누구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문열의 만화 삼국지에는 이희재 선생님의 필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희재 식 공간해석, 여백의 맛이나 선의 느낌이, 왠지 모르게 2% 모자란 듯했다. 마치 광선검을 뽑아들고 여포를 동강내려고 하는데, 여포가 동탁에게 '내가 니 애비다. '하고 도망가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이희재 선생님은 공력이 높은 분이라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만화 삼국지는 어디까지나 그림이 더 주가 되기 마련이다. 이문열 씨가 삼국지 평역에서 아무리 썰을 잘 풀었어도, 그 내용이 만화 삼국지로 장르가 바뀌게 되면 이리 깎이고 저리 깎여서 원래의 맛은 대부분 없어지고 '이문열'이라는 이름만 남게 된다. 글자로만 이루어진 그 많은 분량의 삼국지를 만화 몇 권으로 줄였으니, 솔직히 이문열 냄새가 끼어들 틈이 어디 있겠냔 말이다. 암튼, 그림을 보며 다소 실망했다.
물론, 황석영 이충호의 만화 삼국지도 완벽하지는 않다. 다섯 권 세트로 일부가 출시되었는데, 5권 그림은 좀 후진 게 사실이다. 이충호 님이 집중력이 떨어지셨는지, 출중한 1권의 그림에 비해 5권은 다소 허술한 구석이 조금 눈에 띈다. 하지만 내용을 풀어간 맛이 '삼국지 답다'는 느낌이 든다. 황석영 씨나 이문열 씨나 둘 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1류이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로든 더 유명한 것은 이문열 씨고, 이충호 씨보다도 이희재 선생님이 더 고수급이지만, 그래도 이번 만화 삼국지만큼은 황석영 이충호의 작품이 판정승을 거둘 것 같다.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황석영 이충호의 만화 삼국지 표지가 더 '삼국지스럽고' 스케일이 있지 싶다. 그리고 초반에 캐릭터 소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위인전의 포맷을 그대로 밟는 것 같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크게 과장하지 않고 캐릭터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 같아 좋았다. 일례로 조조가 젊었을 적 망나니 짓을 하며 여인네 희롱하고, 그러다가 잡혀서 몰매 맞을 위기에 봉착하였으나 간사한(?) 기지로 위험을 탈출한다는 식의 내용은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조조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해 좋았다. 이런 디테일한 요소가 황석영 이충호 만화 삼국지에 변별력을 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암튼 무척이나 재밌게 보았으니, 이충호 님이 나머지 6권부터는 집중하여 동일한 완성도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권과 5권의 완성도가 다른 것은,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독자를 실망시키는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