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국민학생 때였다. '반다이'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때였고, 당시 반다이를 벤치마킹하여 국내 입지를 굳혀가던 '아카데미'의 건담 시리즈 프라모델을 사 모으던 때였다. 'Z건담'이 당시 돈으로 3천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십 몇 년 전에 3천 원이면 국민학교 꼬마에겐 큰 돈이다. 세뱃돈이 오백 원, 천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프라모델 조립은 형이 다 맡아했다. 나도 만들어 보고 싶었으나 형은 손을 못 대게했다. '나를 믿을 수 없었'거나, '자신이 더 섬세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느날, 형이 외출하고 없는 틈을 타서 형이 만들던 Z건담을 들고 다락방에 올라갔다. 형이 돌아오기 전까지, 최대한 나도 조립의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세밀하고 작은 부품이 많아 손이 떨렸다. 작은 가위로 부품을 잘라내고, 삐죽하게 잘린 부분은 손톱깎이로 다듬으면서 한낱 플라스틱 쪼가리가 건담의 몸체가 되는 이적의 현장에 함께하는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그런데 3mm 정도 되는 부품 하나가 튕겨져 날아갔다.
부품이 워낙 작다보니 가위로 '뚝'하고 자르는 순간 날아간 것. 아무리 찾아봐도 잃어버린 부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작 3mm 짜리였지만, 사람으로 따지면 다리와 골반을 고정시키는 부분이었다. Z건담은 건담 시리즈 중 '변신'을 하는 흔치않은 녀석인데, 변신을 하기 위해선 다리를 단단히 고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말인즉슨, 3mm짜리 부품 하나 때문에 우리집의 Z건담은 변신을 할 수 없다는 소리였고, 3천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엄마의 잔소리'를 감안해가며 산 Z건담이 반병신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또한 형에게 죽도록 갈굼당할 거라는 소리이기도 했고. 

고작 3mm 부품 하나 때문에. 

고작 3mm 부품 하나 때문에 Z건담은 '특유의 정체성'인 변신도 못하는 반병신이 되었고, 나는 형에게 죽도록 갈굼당했으며, 꼬마로서는 벌벌 떨면서 두손으로 받아들 3천원이 날아가 버렸다. 고작 3mm 부품 하나 때문에.  


너는 3mm 냐?
'미친 존재감'을 지닌 글쟁이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은 대놓고 묻는다. "너는 3mm냐?" 대답이 궁색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설계자들>은 판결을 선고하듯 대답을 해 버리기까지 한다. "너는 3mm보다 못한 존재다. 부품은 더더욱 아니고, 손톱깎이로 다듬어서 버려야 할 부품 옆의 플라스틱 쪼가리야!"라고 말이다. 

<설계자들>은 제거해야할 대상과, 손에 피를 묻히는 암살자와, 암살의 계획을 짜는 설계자들, 암살을 중개하는 업자들, 암살을 의뢰하는 계약서상의 '갑'들이 등장한다. 뭐냐, 또 킬러냐?라고 코웃음 치지 마시라. 그런 반응은 미야베 미유키, 일명 '미미여사'의 <모방범>더러 "뭐냐, 또 살인사건이냐?"라고 웃어버리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미미여사의 <모방범>은 '추리소설'의 껍데기를 쓴 '인간탐구'의 얘기이며, 미친 존재감 김언수의 <설계자들>은 '킬러가 등장하는' 사회의 권력과 부조리에 대한 얘기이다. 살인도 깔끔한 대형마트에서 주문하듯 맞춤형 필요상품이 되어버린 이 부조리의 세계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세상을 바꾸고자 한들 3mm도 안 되는 입장에서 바둥거려봤자 내가 부스러질 뿐이다. 국민학생 따위나 3mm에 연연하지, 권력의 '빈 의자'에 앉는 이들은 3mm부품 없어졌다고 쩔쩔매지 않는다. 가게에 가서 '금빛' 신용카드 내밀며 "이거랑 똑같은 걸로 하나 더 주세요."하면 그만이다. 누군가 감쪽같이 죽어 없어졌다고? "똑같은 여자로 하나 더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아니, 얼마든지 더 좋은 걸로도 살 수 있다. 권력자들은 '상실'이나 '인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저 '증빙'과 '안위' 확보가 우선이다.

<설계자들>의 주인공 '래생'은 3mm다. 본인 스스로도 3mm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래생의 태생부터 그렇다. 애미애비도 모르는, 수녀원 앞 쓰레기통에 버려진 존재가 바로 래생이다. 래생은 '개들의 도서관'의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의 손에 이끌려 '암살중개업소'인 '개들의 도서관'에서 자란다. 그는 책은 많으나 개조차도 얼씬거리지 않는 '개들의 도서관'에서 훈련관 아저씨에 의해 킬러로 길러진다. 래생이 얼마나 어이없는 3mm인가 하면, 어리바리할 뿐만 아니라 싸움실력도 뭔가 못미덥고, 3mm주제에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권력과 실세 앞에서 웃으며 눙치는 3mm라니. 튼튼한 동아줄을 잡아야 하늘의 해님도 되고 달님도 되는데, 래생은 썩은 동아줄인 걸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선택한 줄'을 잡는다. 수수밭에 고꾸라져 떨어져 그 피로 수수를 물들일지라도 독고다이 마이웨이다. 이렇듯 싹수부터 노란 래생은 창조자님인 '소설가 김언수'의 제재도 듣지 않은 채 '미친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나는 <설계자들>의 래생을 읽으며 미친 존재감 김언수를 떠올렸다. <캐비닛>이라는 포복절도할 책으로 혜성처럼 등장했고,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처럼 '소설을 쓰다 사업을 시작한 친구'로부터 매달 1일에 입금되는 방식으로 2년 동안 월 50만 원을 후원받은 소설가 김언수 말이다. 다작을 한 것도 아니고 작가 이미지 자체가 백화점 명품샵이 아니라 시골 5일장스러운 그, 하지만 미친 존재감을 지닌 그 말이다. 그는 래생같고, 래생은 그 같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을지언정 독고다이 마이웨이를 걷는 한국문단의 래생, 바로 김언수. 래생의 창조자님 김언수는 래생이 더럽게 말을 안 들어서 '소설가와 캐릭터가 서로 싸워서 삐지는'상황에 갔다고 밝힌 적 있는데, 내가 볼 때 김언수 역시 '말을 더럽게 안 듣고' '자기의 글을 통해 세상에 일갈하는'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소설에서 래생은 '지적이고, 듬직하고, 자뻑이긴 하다만 잘생겼고, 귀엽기까지'하다. 게다가 3mm주제에 권력 앞에서 농담도 할 줄 안다. 내가 아는 김언수가 딱 그렇다. '잘생긴건' 수긍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적어도 '지적이고, 듬직하고, 미친듯 귀여운데다가 농담을 할 줄 안'다. 그렇다. 그는 '농담을 할 줄 안다') 

잘 키워주니 물어뜯는다고, '개들의 도서관'에서 자라 유학물까지 먹은 '한자'는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을 뛰어넘으려한다. 그와중에 훈련관 아저씨와 추, 정안이 칼잡이 이발사에 의해 살해된다. 지령을 내린 이는 한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빨이 빠진 호랑이, 검은털이 몽땅 빠진 너구리처럼 추락해버린 너구리영감은 실체와 배후를 뻔히 알면서도 꼬리 끝을 약간 잘라내는 것으로 일을 덮는다. 배은망덕한 한자 역시 꼬리 끝만 조금 잘라서 생색내는 것으로 자신의 손을 씻는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고서 깨끗한 물에 손을 씻음으로 자신은 상관없다고 자위하던 저 뻔뻔한 빌라도처럼.

권력의 '빈의자'를 노리는 높은 분들 입장에서 한낱 암살자들이야 3mm도 안 되는 대체가능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만, 이런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가는 래생은 분노한다. '사람백정'이니 래생 자신도 죽어 마땅한 존재이지만, 시니컬과 냉소로 자신을 지켜왔던 래생 속 인간이 꿈틀거린다. 

래생이 풋내기 암살자이던 시절, 래생의 암살 작업에 지저분한 흔적이 남아 도피 중일때 만난 여인이 있다. 알뜰살뜰 손도 맵고 살림꾼인 여인을 만나 '일반인'으로 살 수 있는 인생 유일의 기회 앞에서도 상황이 수습되자 다시 암살의 판으로 돌아왔던 래생. 사랑을 버리고 오면서도 기계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암살자로서의 직업병을 발휘하던 냉혈한이었지만, 래생은 이발사의 칼자국이 선명한 친구의 시체 앞에서 자각하고 각성한다. 래생은 '스스로 설계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판에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돌연히 나타난 미토, 미사 자매. 그리고 자매와 엮인 사팔뜨기 사서. 똑같은 3mm인 암살자 래생, 설계자 미토. 사랑이 설계되었다면 래생과 미토의 만남은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도 없겠다만, 둘의 만남은 '똥'에 반응하는 변기 속 사제 폭탄이 실마리가 되었으니 유쾌할 수만은 없을 터. 세상을 바꾸겠다는 미토는 래생 입장에서 '미친년'일 뿐이다.

하지만 잘 만났다. 미친놈 미친년끼리 한바탕 어울려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보자.
아름다운 밤하늘의 폭죽처럼, 권력을 상징하듯 수직 이동만 가능한 엘리베이터들에서 폭탄이 빵빵 터진다.

각성한 래생은 거칠 것 없이 미친 춤사위를 선보인다. 브레이크는 필요없다. 가속페달 하나로 끝까지 가는거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그리고, '농담을 할 줄 아는' 래생은 웃는다. 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웃음이다.  

문학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누군가가 거대 담론을 던진다면 글쟁이 김언수는 저 래생의 마지막 장면마냥 슬쩍 웃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는 '농담을 할' 것이다. 누가 앉든 상관없는 권력의 꼭대기 자리, 그 자리는 그저 빈 의자로 존재하며 억겁의 시간동안 윤회가 되풀이되듯 권력자는 얼굴이 다른 누군가로 바뀔 뿐이며, 영원불변한 것은 그 자리, 빈 의자 뿐이다. 권력자를 설계하고 암살한다 한들 '빈 의자'를 치울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건 래생 말마따나 '미친년' 소리 듣기에 딱 좋다. 하지만 그래도 썩은동아줄 독고다이 마이웨이를 걷는 또라이들이 세상에 있기 마련이고, 세상의 질서 개편까지는 아니어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이들은 지렁이처럼 계속 땅을 뚫고 나온다. 비가 멎고 해가 떠오르면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들은 온몸이 말라 마른 낙엽처럼 죽어가고 개미의 배를 채울 뿐이다. 하지만 지렁이는 끊임없이 땅을 뚫고 나온다. 오직, 꿈틀거리기 위해서. 

나는 김언수가 비 내리는 날 땅을 뚫고나와 태양이 떠오르기 전 아스팔트를 건넜다고 생각한다. 몸이 잘라져도 꿈틀거리고, 암수 한몸으로 외로워도 좋다. 지렁이가 몸에 흰 띠를 두른 듯, 김언수는 태어날 때부터 하얀 종이를 들고 태어났다. 죽음을 담보로한 아스팔트 위의 행보처럼, 미친 존재감 김언수는 몸으로 부딪히고 꿈틀거린 흔적을 날때부터 들고온 종이에 새긴다. 그리고 나는 대가없이 그것을 읽는다. 정말 미안하지만, 뻔뻔스럽게도 책값 얼마를 지불하고선 죽음을 담보로한 흔적을 읽는다. 

 

나는 3mm다. 사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3mm다. 튀어 없어질 수도 있고, 알고보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3mm가 부재함으로 인해 반병신이 되는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김언수는 한국문학의 3mm로서, 그 어떤 골드카드를 들고가도 구해올 수 없는 '물건'이 분명하다. 그의 꿈틀거림, 이무기나 용이 되는 건 관심조차 없고, 그저 지렁이로 세상을 향해 '농담'을 던지듯 '화두'를 던지는 그가 좋다. 그렇다. 그는 '농담을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희귀한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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