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아홉. 대학생이 된 촌무지렁이는 서울에 올라왔다. 적응이 수월치 않아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돌던 때,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 요구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집회 도중 연세대 노수석 학우가 과잉진압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보다 한 학번 위, 그는 95학번이었다. 스물한 살 젊디젊은 젊은이의 희생에 '서울지역 총학생회 연합'(서총련)에서는 대대적인 집회에 돌입했다. 홍익대학교를 비롯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 서부총련에 속한 각 대학들은 총학의 깃발을 세우고 끊임없이 행진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던, 백치와 같은 새내기에 불과한 나도 그 대오에 끼어들었다. 

지금은 불타 없어진 숭례문까지 행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깃발은 드높았고, 분노 역시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순간, 대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큰 목소리로 총학의 깃발을 중심으로 모이라고 외쳤으나 소용없었다. 지랄탄이 터진 것이었다. 페퍼포그 차량에서 로켓이 발사되듯 번쩍하는 순간, 어느새 바닥에서는 미친듯 돌아대며 최루가스를 뿜어대는 지랄탄이 발광하고 있었다. 그 독기와 매섭기는 최루탄 따위가 댈 게 못되었다. 군에 다녀온 예비역 선배들은 그 와중에도 지랄발광하듯 굴러다니는 지랄탄을 밟아 멈추려 했고, 기가 약한 우리들은 양계장에 삵 한마리가 풀린 듯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상가로 들어가 몸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문을 걸어잠근 이들이 많았다. "학생, 얼른 들어와 숨어."라는 건, 8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새내기가 추억하는 어설픈 낭만일 뿐이었다. 주변 상인들은 영업에 지장을 주며 '데모 따위나 하는' 학생들을 노골적인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화장을 막 시작한 풋풋한 여대생도, 아직 고등학생 티를 채 못 벗은 촌놈 무지렁이였던 나도, 눈물 콧물 침범벅이 된 얼굴로 서로를 챙겼다.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보여 그저 반갑기만 했다. 굳이 전투로 따진다면 패배였고, 우리는 패잔병이었다. 지친 기색으로 지하철을 타 학교로 돌아갈 때, 홍해가 갈리듯 승객들이 갈라지며 우릴 피했다. 옷에 밴 최루가스 냄새 때문이었다. 
 



IMF가 도래했다. 나는 군에 입대했다. 내가 새내기였던 96년도에는 잠수함을 탄 공비가 침투했고, 군에 있던 99년에는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전역했을 때, 미대 학우들은 내가 '신학대'에 간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군에 다녀왔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게 변했다. 

오늘내일하던 당산철교가 철거되었다. 새로 지어진 다리로 쌩쌩 지나는 지하철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았다. 교내엔 투쟁가 대신 대학방송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고, 새내기들은 맥주만 마셨으며, 쏘주나 막걸리를 탐하는 나 같은 이들은 홍대의 밝은 빛을 피해 시장통의 다락방으로 기어들어갔다. 기본으로 나오던 선지해장국의 국물을 데우고 또 데워가며 막걸리를 축냈다. 더이상 아무도 광장에 모이지 않았고, 다들 사채빚마냥 늘어가는 대학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정신이 없었다. 총학의 깃발은 더이상 종로를 질주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우리 과의 깃발만을 체육대회 때 앞에 나가 흔들었을 뿐. 많은 게, 변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대신 폴 오스터와 하루키가 득세했다. 너무 무겁던 세월은,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리진>, <엄마를 부탁해> 등을 통해 관계와 친밀감, 사랑, 이해 등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의 결을 떠내던 소설가 신경숙 작가님의 신작이 새로이 출간되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줄여서 애칭으로 <어.나.벨>이라고도 부른다. 만화가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죽음과 맞바꾸는 맛'이라던가. 황복은 담겨있는 접시가 내비쳐질 정도로 얇은 꽃잎처럼, 잠자리 날개처럼 썰어내는 게 보통이다. 굳이 내가 신경숙 작가님의 글을 일러 감정의 결을 '떠낸다'는 표현을 쓴 것은, 잠자리 날개와도 같을 정도로 투명하게 회를 떠낸 황복처럼 감정의 결 하나하나가 소설 속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말은 밖으로 나오면 곧 휘발되며 글은 책으로 남아 시간을 견디니 말보다 글이 더 무거움이 분명함에도, 신경숙 작가님의 글은 때론 무겁게, 때론 민들레 홀씨 위에서도 가뿐히 서서 균형을 잡듯, 무게와 높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잡아낸다.

다만 신작에서 의외였던 것은 청년들, 청춘들이 통과하는 시대가 집회와 열기, 의문사로 얼룩진 어두운 터널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시간적 배경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기에 유신의 시대인지, 군홧발의 시대인지, 믿어달라 말했으나 믿을 수 없던 시대였는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이것은 반대로 '그 어느 시기를 지나왔건 간에 젊음은 치열했고, 치열한 삶 가운데 사랑으로 버텼던 모든 청춘들'의 이야기라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나의 청춘을 길게 늘여 느물거리는 뱀을 지네와 같은 꼴의 다족류로 만들고 말았다만, 굳이 내 젊음의 통과의례를 길게 늘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언제 어느 시기였던간에 우리의 젊음은 치열했고, 싸우고 죽고 소리 없이 묻히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했다.

소설 속에서 어느 누군가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등을 바라본다. 입은 앞에 있으니 등만 봐서는 그의, 또는 그녀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에게 그와 그녀가 말을 건네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말해주는 입이 없어도 바라볼 수 있는 등이 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충분하다'는 것은 내게 이렇다. 소설 속에서 소위 말해 '운동'을 하던,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운동권인 그가 푸짐한 저녁상을 앞에 두고 실종되었을 때. 작가는 '실종'에 대해서는 무겁지 않다. 작가는 단지 사랑하는 그를 기다리는 언니의 마음을 공들여 정성껏 묘사한다. 동생 때문에 무용을 못하는 몸이 되어 생의 줄 하나를 놓은 '언니'를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사랑으로 물들인 '운동하는' 그. 그런 그를 위해 정성껏 저녁을 준비하는 언니의 모습에 대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묘사를 할 뿐이다. 어찌나 다부지고 참하게 묘사를 했는지 마치 갓 시집 보낸 딸아이가 친정을 찾아 친정엄마에게 처음으로 저녁상을 차려 주는 걸 바라보는 듯한 흐뭇함, 충만함, 사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사랑 앞에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만 식사의 주인공이 끝끝내 오지 않았다는 걸 빼곤. 언니가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상은 손 한 번 못 대고 고스란히 버려진다.

실종과 의문사가 끝간 데 없이 무거웠다면 비탄과 절망으로만 흘렀겠지. 하지만 죽음에 이른 사랑을 충분히 보여줬고 오히려 비탄을 감췄기에, 나는 더 아파하고 더 안타까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드러난 슬픔보다 가슴에 품은 슬픔의 멍빛이 더 푸르른 법이다. 너무나 큰 슬픔은 드러내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꾹꾹 눌러 고봉밥을 담듯 사랑은 밥처럼, 슬픔은 밥처럼 꾹꾹 눌러져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먹이려던 마음, 맛나게 먹어줄 이가 실종되었을 때 버려진 밥들. 밥은 실존이고 사랑은 추상이라 말하지만, 소설 속에서 사랑과 슬픔은 아끼고 아껴 표현되나 몸을 사르고 목을 매달만큼 구체적이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구체적이다. 이런 게 '작가 신경숙'의 능력 아닐까. 나도 그 순간에는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기가 차마, 쉽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를 잃은 언니는 끝내 삶을 포기한다. 불꽃 속 언니의 죽음을 막으려했던 동생 미루에게 남은 상처, 그리고 화상의 흔적. 그런 미루를 바라보는 윤과 명서, 그리고 윤의 등을 바라보는 한 남자, 단. 사랑이 깊어질수록 사랑이 멀어짐을 목도하게 되는 관계. 하지만 충분하다. 그녀의 입술은 다른 그에게 향했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시야에 있으므로. 뒷모습 하나로도 충만했던 그, 그리고 군입대한 단의 돌연한 죽음. 또 다시 이어지는 또다른 죽음. 그리고 죽음. 
 

하지만 충분하다. 비통이 흘러 넘쳤다면 넘치는 감정이 부담스러웠겠지. 그 시절엔 죽음이 친구처럼 머물렀고 어두움이 안개처럼 내려앉았지만, 그들은 사랑했다. 뒷모습이라도 온전히 사랑했기에 죽음이 무거우나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죽음이 남았고 남은 자들은 하나의 길이 아닌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래도 청춘의 페이지는 찢어버리거나 구겨버릴 수 없는 것이다. 결과만을 따지자면 세상에 슬픈 사랑만이 가득할 것이나, 아름다웠던 그 때, 그 순간을 생각한다면 그래도 세상은 눈부신 사랑으로 가득찰 것이다.

나는 다만 한마디만 하고 싶다. 내 사랑아, 끝까지 견뎌다오, 살아만 있어달라고.

어디 있든, 네가 어떤 삶을 살더라도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며 우리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눈부신 사랑으로 기억할 터이니 부디, 살아만 있어달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