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학교 -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5
전성희 지음, 소윤경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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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내가 A에게 최고라는 말을 붙였는데, 다수의 다른 이들이 A가 최고라는 칭호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내 식견의 수준은 그저 그런 것으로, 나는 그저 '최고'라는 말을 남발하는 헤픈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럴 때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지식인'인 척하려면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나 네 개 반 정도를 부여하며 말미에 시니컬한 문장 하나 덧붙인다면 수준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혹 반박이나 구멍이 발견될지라도 "거 봐, 정말 뛰어나지만 2% 모자라다고 내가 그랬잖아?"라 한마디면 되니까.

'무엇은 무엇이다!' 라 단정짓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건 없다. 단정에는 경험과 확신이 필요한데, 요즘 세상엔 적당히 두루뭉술한 게 더 잘 먹힌다. 황희 정승 흉내내며 "한우가 미국소보다 나은데 대놓고 얘기하면 미국소가 삐지잖아요."하는 게 처세의 키워드이지 않은가? 강바닥은 왜 파헤치는지 모르겠는데 하면 되고, 파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민 삶은 더 힘들어졌지만 각하는 서민을 위한 영원한 등불이십니다! 라는 속보이는 거짓말도 같은 맥락. 아, 그러고보니 현 정권의 실무자들은 <거짓말 학교>에 등장하는 '거짓말 학교' 최우수 졸업생들인가 보다. 거짓말 학교에서는 말 그대로 국익을 위한 '하얀 거짓말'을 가르치는 게 최우선이므로.

대운하에 배 띄우고 신선 놀음하듯, 너무 길게 돌아왔다. KTX타고 부산 가듯 결론을 재빠르게 말해보자. <거짓말 학교>는 최고다. 대단하다. 뭐? 그럼 <거짓말 학교>는 고결하고 티 없는 순결함을 지녔냐고? 물론, 완전무결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 아쉬움이 아주 없을 순 없으니. 뭐냐? 그렇담 빠질 구멍을 마련해 놓고 최고라는 말을 갖다 붙인거냐? 라 물으신다면, 단 한 마디로 답하겠다.
한번 써봐라. 이만큼 쓸 수 있겠는가?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건 사람이 썼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사람도 본디 완전무결하여 흠 없는 이는 없으므로. 

<거짓말 학교>는 작품 자체로도 굉장한 미덕과 완성도를 지녔지만, 이 책이 나온 시기 또한 시기적절하다 하겠다. 무릇 어떤 상품이 소위말하는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선 완성도는 기본이오, 시류를 따르거나 리드하는 시의성, 화제성, 독창성이 필요하다 하겠다. 일단 <거짓말 학교>는 탄탄한 완성도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이 파도치는 이 시기에 나왔으니 시의성 또한 확보했고,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첫 작품인 점에서 화제성을 지녔고, 그 어느 동화, 아동문학 어느 판에서도 볼 수 없었던 거짓말로 말하는 진실을 담았으니 화제성 또한 담보했다 하겠다. 4대강 파헤치느라 교육과 도서관 예산을 비롯한 복지, 서민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으니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만, 돗자리 깐 심정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대박감이다. 물리적으로 대박이 안 되다면, 뭐 심정적으로다가 대박이 났다고 해두자. 내가 만약 원로 동화작가라면, 이런 쌩쌩한 후배가 등장해준 것을 축복으로 생각할 터이다.  


앞서 말했듯 거짓말 학교는 국립최고명문의 거짓말 사학으로, 실미도 특수부대 훈련시키듯 외딴 무인도에 세워진 거짓말 특수교육기관이다.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입학 가능한 아이들을 체 치듯 솎아낸 후, 비밀 면담과 테스트를 통해 입학 가능 여부를 최종 심의한다. 민사고? 특목고? 외고? 다 저리 가라해라. 우습다. 거짓말 학교에 한번 입학하면 숙식, 유학, 취업, 100% 국가가 보장해준다. 남극으로 유학을 간다해도 모든 비용은 국가가 처리, 영수증 끊어준다. 단, 수료 후 국내에 복귀하여 아름다운 거짓말로 국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충정만 보이면 된다. 이런 좋은 조건이니, 난다긴다하는 애들 다 모였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으니 초등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거짓말 학교 내부에서의 경쟁은 치열하다. 과제에 필요한 도서관 자료, 몽땅 빌려놓고 없다한다. 리포트 작성 완료했음에도 '아직 다 못했어. 끝나면 책 빌려줄게'라는 거짓말은 아주 앙증맞고 깜찍한 거짓말이다. 대표적인 거짓말인 국회의원 공약을 비디오로 감상하며 거짓말의 허와 실, 거짓말의 단계, 공약이라 쓰고 거짓말이라 읽는 속 뻔한 거짓말의 빈틈을 파헤친다. 우수 졸업생 초청 때는 온갖 구라로 국익에 이익을 안긴 '멀쩡하게 생긴', 심지어 '성공한 기업가'처럼 보이는 구라쟁이가 등장해 주신다. 예컨대 "당신 비만이에요. 비만 기준은 A인데 당신 상태는 B니까 심각한 상태예요. 이 약 한번 먹으면 찜질방에서 땀 빠지듯 살 빠져요."라 말해보자. 이 말을 외국에서 말해보자. 이 진짜 같은 거짓말이 먹히면 외국에 메이드 인 코리아 다이어트 약 대박 수출, 외화 보유고 상승, 국익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엄청 기여한 거다. 

이런 순 거짓말쟁이들.

<거짓말 학교>는 두 소녀의 다테마에와 혼네의 교차편집이다. 앞에서는 '나는 네 친구야.'라 비즈니스 타입으로 말해 주시고, 속으론 '이 기집애야, 늬 부모 이혼한 거 다 알거든? 이 학교 나가면 갈 데 없는 거 다 알거든?'이라거나, '너랑 마음이 통해'라 말해 놓고선 '너 혼자 쿨한 척하지마.' 이런 식이다. 보이는 모습, '내 친구'의 모습은 내 눈에 선하지만, 바로 다음 장에 이어지는 '내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의 속마음은 또 다르다. 속고 속이고, 포장하고 감춘다. 거짓말은 커지고 커져, 진실이 거짓말인지, 거짓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카오스에 다다른다. 아, 장자의 호접몽이구나. 나는 고등동물 인간인가, 나비목 곤충에 속한 팔랑팔랑 나비인가, 딱 그 수준. 
 

'거짓말 학교'는 근미래 또는 바로 오늘 내일 같은 현실이 배경이지만, 다분히 SF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거짓말을 가르치는 국립 거짓말 학교?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지만 저인망 그물처럼 워낙 탄탄하게 얼개가 짜여있어 '진짜 이런 학교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SF적 상상력의 시발점인 '거짓말 학교'라는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이며, 개연성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 창대하게 시작한 SF가 용두사미가 되는 허술함 또한 찾아볼 수 없다. 두 소녀와 주변인물들간의 심리전은 고도의 첩보전을 보는 듯, 미스테리와 추리물의 성격까지 띄고 있으나 전체적인 통일감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기에 마지막 장까지 결말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나 어설픈 마무리가 아닌, 바짝 얼었던 유리화병에 갑자기 뜨거운 물을 끼얹은 듯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긴장감 또한 백미이다. 화병에는 아름다운 꽃이 꽂혀 있었으나 그것은 보이는 것에 불과했던 것일 뿐. 얼었던 유리화병이 뜨거운 물을 만나 깨지며 드러난 것은 줄기에 숨겨진 가시, 아름다운 꽃이 빨아올리던 더러운 물이다. 뜨거운 물은 진실, 가시와 더러운 물은 거짓이다. 아, 차라리 깨지지 말고 여전히 아름다운 꽃으로 눈이 즐거웠으면 좋았으련만. 뜨거운 물이 표면에 닿자마자 '쨍!'하고 갈라질 때, 이야기 속 아이들의 마음 또한 쩡! 하고 갈라진다. 파편은 아름답지 않다. 반짝이는 사금파리가 아니라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아기 발바닥같은 아이들의 마음에 무수한 상처를 내는 깨진 병 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거짓말 학교>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차라리 진실이라 믿고 싶은 거짓말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로 차라리 어른들과 이 세상에 길들여지는 게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 같은 동화, 동화 같은 현실. 
 

아아, 이 작품이 허구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실 같아 무섭다. 이런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게,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살고 있음이 개탄스럽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했으니, 모든 언론이 권력의 '펫'이 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작품이 현실을 반추하게 만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단 감사하자.

<거짓말 학교>는, 정녕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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