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봉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제프리 브라운 고양이 시리즈
제프리 브라운 지음, 사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애묘인, 애견인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어찌보면 우리 나라가 선진국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갈수록 조직화, 개인화되는 사회, 누군가를 책임지고 거느리기보다는 홀로인 게 더 좋은 사회. 결혼은 늦어지고, 출산율 또한 낮아진다. 어느 소설에서는 혼자여서 외로운 게 아니라 둘이 있어 오히려 외롭다 했던가. 군중 속의 고독이 날로 심화되어, 모두들 안 그런 척하지만 홀로 남겨진 집 현관문을 들어설 때면 쓸쓸함과 처연함이 감돈다. 이 때 나를 반겨주는 외침. 멍멍! 또는 이야옹! 

반려동물 중 으뜸인 게 개와 고양이인데, 개를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캐릭터가 분명하게 나뉜다. 고양이를 기르는 쪽은 좀 더 시크함을 추구한다고 해야할까?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도도하고 우아하다. 개를 홀로 남겨두고 출근하면 개는 외로움에 몸을 떨며 우울증에 빠져들 확률이 높지만, 고양이는 퇴근하는 동거인(결코 주인이 아니다!)을 보며 "왔썹? 그러면 얼른 와서 내 앞에서 재롱 좀 떨어봐!" 하는 식이다. 의도든 아니든 간에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쿨함'을 좇는 경우가 많고, 초등학교 짝지와 나란히 앉은 책상에 선을 긋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투명의 선을 긋고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이런 사람들, 알고 보면 많이 외롭더라. 외로움을 타더라. 어찌보면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외로움에 처하되 추하지 않고, 스스로를 외로움에 떨어뜨려도 태생적으로 도도하고 우아한 고양이에게서 위안을 얻는지도 모른다. 아, 성급한 일반화라 하여 돌 던져지는 소리 들려온다. 잠깐 피해 주시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고양이 관련 책이 있어 소개해 본다.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고양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외롭다면, 그래서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볼 것을 권한다. 백발백중, 당신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위로와 안식을 느낄 것이다. 사실 난 어느 동생에게 이 책 중 한 권을 이야기하다가 조금 울 뻔했다. 옛날에 우리집 마당을 뛰놀던 강아지 예삐와 고양이 나비가 생각나서였다. 작명 센스 제로라고 욕하지 마시라. 시골에선 다 그랬다. 그리고, 옥탑방에서 자취할 때 기르던 토끼 꿈키와 아몽이가 생각나서였다. 여름 장마, 며칠째 비 내리던 날, 펫샵에서 파는 토끼가 아니라 시골에서 받은 토끼라 일절 사료 따윈 안 먹던 꿈키와 아몽이. 시장에 나가 푸성귀라도 얻어볼까 했는데 채소 파는 아주머니는 한 분도 보이지 않고, 자취방 앞 대학 캠퍼스에 숨어들어가 잔디며 뭐며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풀을 뜯어왔으나 젖은 풀을 안 먹던 둘. 며칠 만에 비가 갠 어느 날, 꿈키는 몸을 쭉 뻗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묻을 수 없기에, 내 손으로 쓰레기 봉투에 뻣뻣해진 꿈키를 담았었다. 아, 또 말이 길어졌다. 아아, 또 눈물이 나려한다. 집어 치우고, 위로 받고 싶은 당신,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 사랑스러운 야옹이들의 모습을 담은 책을 추려봤다. 그리고 또, 어디에선가 이 글을 보고 있을 어느 누군가에게도 말을 전한다. 울지 마요. 이 책을 보고 웃길 바라요.

단 한 쪽의 그림을 보고 꽂혀버리다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다. '고양이 만화'는 사실 적지 않은데, 대부분의 고양이 만화가 의인화된 고양이, 심지어 직립 보행을 하며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고양이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반해 이 작품은 고양이 그 자체를 보여준다. 작품 속에 '사람'이 등장하긴 한다만 '사람 남자'나 '사람 남자와 동거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 여자, 엄마'는 조연에 불과하다. 고봉빠 - <양이가 투에서 져나오는 방법> 은 고양이의 일상을 그린 한 쪽 내지 두 쪽의 짧은 만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만화는 손바닥만 한 드로잉북에 끼적인 듯 허허롭지만 만화가 담아낸 고양이의 일상은 놀랍도록 디테일하다.  
책 뒷면에 보면 나오지만, 이 책을 맡은 편집자는 책을 만들며 잠깐의 인연을 맺었던 길고양이 '니케'와의 추억에 잠겨 행복했다고 한다. 편집자는 번역까지도 직접 맡았다는데, 그게 출판사의 원가 절감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읽어나가는 동안 한 단어 한 단어를 옮기며 애정을 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무려 '자문'까지 받았다는데, S대 교수나 박사가 아닌 고양이 카페에서 활동 중인 애묘가가 나섰단다. 마지막으로 표지의 제목과 본문 말풍선 안의 캘리그래피(손글씨)를 맡은 분 역시, 고양이 '부르쓰', '에밀리'와 동거중인 애묘인이란다. 이 작품이 왜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작품인지는 이해 되셨을 듯.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꽂힌 한 장면을 소개해 본다.


단 한 쪽의 그림이다. 사람의 대사라곤 훌쩍과 흑흑 뿐이다. 고양이의 대사도 고르르릉, 냥, 야옹, 야아옹 뿐이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컷, 사람은 더 이상 훌쩍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그의 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세상 어느 위로의 메시지보다 더 강렬하고 따뜻한 한 마디를 외친다. 고르르릉.

나도 누군가에게, 훌쩍이며 울고 있는 슬픔에 잠긴 누군가에게, 슬픔에 동참하며 이렇듯 온몸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고르르르릉. 울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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