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꼬마 뻐드렁니가 뭐 어때
패티 로벨 글, 데이비드 캐트로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책의 주인공 몰리는 모든 어린이책의 주인공 중 가장 못생겼다. 그리고 가장 작고(엄지공주 등 특별한 케이스 말고, 인간 주인공 중 말이다), 게다가 치열도 형편없는 희한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형편없는 외모의 아이는, 서글프게도 '여자 아이'이다! 뭐 대충 동화라는 거 들춰보면 피부는 하얀 눈처럼 보드랍고 눈부시며 입술은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처럼 붉다느니 뭐라느니 공주로 태어난 여자아이 외모 묘사에 한 페이지가 훌렁 날아가는데, 우리의 주인공 몰리는 동화작가의 '외모에 대한 묘사' 부분은 건너뛰라고, 어디 가서 천천히 차나 한잔 마시고 오라고 주인공이 작가의 등을 떠민 듯하다. 이런이런, 이런 외모로는 일곱 난장이의 시중은 커녕 몰리 혼자 일곱 노동자의 시중을 친히 거들어야할 비주얼이다. 왕자의 입맞춤은 커녕 '공주를 납치한 괴물' 쯤으로 오인받아 공격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떻게 애들 보는 그림책에 이토록 흉측하고 못생긴 애가 주인공일 수 있담!!!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책의 주인공 몰리는 모든 어린이책의 주인공 중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속한다. 어느 정도냐면, 삐삐 롱스타킹에 버금갈 수준이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몰리, 아주 매력적인 아이다. 도대체 왜 '가장 작고', '뻐드렁니에', '목소리는 도살장에서 울려오는 짐승의 메아리' 같은 몰리가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몰리의 멘토인 할머니의 지혜로운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며 스스로 빛을 발하는 자존감 충만 몰리의 생명력에 있다. 예컨대 '일 학년 중 가장 작고 심지어 강아지만 한 몰리'에게 할머니는 '씩씩하게 걸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 씩씩하게 걸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몰리를 우러러볼 테니까. 

그리고 몰리는 걸었다. 씩씩하게. 할머니의 말씀처럼.  

몰리는 확인한다. 할머니의 말씀이 옳았음을. 사람들, 심지어 짐승들까지도 몰리를 우러러본다.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할머니의 지혜로운 격려와 가르침 덕에 몰리는 자신의 단점마저도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승화시킨다. 목소리 좀 깨지는 듯하면 어때? 몰리는 노래 부르는 걸 '즐거워하며', 더욱 목청을 높이고 더욱 당당하게 노래를 부른다. 순도 높은 즐거움이 담긴 몰리의 노래는 밤하늘 아래 수많은 이들을 청중으로 불러 모은다. 몰리의 무대, 온전히 몰리가 장악하며 몰리가 주인공되는 무대. 자신감은 자신감을 낳고, 자존감은 인파 속에서 스스로를 빛이 나게 한다. 발광생물이나 반딧불이처럼, 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으로 자신을 빛으로 휘감는다. 노래면 노래, 걸음걸이면 걸음걸이, 환한 웃음이면 웃음.

심지어 몰리는 전학간 학교마저도 자신의 무대, 자신의 세계로 포섭하는데 성공한다. 호시탐탐 빈틈과 놀려줄 거리만 찾던 새로운 학교의 터줏대감 소년마저도, 몰리의 당당함과 매력에 흠뻑 빠져 수줍은 듯 친구하자며 손을 내밀게 된다. 환경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몰리가 바뀌었고 몰리가 움직였기에 결국 세상 모두가 움직인 셈이다. 몰리를 골탕먹일 궁리만 하던 소년과도 친구가 된 날 밤, 몰리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 할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할머니

할머니 말씀이 다 옳았어요!

사랑스러운 소녀 몰리 올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런가? 사랑스러운 손녀 몰리의 편지를 읽는 할머니 역시, 강아지보다 더 작은 키에 몰리와 판박이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이건 뭐 영락없는 '늙은 몰리' 되시겠다. 아하, 이쯤 되자 무릎을 치게 된다. 할머니 역시 작은 키와 못생긴 외모, 결코 달콤하지 않은 음성을 지녔지만 당당하게 걷고 활짝 웃으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기에 세상의 중심이 되고 세상이 할머니의 무대가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인생, 뭐 별 거 있나. 생각대로 살면 되지. 처음 시도, 처음 노력은 주변의 비웃음감이 되기에 딱 좋다 해도, 무슨 상관이냐. 인생은 길고 무대는 넓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데, 누가 웃건 무슨 상관이람. 나는 나를 이토록 예뻐하고 있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도대체 저 친구의 매력이 뭘까? 잘 모르겠지만 끌린단 말이야!'라 생각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힘이다. 일도 사랑도, 관계도, 일단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의 힘'에서 비롯된다. 몰리처럼, 몰리의 할머니처럼, 당당해라. 내가 나를 믿고 나를 보증한다는데, 안 될 게 무어냐, 까짓. 나를 사랑하는 내가 그 힘으로 너를 사랑한다는데, 그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 있단 말이더냐, 당신.
나를 찾으면, 그때부터 비로소 우주의 톱니바퀴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사랑하자. 나를, 소중한 너를.

덧붙임>책의 표지를 보자. 몰리는 누가 흘리고 간 물건인 양 땅꼬마에 못생긴 소녀이지만, 그 그림자만큼은 책을 훌쩍 벗어날 만큼 크고 길다. 밝은 풀밭에 서있지만 유독 몰리의 그림자만 크고 길다. 그리고 그 그림자 뒤로 유독 눈에 띄는 민들레 홀씨와 나비 한 마리가 보인다.
당당한 자는 비록 작은 체구를 지녔을 지라도 그 여유와 인덕은 세상을 덮기 마련이다. 그의 날개 아래 꽃과 나비는 모여들고, 민들레 홀씨가 가녀린 몸을 날려 세상에 퍼지듯 여유와 사랑은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어린이책, 특히 그림책은, 그림과 글로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림책은 보면 볼수록 신비롭고 재미난 장르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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