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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어떻게 작가가 되신 거죠?"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미싱을 했어요. 밤낮없이 일해 19만 원을 벌었죠. 그런데 어느 누군가가 제 글을 출판사에 보냈는데, 실어주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집에 전화가 없어서 우편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원고료를 입금할 테니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했죠. 60만 원이 들어왔어요."
"......"
"40만 원으로 작은 방을 얻고, 남은 돈 얼마로 상을 샀어요. 그전까진 밥상이 없어서 바닥에 찬을 펼쳐놓고 식사했거든요. 그래서 밥상 위에 뜨거운 밥과 찬을 차려놓고, 아이들 앉혀 놓고 얘기했어요. 살 길이 생겼다고."
"......"
"글쓰기를 그만두면, 전 다시 미싱을 할거예요. 글을 쓰는 '작가'라 부름받고 있지만, 전 독자 앞에 서기가 여직 부끄러워요."
공선옥. 독자 앞에 서기가 아직도 부끄럽다는 소설가 - 아니 전직 미싱사 - 의 이름.
하지만 독자인 나는,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또한 부끄럼타는 전직 미싱사의 작품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또한, 부끄럽지 않다. 아니, 자랑스럽다.
어느 누군가는 왜 하필 다시 광주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담 나도 반문을 해보자. 불경기니까 말랑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써도 팔릴까 말까한 판국에 왜 무겁고 우중충하고 심지어 '트렌드'에도 뒤쳐지는 광주가 왜 다시 얘기되는지, 반문해 보자.
"그들이 겪었던 슬픔이 잊혀졌을까? 그들이 뿌린 피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우리는 깨끗하고 공평하며 수평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라고 말이다.
하지만 또 어느 누군가는 받아 치겠지. 무슨 전당포에 물건 맡기듯, 한국 문학은 툭하면 과거에서 이야기를 끌어올린다고, 무슨 동네 어귀 공동 우물도 아니고, 이놈 푸고 저놈 푸고 두레박이 닳겠다고. 그토록 시대에 빚을 져서 언제 빚더미에 이자 청산한 후 번듯한 살림을 차릴 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저 억압의 세월을 영감의 화수분쯤으로 알고 전축에 흘러간 노래를 걸어놓듯 그 타령이 그 타령이라고 할지도. 일본 소설 봐라, 얼마나 트렌디하고 소재 다양하면 원 소스 멀티유즈의 표본이 되어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냐고 말이다.
깨끗하다면, 그 피에 떳떳하다면, 우리 작가들이 왜 다시 이야기를 꺼내겠는가. 그 어렵다는 한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글쟁이들이 대한민국에 수두룩한데, 왜 새로운 레퍼토리를 꺼내들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덮어지고 가려진 게 너무 많다. 때가 많고, 우리는 떳떳하지 못하다.
"전 집을 사지 않을거예요. 그리고 출판사에겐 미안하지만, 이 책이 많이 안 팔렸으면 좋겠어요. 권력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권력에 대항해야 하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건 자본이니까, 자본에 저항할 거예요."
"(처자식 딸린 가장인 저는)어떻게든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 게 나름 목표인데요. 제가 너무 속된 건가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마다 길이 있고, 길은 다른 거예요."
"......"
"이 책에 나온 죽어간 아이들, 모두 제 곁에 있던 아이들이에요. 이름도 생전의 이름 그대로구요. 죽은 이들의 이름은 실명이에요. 오로지 살아남은 자들만 가명을 썼지요. 행여 이 책이 100만 부 쯤 팔린다 해도, 저는 인세를 통장에 넣어만 두고 꺼내 쓰진 못 할 거예요. 가장 예뻤던 시절에 죽어간 내 친구들을 생각한다면, 그 돈을 쓸 수 없어요."
"......"
죽은 자들은 이름으로 살아 제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산 자들은 가명 뒤에 숨어 소설 속에서도 자릴 피한다. 죽은 자의 무덤은 양지 아래 새순이 돋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늘 아래에서 햇볕 아래 누운 자들을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탓도 하다가, 다시 자신의 가슴을 친다. 전직 미싱사의 친구는 다친 시민들을 위해 헌혈을 하러 가다 총탄에 맞아 숨졌고, 바로 곁에서 그 피를 뒤집어 쓴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사랑하고, 결혼을 하는 '이상한 세상'을 탓하며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동네에 플랭카드까지 걸렸던 똘똘했던 친구 또 누구는, 고문 후 아비 어미 손목 한번 못 잡아보고 생이별하듯 군대에 끌려간다. 군대에 끌려간 이의 후배 누구는, 고문을 받다 사망한다. 그리고 이쯤에서 유행어 하나 나와주신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는. 그리고 군바리된 그친구, 휴가를 불과 얼마 앞두고, 밭일하는 노모와 똘똘한 아들을 둔 것을 평생 자랑으로 삼는 애비를 놔두고, 그 똘똘하던 아들은 제 손으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 그게 80년대, 20C의 일이다.
그리고 21C,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는, 정권이 바뀌면서 간판을 내렸다. 메뚜기도 한철, 닭갈비도 한철, 인권도 한철. 정권이 바뀌면 작년에 샀던 수영복 따위는 의류 수거함에 던져 버리자. 아무리 노릇노릇 선탠을 잘했든, 아랫배에 칼로 그은듯 복근, 식스팩을 새겼든 간에, 정권이 바뀌면 유행이 바뀌고 작년에 입던 옷 따윈 버려 버려야 한다. 그런 것이다. 인권 역시 유행인 것이다. 죽은 자는 말만 없는 게 아니라 돈도 없다. 왜 자본에 저항하겠다고 하는지, 녹색 개발로 온 국토에 땅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이가 집권한 이 시기에, 왜 집을 안 사겠다고 전직 미싱사가 말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죽은 자가 단순히 말만 없고 돈은 있었더라면, 아니면 땅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달라졌겠지.
"왜, 왜, 니가 미안한 건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건데? 진짜 미안해해야 할 사람들은 가만있는데에, 왜, 왜 그러는 건데에." _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본문 76쪽
"나 말고 다른 사람 때문에 울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답지. 자신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좀더 아름다워질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아름답구나." _본문 211-212쪽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슬픔과, 아픔과, 기다림과, 추억과, 회한이 담긴, 그러니까 인생이 담긴 이야기다. 80년 광주가 소재가 되었다지만, 광주의 그날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모아봤자 몇 쪽, 몇 줄이나 될까. 그러니까 이것은, 살아남아 가명을 쓰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시절, 그 후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아직 좀더 흔들려도 좋을 때잖아."만영은 승희로 인한 가슴앓이를 조금 더 해야 될 모양이었다. 그렇게 가슴앓이도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떠돌기도 하면서, 바람 앞에 선 들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기도 하면서, 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청춘은 조금씩 단련되어가리라. 기필코 살아서 경애, 수경이, 승규 몫까지 굳세게 살아서 마침내 아름다워지고 말리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눈물을 거두고 조용히, 그리고 힘차게 건배했다. _본문 300쪽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남아서, 굳세게 살아서, 마침내 아름다워져야 한다. 좀더 흔들려도 좋을 청춘들에게 던지는, 책의 막바지에 담긴 전직 미싱사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미싱 페달 언저리에 떨어진 자투리 천조각처럼, 비루하나마 그게 희망이다. 그리고 솔기 터진듯한 그 희망에, 청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고, 오늘을 완성한다.
공선옥 작가님과의 대화는, 2009년 5월 30일(토)에 열린 출간 기념 사인회 직후, 뒤풀이에서 오고 간 내용을 간추렸음을 밝힌다. 겸손하고 조용히 말하는 작가님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자리에 술이 있었으나, 나는 취하지 않았다. 다만 기억이 짧아 순간의 기억들을 모두 다 옮겨오지는 못했다는 것 역시 밝힌다. 그 자리에선, 그토록 심장이 뛰고 피가 들끓어 올랐는데.
......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출간 기념 사인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다음날이었다.
기억이 짧더라도, 잊지는 말자. 감정적이 되지도 말자. 우리는 다만 가명 뒤에 숨어 실명으로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흘린 피에 당당해지자. 그리고 그날이 오면, 트렌드를 선도하고,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뭐든 얼마든지 만들어도 좋은 재미난 이야기를 쓰자. 그 피에 당당해진 후에, 권력에 의해 타살된 수많은 영혼의 헤아릴 수 없는 피에 당당해진 그날 이후에, 맘껏 웃어도 좋을 재미난 이야기, 100만 부 쯤 팔아치운 후 통장에서 맘껏 돈 꺼내다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자.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