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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을 걸다 - 백성현 포토 에세이
백성현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잘 쓴 글은 아니다. 아무렴, 당연한 소리. 가수가 쓴 글이니까. 소설가가 노랠 불러 음반을 냈다고 하면 비슷한 반응 나오겠다. 잘 부른 노래는 아니라고. 아, 그러고보니 소설가 한강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라는 책을 내며 자기가 부른 노랠 담은 음반을 붙여 줬구나. 책 뒤 보랏빛 봉투의 은박 스티커를 떼면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내밀던 보랏빛 CD. 어쿠스틱 기타의 프렛과 넥 위로 손가락이 스륵, 스쳐지나갈 때 나는 기분좋고 매력적인 현의 쇳소리처럼, 마디마디 깊게 내쉬는 소설가 그녀의 떨리는 숨소리. 조용함과 나긋한 음색이 매력인 노래들. 한강이 직접 쓰고 곡을 붙인 노래들. 하지만,
가만가만 소설가 그녀의 숨소리는 여리고 새로웠으나 그녀의 노래를 말하자면 귀가 호사를 누릴 정도는 아니었다. 한강은 소설가이고, 가수가 아니니까.
노랠 부르는 소설가 한강이 그랬듯, 가수인 빽가가 백성현이란 이름으로 쓴 책은 거듭 말하지만, 잘 쓴 글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도, 대필작가에게 알바비를 지불했을 리가 없는 책이다. 백성현이 직접 쓴 이야기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는 투박하다.
그러나 그 투박함에 나는 경의를 표한다.
행여 코요테의 노래가 싫어요, 빽가의 랩은 데스 메탈(death metal)에 제주도 방언으로 가사를 붙인듯, 생크림 케이크에 초고추장으로 간을 한듯 부자연스러워요, 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거야 뭐 개인 취향이니 미성년 여학생들이 떼거지로, 그것도 빤쓰같은 바지 입고 나와 온몸 흔들며 노랜지 뭔지 몇 마디 해도 '짱이에요!'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나처럼 심수봉 선생님은 정말 짱이에요!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대중음악평론가도 아니니 코요테와 빽가의 노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생각도 없거니와, 코요테가 좋든 싫든 난 아무래도 상관 없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니까. <당신에게 말을 걸다>의 백성현은, 연예인으로서의 메이크업과 조명 따윈 싹 걷어버리고 미칠듯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굳이 백성현의 친구 정지훈이가 인정했다고, 백성현이 빽가이듯 정지훈은 '비'라고, 워얼드 스타 비가 인정한 사진쟁이가 백성현이라고, 그렇게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포장하지 않아도 사진쟁이 백성현은 충분히 멋지다. 그러니 연예인이 써봤자 뭘 쓰겠어,라 색안경을 끼지 말고 그저 사진을 좋아하는, 그리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노력할 줄 아는 한 남자가 쓴 자기와 사진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봐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포토그래퍼 백성현이 촬영한 정지훈의 벗은 상반신, 빨래판 같은 식스팩 사진이 이 책에 실려있다 해서 책이 잠깐이나마 검색순위 상위를 링크했다는 것이다. 뭐냐, 이거. 한 사람의 눈물겨운 노력과 사진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이 책이 워얼드 스타의 복근, 뱃살만도 못하다는 것이더냐. 그 사진 보니 어둡고 침침해서 빨래판인지 아랫배인지 잘 보이지도 않더만.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백성현의 흔적과 사진과의 인연을 담은 책이니 '일기'로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이 '일기'를 그저 맑음, 흐림, 몇 시에 일어나 숙제하고 밥먹고 게임하고 친구와 놀다 들어와서 씻고 잤다'류의 방학숙제식 일기로 보면 곤란하다. 이 일기는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웃는 날보다 우는 날, 고민하는 날, 방황하는 날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일기이다. 그리고 그런 눌림 속에 끝내 성취하고 이루고, 다시 도전하고, 더 큰 것에 도전하고, 후학들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대견한 일기이다. 단순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일기. 밀린 방학숙제식 일기가 아니라 매일매일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쓴 솔직한 일기. 그게 바로 백성현의 <당신에게 말을 걸다>라 말하겠다.
'성취를 이룬 문학작품', '미문', '철학적 사색이 돋보이는 진중한 본격문학'을 찾는다면야 굳이 이 책을 권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당신이 지닌 능력을 그저 신선놀음을 구경하는 나뭇꾼의 도끼자루처럼 내버려 둔 채 썩히고 있다면, '뭘 해야할지도 모르고',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야근과 특근은 하기 싫은데 연봉은 많이 받고 싶다'라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뭘.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런 분들, 조금 부끄러워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나도 이정도는 하고 있다!", "나도 사진쟁이 백성현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 미친듯이 좋아해서 빠져드는 일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하고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당신에게는,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를 꼭 해야겠다.
나는 당신을, 열심히 사는 당신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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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으로 일하는 당신, 무얼 해도 될 것이다. 시간이 누적되면, 당신은 분명 무언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애정과 열정의 만남은 투박한 질그릇도 보석처럼 빛나게 하는 법이니까. 당신도, 나도, 꿈을 이룬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