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거리 문학동네 동시집 3
곽해룡 지음, 이량덕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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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렵다. 쓰기에도 어렵지만 읽기에도 어렵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 되면 항상 거론되는 큰 시인 고은은, 자기에게 있어서만큼은 소설이란 예술적 단계에서 하급이며, 시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 시 100주년을 맞이해 고은 시인이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을 인용하자면 시는 우주와 교섭하는 행위란다. 시인의 말마따나 소설은 인간의 굴레에서 노는 것일진대 우주와 통하는 시 쓰기는 얼마나 경이롭고 얼마나 초월적인 행위인가. '창작'이란 말이 꼭 들어맞는 문학 장르가 바로 시 쓰기라 하겠다. 국내 생존 시인 중 첫째로 꼽히며 '국민 가수' '국민 여동생' 에 이은 '국민 시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고은. 춘추가 무색케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시작 활동을 펼치는 고은 시인이, '우주와 교섭하는 행위'라 밝힌 시쓰기. 쉽게 생각해도 어렵다. 교단에서 물러나 이제 더 이상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닌 김용택 시인이라면 시 쓰기가 별거냐 밭 매는 것과 일반이지, 라고 시 쓰듯 말할지 모르겠다만. 그건 시 쓰기가 밥 먹고 똥 누듯 일상의 경지에까지 오른 사람들이 쉬이 말하는 게 아닐까. 범인이자 한낱 독자에 불과한 나로서는 어렵고도 어렵다.

그러나 시 쓰기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바로 '동시 쓰기'이다. 물론 동시는 넘쳐나고 책도 술렁술렁 나오지만, '제대로 된' 동시 쓰기란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그저 강아지 좀 뛰어놀고 나비 좀 팔랑거리고 아가 몇 명 기어 다니고 봄비 부슬부슬 이슬은 초롱초롱 한다고 다 동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팔랑, 부슬, 초롱, 멍멍 하면 동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데 있다. 그런 가벼운 생각과 오해를 길게 늘어빼어 연장해 본다면, 소설보다 짧게, 문장은 쉽게, 주인공이 초등학생이면 동화가 된다는 결론 나와 주시겠다.

<맛의 거리>. 홍대 앞 먹자 골목에 이은 또다른 스트리트 인가. 작가 약력을 보니 돈을 벌기 위해 서울행 열차를 타고 중, 고등학교 교과 과정은 검정 고시로 마치고, 현재는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한다. 바둑이나 두며 가끔 아이들과 오목도 두고 더 가끔은 알까기도 하다 보니 동시 쓰기에 생각이 미쳤는가, 저자의 말을 보니 더 걱정이 된다. 자신의 동시를 통해 노숙자와 노점상, 외국인 노동자 이야기를 하겠다 한다. 한마디로 사회 '문제'를 언급하겠다는 소리인데. 걱정이 곱이 된다. 행여 팔랑거리고 부슬거리면 동시 된다 생각하시는 분이 사고치듯 책 내신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자리 빌어 잠시나마 그런 불경한 마음 품은 것, 작가 분께 사죄드린다. 이 분은, '제대로 된' 동시 작가이며, 우주보다 더 위대한 우리 아이들과 '통'한 분이라 감히 말하겠다. 사회 문제, 물론 말하고 계시지만, 잰 채하거나 내려다 보지 않으면서도 이미 다 알고 있고, 다 말하고 있다. 한편 살짝 옮겨 보겠다.


 매미

허물 벗은 매미가
나무 귀에 대고
그동안
땅속에서 서러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다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우리 가족
2층으로 이사한 날
노래방 마이크에 대고 우리 아버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동시집 <맛의 거리>중 '매미' 전문 발췌


고작 한 철을 울기 위해 매미는 수 년을 땅속에서 빛 없이 살았으니,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짝을 찾기 위해 늦은 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맴맴맴 울어댈 때, 아파트 주민들은 맴맴맴에 담긴 짧은 삶의 무게를 알고 느꼈을까? 그저 열대야를 더 짜증스럽게 만드는 소음으로 여겼을 터. 빛을 가린 흙의 무게와 억겁같은 시간을 뚫고 올라와 한철을 보내며 또 다시 어둠의 세월과 빛의 한철을 이어갈 새끼들을 낳기 위해, 짝을 찾기 위해 목청을 높여 노래 부를 때. 그 울음이 온전히 기쁨만이었을까? 빛 바래고 습한 지하에서 로얄층도 아닌 겨우 2층에 올라왔을 때, 아이들 양육과 '바깥 양반'이라는 빛없는 흙의 무게에 견줄 삶의 무게를 떨치고 일어나 지상의 세계 - 2층 - 으로 올라왔을 때. 노래방에서의 노래는 기쁨이었을까, 회한이었을까, 안도였을까. 매미와 우리 아버지. 절묘한 조합이고 이미 통했다 하겠다. 

작가의 시는 사회문제만을 언급하진 않는다. 뛰어 노는 아이들의 말갛게 상기된 볼빛이 있고, 흥겨움이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동심이 있고, 동심이 바라본 사회와 이 세상이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동시 작가일 뿐이지 가르치려는 자의 위치에 서지 않고, 운동가나 혁명가의 위치에 서지도 않는다. 그저 시로 노래할 뿐이다. 어른들이 봐도 좋지만 아이들도 즐거이 읽을 수 있는, 쉽게 쓴 듯하나 어렵게 쓴 동시들이 그의 책 <맛의 거리>를 채우고 있다. 

표제작 <맛의 거리>는 먹자 골목이나 길이 아니다. 뭐, 쉽게 말하면 '맛의 주행 거리' 쯤이려나. 재미있고, 기발하고, 단단하다. 애써 쓴 시 전문을 옮기면 시인에게 실례가 될까 하여, 시가 재미있고 맛나다는 것만 밝히겠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그가 불러낼 동시가 더 기대된다. 지금도 좋은데 농익으면 또 얼마나 좋을 것인가. 시 쓰기나 읽기는 한가지로 어렵지만, 문학의 어떤 장르이건 좋은 작가를 만나는 것은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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