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파이브 세트 (한정판) - 전4권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아키라>, <스팀보이> 등으로 세계적인 만화가라 평가받는 오토모 카즈히로 이후로 가장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만화가로 평가받는 마츠모토 타이요. 만화가가 인정하는 만화가. 카미조 아츠시 등 수많은 만화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노라 공공연하게 얘기하며, <철콘 근크리트>와 함께 영화화되기도 한 대표작 <핑퐁>의 국내 출간작 말미에는 <위대한 캣츠비>의 강도하 작가가 '도하와 성수의 핑퐁 talk'라는 애정어린 평을 덧붙인 것으로도 유명한 천재 작가, 마츠모토 타이요. 그가 돌아왔다. 신작 <넘버 파이브>를 들고서!

<철콘 근크리트> 애니메이션 포스터

압도적이라는 건 이런 작품을 수식하는 말이 아닐지. 마츠모토 타이요가 <아키라>로 유명한 오토모 카즈히로를 잇는 천재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를, 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2007년, 스폰지하우스에서 열린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 홍보 포스터

마츠모토 타이요의 <철콘 근크리트>의 이미지로 디자인됐다.
스폰지 하우스에서 열린 작년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은 만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상영되어 눈길을 끌었고 그 중심에 <철콘 근크리트>가 있었다.


<넘버 파이브>는 2001년 일본에서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니 국내에 소개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차가 발생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쳐다보는 별빛을 생각해보자. 수십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반짝인 별빛이 끝없는 거리를 달려 마침내 우리 밤하늘에 도착했을 때 그 반짝임은 이미 수십 년 전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영롱함에 티끌 하나 묻어 있던가. 마찬가지로 우리의 손에 <넘버 파이브>가 도착하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기다림이 오히려 반짝임을 배가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에 만화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께 들은 얘기인데, 뼛속까지 만화의 잉크가 새겨진 진짜배기 만화 매니아들은 같은 도서를 세 권 구입한다고 한다. 한 권은 평소 독서용. 또 한 권은 서가 보관용. 나머지 한 권은 스페어용. 아니 무슨 만화가 겨울철 스노우 타이어도 아니고, 트렁크에서 잠자는 스페어 타이어도 아니고, 책에 스페어가 가당키나 한 소린가. 집사 딸린 대저택에서 취미로 범죄 해결하는 돈지랄 배트맨도 아니고 같은 책을 세 권 씩이나, 게다가 스페어는 뭔 놈의 스페어냐 싶었다. 스페어는 커녕 이사갈 때 분리수거함에 슬쩍 떨구고 오기 십상인 게 책의 신세 아니던가. 그런데 <넘버 파이브>를 손에 쥐었을 때 '아, 적어도 서가 보관용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정판이라는 것은 한 작가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팬들에게는 소장 필수 아이템이자 말년 병장이 손꼽아 기다리는 전역증과도 같다. 하지만 '한정판'이라는 이름 아래 같지도 않은 상품을 포장하는 마케팅 상술도 도처에 널려 있으니 한정판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결제하기 버튼을 클릭했다가는 삼대가 후회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책을 적당한 상자에 넣은 다음 수첩이나 메모장 쪼가리 따위로 박스를 채우고선 한정판이라고, 그래서 조금 더 비싸다고, 하지만 당신이 문학과 예술을 안다면 이 한정판을 구매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엊그제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가 사실은 백인이며, 선탠을 과다하게 해서 피부가 검어 보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것처럼, <넘버 파이브> 한정판 세트는 실로 '한정판'이라는 칭호를 수여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pvc 재질의 세트 포장 박스는 흔히 보는 종이 박스에 비해 조금 새로울 뿐 아주 특별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책을 감싸고 있는 양면 포스터가 한정판의 아우라를 무지막지하게 쏘아대고 있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땐 책 표지에 제목이며 뭐며 글자 한 자 없어서 '이게 뭐야?' 싶었는데, 책 커버를 벗겨 보니 착착 펴지면서 올컬러 양면 포스터로 변신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반짝이는 종이의 이 뽀샤시한 질감! 포토샵으로 얼굴 윤곽 흐리게 하고 눈 키운 다음 색조 화장 입히듯 이 신비롭고 뽀샤시한 재질의 종이는 분명 외국에서 물 건너온 수입 펄지가 분명하다.

그나저나 양면 포스터인데, 아까워서 벽에 붙일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쩐다. 벽에 붙이면 한쪽 면은 영영 못 보는 게 아닌가. 이래서 서가 보관용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 뭐, 당장은 돈 없으니 그냥 아껴가며 볼 생각이다만. 이쯤 되니 왜 세트 박스를 투명 재질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피카소는 여인네 얼굴을 정면에서도 보고 측면에서도 보고 싶어 입체파를 만들었듯, <넘버 파이브>는 뽀샤시 책커버를 앞에서도 보고 옆에서도 보아 달라고 이리 속 비치는 재질로 만든 것이다. 본문에 가끔 등장하는 컬러 페이지는 뽀너스!

책의 비주얼에 대해서만 언급했는데, 본문의 내용은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만화를 좋아한다면, 사서 읽어라. 그리고 느껴라. 정 돈이 없다면 만화 좋아하는 친구를 꼬드겨서 지르게 해라. 그리고 빌려서라도 읽어라.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일본에서, 왜 이 작가에게 '천재'라는 칭호를 스스럼 없이 붙이는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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