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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눈이 부시다. 흐린 날 바람을 맞으며 들판을 걷다가,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구름 가운데서 떠오르는 맑은 해님을 보게 된 느낌. <바이 바이 베스파>, 어떻게 이런 만화를 그릴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다시는, 나는 <바이바이 베스파>와 같은 이야기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 말한 지구영웅전설의 소설가 박민규 님의 말처럼, 앞으로 이와 같은 작품을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 아니 만날 수는 있을까? 그래, 아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이 아쉬워도, 당장 이 작품이 곁에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대학 시절, 125cc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당시 난 미대생. 그리고 학교보다도 복싱 체육관에 더 성실히 출석했다. 여러 선배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교정에서 락카 스프레이로 오토바이를 칠하고 여러 소품 등으로 오토바이를 튜닝하고, 생활과 차림은 끔찍할 정도로 궁상스러웠지만 내멋에 취해 살았다. 거칠었지만, 펄떡거리는 활어 같은 삶이었다. 서울시 복싱 신인왕전 출전, 2전 1승 1패. 지고나서는 바로 짐을 싸서 합숙하던 모텔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난 운동에 전혀 타고난 소질이 없음을. 네 번을 더 이기면 우승이었지만, 네 번의 승리는 꿈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패하고 난 바로 그 다음 주에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첫 직장에 신입사원으로 출근을 했다. 몸은 불어갔고 그와 비례하여 사회생활에 적응을 해 나갔다. 아니, 내가 적응한 게 아니라 사회가 나를 길들여 갔다. 나는 양식장의 횟감이 된 것이다.
우연히 후배를 만났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후배. 놀라 묻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배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 알았어요. 선배는 천상 예술가였는데'라는, 눈치 없는 녀석. 허허허 웃고 만다. 취업 전에 비해 몸이 12kg가 불었다. 그 12kg만큼, 나는 꿈과 멀어진 것일까? <바이바이 베스파>의 가슴을 후비는 대사가 떠오른다.
'혹시 어른이 되려는 거니?'
아니다. 나는, 여전히 소년이고 싶다. 33의 처지는 허리가 다시 28로 돌아가는 일은 요원해 보이지만, 내 마음은 반드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아니라 성숙한 소년이 될 것이다. 분명 그리 될 것이다. <바이바이 베스파>, 소년과 어른에게, 눈부신 청춘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눈부신 작품이다. 다시는, 아마 다시는 이런 이야기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