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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게임 - 도다 세이지 단편선 2
도다 세이지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모처럼 벌인 술판에, 같은 파주 시민이 한 분 계셨다. 그 파주 시민께서는 최근에 아빠가 되셨다. 어찌나 싱글벙글하시는지. 그런데 소줏잔을 기울이시며 '작년 매출이 헐렁해, 더 팔아야하는데, 작년 매출이 헐렁해, 더 팔아야하는데'라며 돌림노래처럼 같은 장단을 읊조리신다. 하긴, '대표'와 다름 없는 입장에서 책임감도 클 것이고, 이제는 '처'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먹여 살려야하는 입장이 되셨으니 어깨가 더더욱 주저앉을 터.
그런데 이분이 그런 돌림노래 와중에 단편 모음집인 <설득게임>이라는 만화를 꼭 읽어보라 권하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쿠바드 신드롬>을 꼭 읽어보란다. 좌중을 향해 '니들이 아빠를 알아? 니들이 출산을 알아?'라는 말씀 곁들이시면서. 술자리에 동석한 분들은 모두 아리따운 미혼 여성들이었는데, 그녀들이 혼전에 벌써 출산을 안다면 더 문제인 것이겠지만, 워낙 <설득게임>을 강추하시는지라 은근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후 접한 <설득게임>. 그 맛은, 광어 회 지느러미 부분처럼 기름지고 꼬들꼬들한 맛이랄까. 자극적이고 매콤달콤한 맛은 아니나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가급적 입안이 깨끗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자극이 강하거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독주 대신 맑은 술 한 잔 곁들이면 더 좋을터. 회는 락교보다는 김치와 함께 먹어야지! 라고 주장하시는 분 혹 있으시다면 그런 분은 <설득게임>의 디테일한 맛을 못 느끼실 테니 다른 만화책 보시길 권해드린다.
<쿠바드 신드롬>의 내용을 아주 단순 명료하게 정리한다면, 불임의 아내 대신 남편이 아이를 잉태하고, 휴직하며, 확신 없는 마음에 고민하다 결국 감동과 함께 출산한다는 얘기이다. 쿠바드 요법으로 남자가 임신이 가능하게 된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큰 줄기는 이렇게 간단 깔끔하나, 임신에 관련한 심리 묘사, 탁월하다. 만화가는 분명 총각이고, 그 만화가의 담당 기자 또한 총각이라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어쩜 이리 감정의 흐름을 잘 잡아냈을까. 임신 후 출산까지의 일상 묘사가 이웃 아줌마의 삶을 밀착하여 6mm 카메라로 잡아낸 듯하기에, 리얼리얼 초 리얼이다. 그러나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뒤뚱뒤뚱 뒷집 임산부 뒷모습 마냥 단조로운 남의 얘기일 수도 있겠다. 물수제비 뜨기랄까. 멀리서 보면 물수제비 뜨기는 물가에 돌 던지는 무의미한 짓에 불과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세 번, 네 번 돌멩이가 수면을 건드리며 물결의 원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결은 서로 부딪히고 부딪히며 간섭하고, 포용하고, 다시 잔잔해진다. 설득게임의 작가는, 물수제비를 뜨는 수면의 아주 미세한 물결의 흔들림 같은 사람들의 마음과 심리변화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로 부딪히고, 부딪히며, 간섭하게 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 만약 <쿠바드 신드롬>을 읽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면, 남자인 당신이 여자들 앞에서 9박 10일동안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 늘어놓더라도 상대방 그녀들은 기꺼이 얘기를 들어줄 것이다. 왜냐, 사람은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이해하기 마련이므로.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어하기 마련이므로. 남녀간의 심리 간극을 좁혀 주는 이 단편,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표제작인 <설득게임>얘기도 짧게 하겠다. <설득게임>은 자살하는 여 사무원, 매춘하는 여고생, 살인하는 대학생 중 한 캐릭터를 선정하여 상대방을 설득해야만 클리어되는 3D 게임이 주 소재다. 세 가지의 게임 캐릭터 중 한 명이라도 설득하여 그들의 행위를 포기하게 하면 상금만 자그만치 1억 원이다.(1천만 엔)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절대 깨지지 않는 게임. 왜일까. 그것은 상대방을 가르치고 설득하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옥상 난간에 서서 바람을 맞는 그녀에게 훈계나 가르침이 아닌, 그저 이해하고 손 잡아주고 울어준다면, 아마 그녀는 죽음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을까. 설득을 못했을 때 3D영상으로 재현된 그녀는 결국 옥상 아래로 몸을 던지고, 그녀의 몸이 바닥과 부딪혀 나는 '쿵-' 소리는, 정말 섬뜩하다. 들리지만 않을 뿐이지 내 고집대로 나와 함께한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훈계하려는 마음 때문에 여전히 죽음과도 같은 상처를 입고 있는 이들은 혹 없는 것인지. 가족 중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 일인지, 돌이켜 볼 일이다. 설득 대신 그저 한번 안아 주자.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