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Quinta Camera 라.퀸타.카메라
오노 나츠메 지음, 심정명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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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두 함께 떠난 여행, 앞자리에, 짝사랑 그녀 앉아있다. 그녀의 연인과 함께.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좌석 틈으로 비어져 나온 그녀의 한줌 머리칼 바라보며 가질 수 없음에 아쉬워하다, 창에 입김 불어 써 본다. '사랑해'라고. 그랬다 누가 볼까 혼자 수줍어하며 얼른 지우고 만다. 뭐, 대충 그런 느낌일까, <라 퀸타 카메라>는.

역시, 오노 나츠메. 삐뚤빼뚤 못 그린 듯한 그림, 몇 가닥 안 되는 선들. 하지만 그 선 하나하나의 밀도는 무척이나 높아서, 선 두어 개로 그려진 눈과 입은 살아서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라 퀸타 카메라>- '다섯 번 째 방'이라는 이탈리아 어.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비워져 있는 다섯 번 째 방. 그리고 나머지 네 개의 방을 차지한 네 명의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
<라 퀸타 카메라>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 중, 루카의 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아침엔 청소부 일로, 오후엔 광장에서 피리를 불거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루카. 20대엔 재테크에 미치거나, 39세엔 부동산으로 100억을 벌거나, 금융회사와 회사가 당신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진실 50가지를 알고 있어야만 건실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대접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탈리아의 청년 루카는 늴니리 니나노 피리 불고 노래 팔아 먹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코 궁하지 않다. 빈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루카에게 다가온 사진작가 지망생 그녀. 루카, 그녀가 좋아진다. 

그러나 우리 루카의 사랑, 이루어지지 않는다. 눈물을 머금은 루카는 친구이자 집주인인 마시모가 한참 볼일을 보고 있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마시모: '잠그는 걸 잊었군.'
루카는 마시모의 구린내 따윈 아랑곳 않고, 옷을 입은 채 욕조에 들어가 샤워기를 튼다. 눈물도 씻겨 흘러내리고, 열기도 식어내리고, 추억도 씻겨내린다. 아픔은 흘려버리되 즐거운 기억은 남겨두라고 말하며, 마시모는 샤워기를 끈다. 조용히 물을 닦아주며 루카를 안아준다. 한 번쯤 앓는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어찌 이 장면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루지 못한 한 개 이상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루카를 만나는 세상의 모든 이들 역시 마음으로 울지 않을까.  

일 때문에 알게 된 한 사람이 있다. 내가 다섯 살 연상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 하자, 그녀 역시 연하의 남자를 오랫동안 만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요새 힘들다 한다. 짧은 말과 조금 긴 글로 힘 내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짧아진 머리. 소년처럼 변해 있다. 아, 그저 말 없이 용건만 보고 나온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일이 생겨 다시 만났다. 미팅룸에서 일 얘기를 다 마치고 난 후, 말했다.
"결국, 헤어졌군요?"
힘들었지만, 시간이 제법 지나 이제는 괜찮다고 웃는 그녀. 쇼핑 얘길 들려줬다. 맘에 드는 옷을 발견했는데, 진열 상품이라서, 조금 비싸서, 혹은 다른 이유로 여러번 만지작거리다 아쉬워하며 돌아서도, 그 옷이 정말 나를 위한 옷이라면 며칠씩 지나도 여전히 쇼윈도에 걸려 남아 있기 마련이라고,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 옷이 아닌거라고, 모든 물건은 주인을 기다리며 주인을 찾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쇼핑도 참 인연이에요, 라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예쁜 사람이니 더더욱 좋은 사람 금세 만날 거라는 말도 함께.

지금 이순간, 그녀의 마음이 꼭 한 권의 책을 읽을 여유가 있다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라 퀸타 카메라>가 바로 그 한 권이지 않을까. 당신을 위해 비워둔 다섯 번 째 방. 그 방에 찾아올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며, 두근두근,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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