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 - 슈퍼리치와의 대화에서 찾아낸 부자의 길
송희구 지음 / 서삼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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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이후는 읽기가 힘들었다. 전작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반복된 취약점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전작에는 없던 문제점마저 있다. 전작에서는 부장, 과장, 대리, 사원 각각의 이야기가 풀어지기에 캐릭터가 약해도 직급과 상황에 따른 구분이 되고, 교만했던 '김 부장'의 변화 등 공감이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는 캐릭터도 불분명하고, 모든 사건이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문제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없기에 우연과 우연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가 제목이라면 동창인 두 친구의 대조가 전면에 드러나야 하고, 동창인 친구가 멘토가 되어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깨달아가는 친구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부자가 되는 길로 이끌어주는 게 맞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어느새 돈 없는 고등학교 친구 이야기는 사라지고, 돈 많은 친구의 아들과 돈 없는 친구의 아들 이야기로 전환된다. 돈 많은 이가 친아들과 친구 아들을 멘토링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어설프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흉내 낸 건가 싶다.

 

이럴 거면 제목이 '아빠의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가 되어야 맞다. 마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서 갑자기 중도 하차하는 꼴이다. 돈 없는 아빠에 대한 솔루션은 아무것도 없고, 아들과 친구 아들의 사업에 대한 솔루션도 그저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 해결되는 게 전부다. 경제경영 책이니 문학과 비교할 생각은 없지만, 소설 형식이라면 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일이 풀리는 게 우연, 기연 아닌 게 없다. 물론 이 우연은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에게도 적용된다. 특별한 인사이트나 재능, 노력으로 된 게 아니라 무협지의 주인공마냥 절벽에 떨어졌는데 무림 비급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구조와 다를 게 없다. 게임을 하는데 혼자 핵을 쓰는 것과 뭐가 다른가.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다고 해서 전개나 솔루션이 허무맹랑해서는 안 된다. 기반이 경제경영이라면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분명한 것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 속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인 광수는 롯데 시그니엘에 사는 대단한 부자로 나오지만, 그가 현자처럼 늘어놓는 말들은 투자 상식이거나 여러 책에서 짜깁기한 말에 불과하다. 아들과 친구 아들이 벌려놓은 캠핑용품과 캠핑장 사업에 대해 훈수하는 것도 현실성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 뿐이다. 조금만 찾아보아도, 요즘 캠핑장이 얼마나 난립해 있으며 장사가 안 돼 내놓는 캠핑장 매물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광수의 아들과 중간에 사라져버린 친구의 아들은 충동적으로 사업을 벌리는데,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등장하는 '그냥 한 번 차려봤어요.' 수준의 식당 사장들과 다를 게 없다. 그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씨는 들어보면 별 거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내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뼈 때리는 조언을 한다. 실행하는 건 식당 사장의 몫이지만, 따르면 결국 변하고 돈을 벌게 되리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골목 식당의 뜨내기 사장들 마냥 '사업이나 한 번 해볼까?' 해서 캠핑 사업을 시작한 두 아들에게 전하는 광수의 조언은 백종원의 '메뉴를 줄이고 값을 내리고 기본에 충실하세유. 걱정이에유, 다시 돌아갈까봐유'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조언만 늘어놓을 뿐이다. 식당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식당 사장한테 훈수를 늘어놓는 것만 같다.

 

한참 어린 사업 초보 두 아들들에게 하는 조언조차 비현실적인 걸 보면, 전작과 달리 부장에서 끝내 임원이 된 친구가 갑자기 중도 하차했다가 소설 끝에 겨우 재등장한 것도 이해가 된다. 대기업의 꽃인 임원이 되었다 퇴직한 친구에게 줄 솔루션이 없기 때문에, 해줄 말이 없기 때문에 중도하차 시켰다가 제목이 '나의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이니 어쩔 수 없이 끝날 때 잠깐 등장시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으로 결론을 내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요새 유튜브 여기저기 '200억 자산가'라고 소개되고 있다. 내 주변에는 백억대 자산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십억~이십억 대 자산가가 전부이고, 그나마 한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무심한 듯해도 나름의 인사이트가 분명히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 개똥밭에 구르면서도 십억 이상의 '순자산'을 쌓은 이들의 말에는 무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돈 많은 아빠에게 십억을 물려받은 것과 내 손으로 십억을 번 것은 비교 불가한 차이가 있고, 내 손으로 순자산 십억을 이룬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그런데 나는 2백 억 자산가가 쓴 이 책에서 그 어떤 인사이트나 힘을 발견하지 못했다. 저자의 첫 번째 책들(3권 시리즈)이 반응이 좋았기에 출판사에서는 작가의 차기작을 당연히 출간하기 바랐겠지만, 과연 이 작가가 다음에 세 번째 책을 낼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이 책도 쥐어짠 억지에 불과한데 과연 해줄 말이 더 남았을까 싶다. 지닌 자산의 액수를 떠나 일반 대중(나를 포함)과 다르게 돈을 벌어들이는 자산가에게는 날카로움이 있다. 그걸 지혜라 부를 수도, 인사이트라 부를 수도, 타고난 재능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책과 저자에게는 부재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기업에게는 매출이 전부가 아니다. 매출이 크면 대출에 용이한 점이 있겠으나, 매출보다 중요한 건 영업이익, 영업이익보다 중요한 건 당기순이익이라 본다. 유동성의 확대로 어떤 자산이든 오르지 않은 게 없고, 전에 없던 주식 전문가, 부동산 전문가가 우후죽순 등장하며 수십 억 자산가에 이어 백 억 자산가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이백 억 자산가까지 등장했다.

매출 이백 억인 회사가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일 수 있다. 자산이 이백 억이어도 순자산은 2억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지러운 시기에는 그 누구의 탓도 할 게 아니라 스스로 똑똑해져서 자기의 자산을 지키고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저자의 첫 번째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고, 이 책은 사서 읽었지만, 지금은 산 걸 후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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