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슬퍼할 것 - 그만 잊으라는 말 대신 꼭 듣고 싶은 한마디
하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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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을 넘겼음에도 아직도 나는 녹차를 먹지 않는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한번도 녹차가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말차의 열풍 속으로 사람들이 휩쓸려 가는걸 목격했을때도 나는 고고히 멀리서 지켜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사약 같은 맛을 좋아 하다는건지 영 이해할 수 없어 했다. 그렇게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가끔, 어쩌다가. 혹시...하면서 내가 녹차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녹차가 맛있어 지지 않으려나 하면서 다시금 녹차를 먹어 보려 시도해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난, 깨닫는다. 내겐 녹차가 여전히 사약 같은 맛이라고. 차라리 쓴 약을 먹지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이다. 쓴 맛을 그닥 싫어하지 않음에도--씀바귀로 만든 음식을 좋아함.--왜 녹차의 쓴 맛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지 ,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나를 몰카하고 있는 것인지,아니면 내가 녹차를 잘못 먹고 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서도, 진심 궁금할 때가 있다. 왜 내겐 녹차가 이렇게 어려운가 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녹차 혐오자로 평생을 살아온 나는, 사실 커피 귀신이었던 젊은 시절부터 커피를 너무 먹는 게 아닐까 싶어서 양심상 껴려질 즈음 녹차를 사 왔었다. 결과는 언제나 달라지지 않아서, 야심차게 한 두 개를 먹어 보고는 이걸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오빠가 그걸 먹어줬다. 그걸 맛있어서 먹는지 아님 그냥 주니까 먹는지 이해를 못하는 나에게 어느날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야, 너 때문에 녹차에 맛을 들였잖아. " 라고 말이다. " 녹차가 정말 맛있다고? " 라면서 오빠에게 물었고, "응!" 이라고 간단히 말하는 그에게 정말로 믿을 수 없어 하던 표정을 지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오래전 대화임에도 내가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 대화가 오빠와 나의 거의 마지막 대화 중 하나였기 때문이고,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녹차를 먹을 때마다 오빠를 생각한다. 그때의 대화가 얼마나 일상적이었고, 하나도 대단하지 않았던가 하는 것 때문에. 그냥 물 흐르는 것처럼 지나가는, 언제나 우리가 별스럽지 않게 하는 말들 중 하나였을 뿐이고, 나는 아마도 그 대화를 재밌어 하면서 친구들에게 복기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우리 오빠는 진짜로 녹차가 맛있대. 라면서. 하지만 그 대화는 결코 내 입에서 나가지 못했는데, 왜냐면 그 대화 이후 오래지 않아 오빠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내 모든 일상이 뒤집혔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너무 슬퍼서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이 작가의 말이 너무도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슬픔과 죄책감, 그리움,등이 절절하게 다가온 것도 바로 내 경험 때문이었다. 그녀가 공황 증상을 겪는 장면이 나올때 나는 바로 알아봤는데, 왜냐면 나도 그랬었기 때문이고, 작가가 그녀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때문에 상처를 받는 장면을 보면서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바로 이해했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가 너무 대견했다. 자신을 잘 보호하면서도, 사회에 뽀족한 날을 세우지 않은 채 이해하려 애를 쓰는 면들이 성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너무 뽀족하고 날이 서서, 세상에 칼을 갈면서 10년을 허송세월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없이 아까운 세월이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다른 길이 없었기에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게 감사하다고. 슬픔을 묵묵히 견디면서 그 세월을 보내 온 것에 대해 말이다. 그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나의 인내력이 나를 지탱해준 것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과거가 떠오르고, 그것이 한편으로는 겁이 났지만--그녀의 분투를 지켜 보는 것이 내 고통의 트리거가 될까봐--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이걸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 나갈지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 이 작가는 얼마나 착하고 현명하던지....이 작가의 엄마가 얼마나 딸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단단하게 키워 내셨는지 알 것 같더라. 그리고 그 엄마의 사랑이 지금의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는 그걸 알지 아님 모를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버티고 있다는 그 자체가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잘 키웠다는 의미라는 것을.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드니, 상실을 경험한 젊은이의 입장에서 보다 그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음을 느낀다.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사람의 여유랄까. 이해랄까. 그런 것이 쌓여서, 나는 이 책을 소중하게 읽었다. 마치 내가 작가의 엄마가 된 듯 말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말하고 싶었다.뇌종양에 뇌출혈으로 쓰러진 뒤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가신 작가의 엄마가 만약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 내 인생 최대의 업적은 너를 키운 것이고, 사랑한 것이라고. 그것으로 나는 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나를 안스러워 하지도, 더 사랑할 걸 이라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나는 충분히 행복했고, 사랑하는 삶을 살았어. 그건 내 몫을 삶이었고 ,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그걸로 되었단다. 그러니 이제 너는 너의 삶을 살으렴. 그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고.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엄마였다던 그녀의 삶을  딸인 작가의 입을 통해 듣다 보니, 나는 작가의 엄마를 어렴풋이 그려낼 수 있었는데, 어른이자 엄마인 그녀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분명 기뻐했을 것이다. 기뻐하기 보다는 엄청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는 것이 정답이겠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사실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언가 해 낸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기쁨이고 자랑이고 자부심이 되는 것이지. 해서, 나는 작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이미 주었다고. 그건 바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당신의 엄마는 그것에 무한히 감사하면서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그러니, 더이상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사랑은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없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나이가 드니 이해가 된다. 정말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닌가? 그러니, 당신의 삶을  살아 내세요. 굳이 멋지지 않아도 되요. 그냥 버티는 삶도 꽤 괜찮답니다. 진심으로 말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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