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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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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칼에 난자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 아니, 이제 와서?' 이였다. 그 말이 이 책 속에 살만 루슈디 자신이 칼에 찔렸을 당시 든 생각이었다고 해서 실소를 하고 말았다. 그나 나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왜 이제와서 굳이,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작가는 몹시 궁금한 모양이던데, 이 세상엔 미친 사람들이 많고 많으니, 그 중 하나가 살만 루슈디에게 " 너로 정했다.' 라고 한 들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렸다. 해서 이리 저리 머리를 쓰면서 자신이 왜 이런 고초를 당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답을 찾으려는 작가가 참 안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피격 당하고 난 뒤 1년 동안 관짝에서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그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이 책 자체가 나왔다는 것에는 나는 무척 반가웠다. 그가 이 책을 냈다는 사실은 일단 그가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자신의 냉철한 지성을 책을 쓰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여전히 회의가 남아 있어서 과연 그가 예전처럼 굉장한 책을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는 포기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영광이 사라지거나 그가 덜 위대해지지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형편없는 책을 쓴다고 해도 여전히 그에 대한 충성을 변함없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아서, 살만 루슈디는 역시 소설의 대가이지, 자서전이나 수필의 대가는 아니라는 것이 이번에도 증명이 되었다. 소설은 그렇게 기가 막히게 쓰시는 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처럼 서툰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작가마다 자신의 분야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은 참 좋아하면서도, 그의 소설은 질색하는 것처럼, 이 작가는 소설은 엄청난데 수필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어떤 사건을 갖다 줘도 자신과 연관이 있으면 잘 쓰시기가 어려우신 모양이다. 이런 사람이 그 위대한 <악마의 시>를 도대체 어떻게 쓴 것인지 아직도 나는 어리둥절하다. 이 책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그 책을 쓴 것은 혹시 후회하느냐고...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적어도 그는 자신의 책의 진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이심전심....그거면 됐다 싶다. 그의 인생에 그보다 큰 업적은 없으며 , 사실 그보다 더한 업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지구를 스쳐 지나가면서 못 해내는것이니 ,그는 충분히 자랑스러워 하고 감격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책으로 인해 그 모진 세월을 견디셔야 했었지만서도, 나는 그가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래, 이 분이 바로 <악마의 시>를 쓴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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