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된 거야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 엠마누엘은 85살이 되신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한다. 수술끝에 의식을 되찾은 아버지는 안도하는 엠마누엘에게 자신은 이제 끝내고 싶다면서, 도와 달라고, 자신을 버리면 안 된다고 말을 한다. 경악한 엠마누엘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좀 더 참아보시라고 말을 해 보지만,  고집을 꺽지 않는 아버지,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중개해주는 단체를 찾게 된다. 아버지를 도와줄 수도,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는 엠마누엘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데...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이건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 같은데 싶었더니 원작자가 엠마누엘 본인이란다. 소피 마르소의 연기가 궁금해서 본 영화였는데, 비슷한 처지에 있어봐서 그런가 가슴을 후펴파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스위스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에 프랑스가 부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본인들이 합리적임을 주장하는 프랑스에서도 안락사가 여전히 조력살인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이 같은 처지의 한국에 사는 나로써는 고소한 면도 있었다. 그래, 이 고통을 나 혼자 겪을 수는 없지 싶은 물귀신같은 마음이랄까.


하여 이 영화를 보고서 든 몇가지 생각은..첫째, 아버지 앙드레 역의 앙드레 뒤솔리에의 연기가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락사를 생각하는 사람들과,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 간의 간극은 너무나 넓어서 과연 그걸 좁히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의문이다. 젊은이들은 안락사가  고려장처럼 이제 더이상 쓸모가 없는 노인들을 페기 처분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데, 안락사를 결심하는 사람들에겐 삶의 단계에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느끼는 삶이 어떠한지를 도대체 그걸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득은 고사하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난 그게 늘 어려웠었는데, 앙드레는 마치 자신이 안락사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완벽하게 그를 설명해 내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감이 있었는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줄곧 나의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락사를 결심하는 사람들, 그들이 얼마나 마음이 여리고 천진난만한(?) 사람들인가에 대한 것.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왜냐면 그게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에. 앙드레가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완벽하게 그려내서 그가 이 배역을 위해 많이 연구를 하고 고심을 했겠구나 싶었다.그게 소피 마르소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노년의 배우에게 더 눈길이 가게 된 이유다.

둘째는 영화속 앙드레가 스위스로 가는데 얼마나 드냐며 묻는 장면에서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만 유로로, 우리나라 돈으로 천 삼백만원 정도가 든다고 하자, 앙드레는 " 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 라고 묻는데 공감이 갔다. 이제 죽음에서조차 계급의 차이가 생기는구나 싶은 생각. 정보와 돈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마저도  품위있게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서글펐다.

셋째는 스위스 안락사 단체에서 중개를 위해 파견을 나온 사람과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30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은퇴를 했다는 그녀는 왜 자신이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동으로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란하지 않게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군더더기 없이 해내는 그녀가 정말 믿음직스럽단 생각이 들더라. 그런 어른들은 보면서 깨달았다. 안락사의 문제는 결코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우리 어른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안락사를 위해 구급차를 타고 파리에서 스위스로 건너가던 앙드레는 구급차 기사가 " 왜 죽으시려고 하냐? 삶이 이렇게 좋은데..." 라고 묻자 대답을 하려다 말아 버린다. 그렇다. 우리는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이건 경험의 차이라서 말이다. 아직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죽음을 이해시킨다는 것을 무리다. 그래서 어쩌면 <안락사>의 문제는 이제 살만큼 살아온, 수 십 년의 삶을 살아 오면서 이것저것 다 겪어 보고 해서 이젠 곧 죽는다고 해도 별로 억울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우리들이 해결해 내야 할 문제. 언젠가는 안락사의 문제가 더이상 불법이 아닌 합법의 테두리안에 들어오길 희망한다. 왜냐면 내 기준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인간적인 것이므로.


안락사에 대한 여러가지 영화를 보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작품이라 공감하기가 쉬웠는데, 그걸 흔연스럽게 만들어 주어서 감독에게 고마웠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인데, 이렇게 영리하게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더라. 이 영화의 모든 부분이 진실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 주는 날이 오기를...언젠가는 ' 오래전 사람들은 이런걸 고민해서 영화를 만들었대~!' 라면서 믿을 수 없어 하는 날이 와주길 기대한다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뭐, 희망을 가져보는 게 나쁠건 없으니 희망을 가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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