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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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이 현실에서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늘 용기부족으로 실패. 그런 나였기에 무려 9년이나 보라보라섬에서 살아오신 작가님은 정말 대단해보였다. 책을 읽기 전엔 그저 그 삶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 부러웠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그녀의 생활이 늘 고민없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기에 습격당한 후 응급실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하는 곳, 갑자기 전기가 뚝 끊겨버리는 곳, 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즐겁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이자 섬 내에 널린 망고를 사먹지 말라고 망고를 한가득 선물해주는 곳. 직항이 없어 우리나라에선 비행기를 타고 돌고돌아야지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만큼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 마음이 편안한 곳. 그런 섬에서 시작된 자신만의 생활을 만들어온 한 사람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

"이유없이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무래도 삶의 균형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p140)

섬에서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님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평범해보이지만 특별한, 글 속에서 그들의 진심어린 관계를 조금이나마 읽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좀 더 생각하지 못했던 글에 나도 그랬었지.. 하며 반성하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할머니께 안기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는 잃기 전에, 멀어지기 전에 더욱 잘해야겠다는 것. 언제나 잊지 말기.

"그러고 보면 엄마와 딸의 관계는 너무 불공평하다. 사는동안 한 번이라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날이 올까. 모르겠다. 빙하를 보는데 자꾸 엄마 생각만 났다. 돌아가면 새 신을 사드려야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멀어져야만 되레 애틋해지는 관계라니." (p172)

우리만 아는 농담이라.. 상대와 나만이 아는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건 얼마나 즐거울까. 서로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주고받은 말들이었더라도, 그와함께 쌓인 추억은 똑같을 것이다. 더듬거리며 조금 느리게 말했던 시간이었더라도, 우리만 아는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기 때문에.

"지쳐 있던 마음이 그곳에서 분명하게 쉬었으니까. 어디로 여행을 가는지, 얼마나 오래가는지보다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언제나 함께하는 사람이다." (p182)


나도 조프리의 빵과 포에 할머니의 음식들을 먹고싶고, 평소에 관심갖지 않았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싶어졌다. 물론 이로인해 매일이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도 나의 삶의 부피를 줄이며 살아보고 싶어졌다. 책의 마지막 짧은 글을 읽으며 작가님과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며 쿨하게 안녕. 내일의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아주 멋진 시나리오가 떠올랐는데 해안가에 도착해서 모래에 발을 내딛자마자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그래서 우리는 매번 바다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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