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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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출연으로 진짜 이름보다 극중 이름 ‘진구’로 더 많이 불려온 형민. 38년 후 한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그때 그 기억을 하나하나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부러울 법도 하지만, 정작 형민은 진구라고 불렸던 그 시절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진구라는 이름의 성도 몰랐고, 다른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 대한 기억도 없었기 때문에. 토크쇼 사회자의 질문이 없었다면 그냥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진 과거이지 않았을까.

 

“그러면 저처럼 평생 맛없는 안주를 먹게 된답니다. 술은 꼭 좋은 안주를 사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거든 마셔요.” 그는 자신의 말이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방청객 아무도 그 말을 듣고 웃지 않았다. (p89)

 

글은 형민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여러 이야기로 가지치듯 나아간다. 주변에 있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고, 너무 허황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 더 공감이 갔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이야기이기에 글은 평탄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읽는 내내 내 기분은 너무 오르막길을 오르지도, 또 너무 내리막길을 내려가지도 않는다. 그저 상냥하지만, 상냥하지 않은 듯 그렇게. 덕분에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들여다볼 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잘 되지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형민은 유서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p211)

 

읽기 전엔 상냥한 사람이라는 제목이 과연 진짜 상냥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의미로 이를 의도한 것인지 궁금했다. 읽는 중에도 대체 어느 부분을 보고 상냥하다고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초반엔 새로운 방식의 글을 읽어서였을까,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읽다보니 처음의 나는 그의 삶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외면하고 싶었기에 글에 집중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책은 작가님께서 글을 쓰는 동안 자신에게 계속 물으셨다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견딜 수 있는지”라는 질문이 참 어울리는 이야기가 이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 그는 다시는 슬프다는 말로 문장을 끝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예뻤어, 좋았어, 기뻤어, 행복했어, 그런 말만 하겠다고. 그는 쌍쌍바의 나무 막대를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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