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어머니 이야기 보다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오신 어머니는 그렇게 평범하게 사셨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역사를 경험하셨다. 1900년대는 역사책에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6.25 전쟁이 포함된 근 현대사가 엄청난 분량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 역사의 가장 격동기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기에 그녀의 사투리 한 마디,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 그녀의 결혼, 그리고 가정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이 그녀의 과거를 재생하여 만든 우리들의 역사. 그림에서 애정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은 딸의 사랑이 담겼기 때문일까.
- 엄마, 내 만화에서 엄마가 이제 열일곱 살이 됐어. 이제 엄마를 처녀처럼 그려야겠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예쁘지도 않은 얼굴. 니가 엄마를 좋아하이까 예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두 우리 엄마가 얼마나 예쁘던지. 얼굴이 있는 점이 예뻐. 엄마 이마에 점이 하나 있는데, 어렸을 때…” ((1)/p206)
[‘흥남철수’. 미 제 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이 1950년 12월 15일(출항 기준)부터 23일까지 흥남항구를 통해 해상 철수한 작전.]
이처럼 교과서에서 알려주는 역사는 그저 이렇게 살았다더라, 저런 일들이 있었다더라를 알려주는 객관적인 ‘글’이었다. 학생이던 나에겐 주어진 시간동안 사건들의 특징을 빠르게 암기해야하는 암기해야하는 역사일 뿐이었다. 당연히 감정을 넣어 생각할 시간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 역사엔 새로운 마음이 추가되었다. 이유도 모르는 채 아들을 업고 남편의 손을 잡고 떠나게 된 고향. 이것이 그녀가 경험한 흥남철수의 의미였다. 몸도 마음도 둘 곳 없는 피란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한 ‘글’의 역사는 그렇게 내게 ‘마음’의 역사가 되었다.
책은 어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구현하고자 북청 사투리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이북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처음엔 ‘뭐지?’ 하며 당황했다. 혹 읽기가 불편하진 않을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하고.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 한번 읽어 나보자 하고 넘겼던 페이지들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하루만에 4권의 책을 다 읽어버렸다. 나도 내가 놀라울 정도였다. 처음 보는 사투리가 읽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투리는 글의 현실감을 배로 살아나게 해주어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옆에서 누가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중간 중간 어머니가 부르시는 노래를 나도 모르는 새 흥얼거리기도 했다. 음을 몰라도 함께 불렀다. 노래는 신나기도,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또 어떤 노래를 부르실까 궁금증을 갖고 뒷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40대의 딸이 80대 노모와 대화를 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이 만화는 완성되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고 한다. 방구 소리까지 녹음이 될까 걱정하는 어머니와 자신은 엄마 연구가라 그래도 괜찮다며 말해주던 딸. 목욕탕에서 몸을 녹이고 전기장판에 누워있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와 머리 식힐 땐 공원에 나가기를 좋아하던 딸. 서로가 다른 서로를 잘 몰랐지만 함께 지내며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훗날 자식들이 엄마가 그리워지면 이 책을 읽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을 정도로. 어머니의 으리으리한 집을 새로 지어 행복했던 기억, 인민군 몰래 집에 가는 길을 건너야했던 무서운 기억, 피란가서 고생했던 기억, 큰집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기억. 덕분에 독자인 나 또한 어머니의 감정이 가득한 이야기를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history’. 역사를 뜻하는 이 영단어는 그림을 그리시는 우리 아버지의 주제이기도 하다. ‘his’와 ‘story’를 합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게 언제나 다양한 방법으로 나무를 표현하시며 그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화려한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작은 궁금증 하나만 보였더라도 신나게 하셨을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나무에 칠해졌을 것이다. 자식들과 나누고 싶었을 그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에라도 내 마음 속 이야기도 꺼내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궁금하다. 내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책의 마지막은 어머니 이야기에서 딸의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이는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도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걸까. 누구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닌,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 겪을 삶의 이야기라는 듯. 그렇기에 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응원하게 된다.
“엄마! 웅우우.”
- 왜, 너무 이뻐서리 꼬집어주고 싶니야?
“어릴 때 엄마가 이렇기 궁둥이 두드려주고 그랬는데 이제 내가 그러네. 이제 내가 엄마네. 내가 엄마야” ((2)/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