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지도는 길을 보여줄 수 있고 대체로 윤곽을 알려주지만, 특별한 내용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 P6
경험 세계가 연구자의 인식 틀에 꼭 들어맞지 않는 무질서를 보여주듯이, 그의 이론화 작업은 이런 경험 세계의 무질서에 필적할 만큼 혼란스러운 면도 있다. 직관적 사상가인 융은 중심 개념을 설정하고 이들을 더 정밀히 발전시킨 연후에 다른 중심 개념으로 나아간다. 그는 빈번히 이 개념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반복하고, 작업이 직척됨에 따라 형성되는 공백을 메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의 저작을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융이 제시하는 전체 윤곽을 파악하려면 그의 모든 저작을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잠시 시간을 내서 임의로 그의 저작을 조금만 읽는다면, 이 사상의 단편들이 융 자신의 마음에서 제대로 연결되었는지 의심스러울 것이다. - P6
자아는 두 가지 토대, 즉 신체 토대와 정신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각 토대는 다층적이며, 부분적으로 의식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무의식에 존재한다. 자아가 이 토대들에 기초한다는 것은 자아의 뿌리가 무의식에까지 닿아 있다는 의미다. 상층 구조에서 자아는 합리적이고 인지적이며 현실 지향적이지만, 심층적이고 감추어진 층에서 감정과 환상 및 갈등의 유동에, 그리고 무의식의 신체적·정신적 수준이 부과하는 침입에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자아는 신체적 문제와 정신적 갈등으로 쉽게 흐트러질 수 있다. - P27
융에 따르면, 자아가 성장하도록 하는 것은 ‘충돌’이다. 다시 말해 이 충돌은 갈등, 곤경, 고뇌, 슬픔, 고통 등을 의미한다. 사람이 신체적·정신적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요구 사항이란 의식의 잠재적 중심을 이용해 이 의식의 기능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의식에 초점이 모아져 생명체가 특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자아는 의식의 가상적 중심으로서 선천적인 것이지만,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중심으로서의 자아로 발달하는 것은 심신으로 이뤄진 몸과 반응 및 적응을 요구하는 주변 환경 사이에 일어나는 이러한 충돌들 덕분이다. 그래서 융에 따르면, 환경과의 충돌로 발생하는 적당한 갈등과 좌절은 자아 성장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 된다. - P27
하지만 이러한 충돌은 재앙이 될 수 있으며, 정신에 심각한 해를 입힐 수도 있다. 그래서 성장 초기의 자아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입을 경우, 이런 심각한 정신적 외상으로 그 이후의 자아 기능은 크게 손상된다. 유아 학대나 성에 관련된 유년기의 외상은 그러한 정신적 재앙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런 재앙으로 자아가 그 정신의 하위 상태에서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인지적으로 말해 자아는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지만, 의식이 적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응집 구조의 감정적 동요와 부재는 심각한 성격장애와 해리적 경향을 일으킨다. 이러한 자아는 정상적 형태에서는(모든 자아가 그러하듯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망가지기 쉽고 과잉방어를 하게 된다. 자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쉽게 붕괴되며, 그러하여 원시적인(그러나 매우 강력한) 방어기제를 의존해 세계와 떨어져 담을 쌓고 외부 침입과 손상에서 정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타자를 신뢰하지 못한다. - P27
역설적으로 그들은 타자와 삶 일반에게서 지속적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크게 실망한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위협적이라고 여겨지는 주변 환경에서 점차 자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방어적인 고립 생활을 한다. - P27
자아가 의지를 시행하려 할 때 그 환경에서 오는 저항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러한 충돌이 잘 처리되면 결과적으로 자아는 성장한다. 이러한 통찰이 주는 경고는 아이에게 다가오는 도전적인 혈실의 공격을 지나치게 차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후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과잉보호 환경은 자아 성장을 자극하는 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 P27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즌 많은 경험과 우리 성격으로 인식되는 많은 것은 자아의식에 속하지 않는다. 활발한 소통, 타자와 삶에 대한 자발적 반응과 정서적 대응, 유머의 폭발, 슬픔의 분위기와 마력, 심리적 삶의 혼란스러움 등의 특질과 속성은 그런 규모의 자아의식이 아니라 더 큰 정신의 양상들과 연관된다. 그래서 자아를 전인적 인간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아는 단지 행위이고, 의식의 초점이며, 인식의 중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아에 너무 많은 것을 전가하거나 너무 적게 전가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 P31
전형적으로 젊은이는 심리적으로 경험된 것보다 더 크게 자아를 통제하고 자유의지를 성취했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경향이 있다. 자유에 부과된 모든 제한은 바깥 세계, 즉 사회와 외부 규제에서 온 것처럼 보이고, 자아가 내부에서 얼마나 많이 통제받는지에 대한 자각은 거의 업는 편이다. 이 점을 면밀히 따져볼 때 우리가 외부적 권위에 종속된 만큼이나 자신의 인격적 구조와 내면에 도사린 악마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바로 최악의 적, 가장 냉혹한 비판자, 가장 가혹한 임무 부과자임을 점차적으로 자각하게 된다. 운명이란 외부에서 명령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하달된다. - P33
지구가 태양계의 작은 일부이듯 자아는 크나큰 심리 세계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자아는 더 큰 정신적 실체인 자기 주위를 돈다고 봐야 한다. - P33
융은 정신병리학에서 성적 갈등이 중심적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미심쩍어 하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 P59
더욱이 융에 따르면, 한때 성과 밀접히 연결되고 성적 본능에서 파생한 것이 분명한 활동들도 인간 의식과 문화가 진화를 거듭함에 따라 성적 영역과 크게 분리되어 성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동물에게는 창조의 충동을 발휘하는 본능이 있지만, 이것이 번식기로만 제한된다. 생물학적으로 확립된 본래적인 성적 특성은 각각의 기관이 하는 일이 고정되어 독립적으로 기능한 나머지 상실되어버렸다. 음악이 성적 기원을 갖는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해도, 가령 음악을 성 범주에 포함하려 하는 것은 빈한하며 미학과 상관없는 일반화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명명 체계를 만든다고 하면서, 쾰른대성당이 도로 지어졌다고 해서 광물학으로 분류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 P59
리비도의 ‘퇴행’과 ‘진전’은 융 이론에서 중요한 용어다. 이들 용어는 에너지가 운동하는 방향을 가리킨다. 진전할 때 리비도는 생명과 세계에 적응하는 데 사용된다. 이때는 세계에서 기능하기 위해 리비도를 사용하고, 선택한 활동을 위해 리비도를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 정신 에너지의 긍정적 흐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시험에 낙방하거나 회사 인사이동에서 제외되고,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녀를 잃는다고 가정해보라. 리비도의 진전은 멈춰버리고,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에너지 흐름은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 이 리비도는 퇴행하고, 무의식으로 사라지며, 여기에서 리비도는 콤플렉스를 작동시킨다. - P77
진전이 세계에 대한 적응을 촉진하는 동안, 퇴행은 역설적으로 발달의 새로운 가능성에 이른다. 퇴행은 내면세계를 활성화한다. 내면세계가 활성화될 때, 사람은 이 내면세계에 직면하고 이러한 과정을 겪은 생명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내면에 적응하려는 이러한 운동은 결국 새로운 외부 세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리비도는 또다시 진전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제 바로 무의식적인 것, 즉 퇴행 때 겉으로 드러나는 콤플렉스, 개인사, 성격적 결함, 과오와 다른 모든 다루기 힘들고 고통스런 문제에 직면해야 하므로 더 성숙해진다.융은 한편으론 리비도의 진전과 퇴행 사이에, 다른 한편으론 내향적 태도와 외향적 태도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다고 했다. 초보자는 이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으로 세계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전하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방식으로 진전한다. - P77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서 페르소나는 대상들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주체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페르소나의 이중 기능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활달한 면을 보여주면서도 사람 수가 많은 큰 집단에서는 움츠러들고 피해서 숨어버리며, 그 페르소나는 종종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낯선 사람들과 힘께 있거나 자기 역할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칵테일파티 같은 모임은 고문을 받는 것처럼 힘든 자리지만, 무대해서 하는 역할 연기는 그들에게 순전한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내향적인 경향을 보이는 유명 배우들이 많다. 사적으로 그들은 소심한 경향을 보이지만, 공적 역할이 주어지면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낌으로써 가장 외향적인 유형으로 간주되는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 P77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서 페르소나는 대상들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주체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페르소나의 이중 기능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활달한 면을 보여주면서도 사람 수가 많은 큰 집단에서는 움츠러들고 피해서 숨어버리며, 그 페르소나는 종종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부적당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낯선 사람들과 힘께 있거나 자기 역할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칵테일파티 같은 모임은 고문을 받는 것처럼 힘든 자리지만, 무대해서 하는 역할 연기는 그들에게 순전한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내향적인 경향을 보이는 유명 배우들이 많다. 사적으로 그들은 소심한 경향을 보이지만, 공적 역할이 주어지면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낌으로써 가장 외향적인 유형으로 간주되는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 P113
페르소나는 사람을 수치심에서 보호해주며, 수치스러움을 회피하려는 것은 페르소나를 발달시키고 지속하게 하는 가장 강한 동기일 것이다. - P116
죄의식은 행위를 분리할 수 있지만, 수치심은 자존감 전체를 빼앗아 간다. 수치심은 죄의식보다 더 원시적이며, 잠재적으로 더 파괴적인 감정의 일종이다. 우리는 이미 채택된 페르소나와 다르게 행동할 때 죄의식을 갖거나 깊이 수치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격에서 그림자가 실현된 것이다. 그림자는 수치심, 즉 무가치하다는 의식, 더럽고 달갑지 않다는 불결의 감정을 야기한다. - P116
저한테 전화위복이 일어났습니다. 침묵을 지키고, 아무것도 억누르지 않고, 주의를 흩트리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는(제가 원하는 대로 되기보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등의 모든 것을 했을 때, 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하던 이례적인 앎과 힘이 제게 생겼습니다. 우리가 사물들을 받아들일 때, 이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압도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물들을 수용함으로써만 그들을 향한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게 오는 무엇이든, 선하든 악하든, 양지와 음지로 번갈아 영원히 바뀌든, 이처럼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저 자신의 본성을 받아들이는 인생 게임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더 생생해졌습니다. 제가 이토록 어리석었다니! 당위적으로 해야 하다고 느끼는 방식에 따라 모든 것을 억지로 진척시키려 하다니! - P117
아니마/무스는 (a) 페르소나와 서로 보완적이며, (b) 자아가 정신의 최심층에 위치한 자기의 이미지와 경험에 연결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P121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 또는 자아와 아니마 사이의 충돌에 직면해야 하는 과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것은 ‘기개’, 즉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조우하는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이다. "이것이 바로 대략적으로 일컬어 내가 말하려는 개성화 과정이다. …… " - P168
심리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마음 문제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한계를 두지만, 자기와 동시성 이론을 통한 융의 분석심리학은 이러한 임의적 분할에 도전했던 것이다. 융이 한때 학생들에게 자기의 끝은 어디까지며 그 경계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는 끝이 없다, 즉 무한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가 자기 이론에 동시성의 함축을 고려하고 있었음을 숙지해야 한다. - P189
융이 발견한 의식과 무의식의 정신세계는 상반되는 두 극의 역동적 관계에서 형성된다. 즉 정이 있다면 반이 있고, 이 대극 사이에 에너지가 흐른다. 이러한 에너지 흐름을 통해 대극이 하나로 통합하면서 실현되는 것을 개성화라 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자아ego는 잠재적 형태로만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은 자기self다. 즉 갓 태어난 아기는 자아도 없고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무의식의 상태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자아가 발달되고, 자아는 자기에서 분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페르소나와 그림자 대극 등의 갈등이 일어난다. 이 갈등이 해소되고 자아와 자기의 연합이 일어나는 순환적 과정이 개성화다. 성격 발달 과정에서 자아와 자기의 분리 및 연합은 평생 동안 계속 반복되어 일어나는데, 이러한 개성화는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자기가 완전히 실현된 상태다. 개성화 과정에서 처음에는 자아의식이 통합되고, 그다음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어 전체 정신계에 이른다. - P218
이러한 개성화를 융은 전일성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다. 우리가 앎에 대한 의식의 가능성을 넘어서는 것이 있음을 안다면, 우리 안에 알려지지 않은 인식 주체, 즉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초월하고 여기와 저기, 지금과 그때 동시에 있는 정신의 한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라는 개념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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