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지음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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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읽다보면 저자의 안녕이 궁금해지는 책들이 있다. 익숙한 새벽 세 시가 그랬다. 형편없는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두려움을 써낸 이 에세이집에는 절망감, 좌절감, 허무함, 공허함, 이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저자 오지은은 가수이자 작가이다. 2015년에 출간된 익숙한 새벽 세 시는 저자의 두 번째 저서이며 그 이후로도 꾸준히 글을 써내 지금까지 총 다섯 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또한 가수로서 음반과 공연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우울하다면 우울한 에세이 익숙한 새벽 세 시는 놀랍게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저자는 독자를 향해 말을 걸거나 독자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사실들을 찬찬히 펼쳐낸다. 그리고 합리화라면 합리화일 수도 위로라면 위로일 수도 있는 말을 덧붙인다. 그런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저자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지,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인생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면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상한 게 아니야 라고 말할 텐데 내 일이 되면 나는 왜 그럴까 자책하게 된다. 나에게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다독이는 힘을, 그리고 어느 순간 다독임이 아니라 정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는 당연함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삶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님을.

 

문득 저자의 안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수많은 사람에게 고스란히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건강한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엉망인 프로보다 의외로 잘하는 초보처럼 보이고 싶었다. - P81

만약 마음이라는 것이 나아가는 것이 아닌,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라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고. 파랑새를 보고, 다시 잊고. 실수하고, 반성하고, 포기하고, 노력하고, 무뎌지고, 다시 아프고, 트램펄린 위에서 점프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올라갔다 떨어지고, 아니 떨어진 덕에 다시 올라가고.
그러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만나고, 다시 끌려 내려가고, 또 다시 점프하는 세계라면. 그렇다면 진짜 아름다움은 위에서 잠시 본 높은 풍경이 아닌 그 움직임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 P98

가끔 시간이 마구 흘러가고 있음에 당황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아직 오늘의 할 일을 찾아내지 못했는데 해는 무섭게 지고 있고 오늘도 바깥의 햇볕을 쬐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 - P99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잔인하다.
그것은 네 책임이라는 뜻이다.
가능성은 있었는데 네가 모자라서 안 된 것이라고. - P110

매일매일이 좋으려는 욕심만 버려도
훨씬 마음이 편할 텐데 - P113

우리는 노력을 해서 집중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
못하는 집중을 잇고 또 이어서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날 위로해본다. - P129

추억이 하나씩 생각날수록 내 마음은 덥혀지지 않고 조금씩 서늘해져갔다. 촛불이 하나씩 켜지길 기대했는데, 되려 촛불이 하나씩 꺼지는 느낌이었다. 다 타버린 촛불에 마개를 씌워서 완전히 꺼버리는 느낌. 회색 연기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 P157

방에 틀어박혀 일 년간 같은 부분을 고치고 새로 쓰고를 반복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파스타를 삶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자주,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거기서 왠지 희미한 잘난 척의 냄새가 느껴지는 것은, 난처한 문제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얄미운 아저씨의 말투를 쓰는 것은, 혹시 긴 인생,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창작의 바다에서 휩쓸려 내려가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이 아닐까. 그런 잔재미로 잠시 숨을 쉬고 다시 묵묵히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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