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카인드 womankind Vol.5 : 또 다른 나로 변화하는 일 - 한국판, 5호 우먼카인드 womankind 5
우먼카인드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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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해리포터를 아주 좋아한다. 아마 여든이 되어도 해리포터를 종종 언급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때쯤이면 해리포터 리메이크 영화가 나와서, 지금보다 더 많이 해리포터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떼는 말이야 해리포터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말이다.

 

 해리포터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재미있으니까? 어린 시절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의 두근거림을 상기시키니까?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런 심리를 우리 시대가 아직 완전히 이해를 도모하지 못한 영혼의 질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런 심리를 우리 시대가 아직 완전히 이해를 도모하지 못한 영혼의 질병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며 느끼는 일종의 신화적인 공허함을 일시적으로 채우기 위해, 말하는 토끼나 장화 신은 고양이가 나오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판타지 소설을 읽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는 거죠. 어린 시절의 마법이나 요술, 혹은 그 무언가를요. (p.7)

 

 우먼카인드호주판 편집장 안토니아 케이스는 잃어버린 마법 같은 삶을 살려면 자연과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잡한 도시, 비현실적인 가망에서 조금 벗어나 너른 들녘, 눈앞에 있는 현재를 마주하면 잃어버린 마법을 되찾을 수 있을까? 푸른 자연이 펼쳐져 있는 곳, 심지어 왕국의 상징이 유니콘인 스코틀랜드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법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우먼카인드5호에서는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상징인 유니콘의 의미를 살펴보고 현재의 유니콘을 비교해본다. 오랜 역사를 지닌 타탄을 만드는 과정도 따라가 본다. 그러고 보니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로 스코틀랜드를 엿봤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타탄 무늬 치마를 입은 사람들, 그 배경에는 스코틀랜드의 기악이 흐른다.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곳엔 끊임없는 싸움이 있었다. 메리 여왕은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다 끝내 참수당했고, 글렌코 대학살은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가문 사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불현듯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사는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든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진정한 우리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며 여기저기 쫓아다니기보다는 자발적인 선택을 하면서 말이다.

 

당신의 괴상한 웃음소리, 사랑스러운 수줍음, 헝클어진 머리, 오래된 책을 좋아하는 취향이 당신이 꿈꾸던 사람을 매혹시킬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 당신도 모른다. 진정한 삶이란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p.13)


미래에 받아들이고 싶은 자질과 특성이 무엇인지 적어보라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적었다. 담담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외로움을 고요라 여길 수 있는 마음, 주변 사람에게 아낌없이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는 용기.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끝없이 진화해가는 창조적 행위이다. 겉으로 인상적인 행동이나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행동을 서낵하기보다 마음 편한 행동을 선택하는 자발적인 과정인 것이다. - P12

"우리는 현재보다는 미래 속에서, 그리고 황금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비현실적 가망 속에서 살아간다. 더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현실의 빛이 아닌 미래의 어둠 속에서 언젠가 온전히 떠오를 해를 꿈꾸며 그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 P22

어느 날 융은 그의 환자들이 가장 많이 앓는 정신 질환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사실 환자 중 약3분의 1에게는 그 어떤 병ㄷ 없다고 대답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은 삶의 목적과 목표를 잃어 망가졌을 뿐이며, 대부분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 P23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옆자리는 내어줘도 돈이 되는 기회는 내어주지 않았다. 외모권력이란 말은 그래서 모순된다. 권력은 초이스를 하는 쪽에 있지 초이스를 받는 쪽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탈코르셋‘은 그저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닫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성적 대상화에 몰두했던 사람일수록 이 의미를 잘 이해한다.
……
어떤 스타일이든, 어떤 체형이든 이 ‘꾸밈의 굿판‘ 안에서 아무리 싸워봐야 여자는 승자가 될 수 없다. 언제나 더 어리고 더 잘 팔리는 여자로 대체될 뿐이다. - P40

"자기 자신이 되어라. 이미 다른 사람의 자리는 모두 찼다." - 오스카 와일드 - P54

어느 한쪽만의 희생을 토대로 만들어진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었음……
누군가는 우리끼리 아무리 이야기해도 세상은 안 바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 세상은 안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내 세상은 바뀐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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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공격과 수비
안정효 지음 / 세경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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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처음 번역 수업을 들었을 때가 난다. 번역이 흔들린다는 말을 듣고 펑펑 울며 잠을 잤던 날, 내가 아는 어미가 이렇게나 없었구나! 실감하며 좌절했던 날, 저만치 앞서 나가는 다른 수강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번역가가 되기는 할까 고민했던 날. (아직 번역가라는 직업의 발치에도 다다르지 못해서 계속 고민과 좌절을 반복하지만 아주 건강하게 되살아나는 중이다!) 번역의 공격과 수비를 읽으며 그날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정말 번역 수업을 듣는 듯했고, 정말로 혼나는 기분이었다. 이 책에서 안정효 번역가는 본인의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의 과제를 보여주며 이 부분은 엉망이고, 이 부분은 더 엉망이며, 이 부분은 말도 안 되게 엉망이다! 라고 말하는데, 이를 보면 아이고, 저분 어떡하냐라는 말과 동시에 아이고, 나 어떡하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자 안정효는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거쳐, 한국브리태니커 편집부장을 지냈다. 13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고 제1회 한국번역문학상을 받았으며 수많은 소설까지 썼다고 하니 그야말로 우리말 달인이겠다. 그러니 아이고, 나 어떡하냐중얼거리면서도 끝까지 읽어 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책에서 저자는 영문을 던져주고 번역해보라 한다. 그리고 수강생들이 작성한 번역문을 보여주며 이건 오역, 이건 번역투, 이건 문장호응이 이상해, 라고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번역한 글도 제시하며 잘된 번역문이란 어떤 글인지 알려준다. 영어 번역을 다루다 보니 다른 언어를 번역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책을 백분 활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번역할 때 조심해야 할 요점들은 충분히 얻어 가리라 본다. , 저자는 기술적 요점뿐 아니라 번역가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누차 이야기한다. 정말 번역 수업을 듣는 듯 저도 모르게 밑줄을 긋고 필기하게 된다.

 

번역가가 되기란 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말은 태어날 때부터 써왔고, 다른 나라 말 하나만 할 줄 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번역과는 생판 다른 전공을 하던 사람도 번역가가 되지 않는가. 그러나 다들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번역서를 읽다 왜 이리 글이 안 읽혀?’ 하는 일 말이다. 마치 한국어로 된 영어를 읽는 기분. 그럴 때 우리는 슬쩍 번역가의 이름을 확인한다. , 번역가라는 직업은 얼마나 무서운가. 세상 불특정 과장님들에게 자기 성과물을 검토받는 셈이다. 그래서 번역가의 세계는 항아리 같다고 한다. 밑둥에는 번역에 발을 들인 사람이 득실득실하지만, 주둥이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고. 번역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호리병 입구까지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길에 번역의 공격과 수비가 수단이 되리라 믿는다.

 

(‘있을 수가 없는 것’을 지켜 글을 써봤습니다, 선생님.)

적어도 무슨 책을 번역하여 출판을 한다면, 번역자는 그 책을 읽게 될 모든 독자보다 모든 면에서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저자 또는 역자라면, 학교의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인데, 책을 펴낸 역자가 독자보다 뒤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P21

대부분의 경우, 어떤 어휘나 표현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 말이 너무 ‘튀기‘ 때문이다. 튀는 표현은 지나치게 눈에 잘 띄고, 그래서 몇 번만 사용해도 어느새 눈에 거슬려 벌써 낡은 표현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가능하면 주위 환경과 잘 어울리는 보호색과 같은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좋다. - P43

어떤 사람이 글을 쓸 때는 무슨 형식의 문장을 어떤 어조로 어떻게 쓰느냐를 결정할 때 저마다 목적과 상황을 고려한다.
...
그러니까 문체의 번역은 어디까지나 수비적이어야 한다. - P57

따라서 번역에 사용할 어휘의 수준을 고정시켜야 하고, 일단 그렇게 테두리가 정해지면 한 작품의 번역이 계속되는 동안 모든 어휘가 균형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의 단원 속에서는 다른 어휘들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튀는 단어가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 P92

때에 따라서는 공격적인 기교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기교는 주변의 다른 어휘나 문장과 궁합이 맞지를 않고, 그래서 어휘의 행진에서는 줄도 안 맞고 발도 안 맞는 결과만 초래하기가 쉽다. - P108

그리고 이렇게 원문의 사건이나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외국어 단어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상상 속의 등장인물들이 한국에서 똑같은 상황에 처해 우리말로 주고받는 얘기, 또는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얘기가 우리말로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들어보는 습성, 그것이 ‘귀로 하는 공격적인 번역‘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이지만 번역가는 그래서 평상시에도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늘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직업이나 나이 또는 성격 등에 따라 사람들의 말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늘 귀를 기울여 들어보고, 번역에 임할 때는 그런 생생한 어휘를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 P157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이라면 국민의 언어 습성을 바로잡아야 하는 책임을 어느 정도 저야 하는데,... - P196

항아리에서 나온 사람들, 참된 실력에 바탕을 둔 그들 번역가들에게는 정년퇴직도 없다. 번역의 실력은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좋아지기만 할 따름이지, 퇴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P368

이미 외래어로 굳어버린 단어라고 해도 가능하면 우리말을 다시 찾아쓰거나, 필요할 때는 새로운 말을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는 원칙 또한 필자는 번역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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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 최정희.지하련 단편선 한국현대문학전집 (현대문학) 18
최정희.지하련 지음, 박진숙 엮음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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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전집 20권 중 여성 작가의 작품이 담긴 유일한 책이다. 심지어 365페이지짜리 책 속에 두 여성 작가의 글이 실려 있다. 여성이 소설가라는 꿈을 실현하기가, 그리고 이를 끝까지 지켜내기가 얼마나 힘든 시대였는지 문득 실감했다. 엮은이 역시 그 시대를 안타까워했음을 알려주는 해설 제목을 달았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어라...? 분명히 이 제목을 어디선가 봤다. 바로 얼마 전에 읽은 보랏빛 문예지, 미스테리아41호이다. 홍한별 번역가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제목으로 이러한 글을 썼다.

 

책을 읽는다는 것, 책과 나만의 사적인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거울 단계를 거쳐 자아를 갖게 된다. 또 독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자신을 놓아보는 경험이다. 독서를 통해 인식을 확장하고 사회적 의식을 갖추게 된 여성은 가정 영역 안에만 머무르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독서는 가정을 돌보는 본분과 상충하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될 필요가 있었다.

 

이 글을 다시 읽고 보니 더욱 궁금해진다. 최정희, 지하련 두 작가의 소설, 그리고 두 작가의 생각이 말이다.

 

두 작가는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로 글을 쓰기도 했다고. 그런데 두 작가의 초점은 판이하다. 최정희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그 운명에 반역하지 말아야 하고, 운명과 맞서 싸워가며 사는 것이 괴로워도 즐거운 삶이라고 말이다. 최정희가 이렇게 외부 환경에 중점을 두었다면 지하련은 내부에 집중한다. 저 인물은 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내 모습에서 자신의 약점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닌가? 어째서? 어떻게?

 

, 이해된다. 책 읽는 여자가 왜 위험한지. 비단 여자뿐 아니다. 책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생각한다. 성장한 사람은 타인을 위로하고 삶을 긍정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물론 잘못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최정희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한다). 근래에 여성 작가들이 서점가를 휩쓴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위험한 여자들이 늘었나 보다. 100년쯤 지나서 21세기 문학전집이 나온다면 그때는 여성 작가들의 이름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까. 2세대 작가라는 최정희, 지하련과 지금 작가들이 내는 목소리를 비교해보는 일도 참 재미있을 듯하다.

"전 괴로우면서두 그대루 제 앞에 던져진 운명과 싸워가며 사는 것이 즐거운 때문입니다. 거기서 벗어난다는 건 제 양심에 다시없을 고통일 것 같애요." - P78

그러니까 운명은 제 손으로 좌우할 수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짊어진 운명도 내 손으로 처리하면 그만 아닌가. 옳다, 그이는 분명히 내게 무슨 암시를 주느라고 책을 빌려준 게다. 나는 내 운명에 반역할 것이다. 운명이거니 하고 단념하려는 자는 자멸한다지 않았나. - P96

"탈선이래두 좋아요. 전 제 운명을 제 손으루 개혁하겠어요." - P116

...어떤 이들은 좀 어떻게 해서 좀 어떻게 잘 살 도리를 해보라고 하지마는, 좀 어떻게 해서 좀 어떻게 잘 살 도리를 하기보다 이대로 사는 것이 즐겁다면 이대로 살 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하고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오면서...... 나를 구원할 자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마리아도 아니고 나 자신임을 안 것뿐이다. - P229

‘자기의 약점을 남에게서 발견하고, 노한다는 것은, 너무 부도덕하지 않은가?‘ - P275

이것은 앓는 사람의 병이 점점 차도가 있어감을 따라, 반대로 차차 멀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아 잘 알 수가 있었다. 요컨대 이것은 ‘산다‘는 데서, 비로소 ‘죽는다‘는 사실 앞에 양보한 ‘자기‘들을 각기 찾으려는, 어떤 잠재한 의식의 표현 같기도 했다. - P301

"......난 너무 오랜 동안을 나만을 위해 살어왔어. 숨어 다니고 감옥엘 가고 그것 다 꼭 바로 말하면 날 위해서였거든. ......이십대엔 스스로 절 어떤 비범한 특수인간으로 설정하고 싶어서였고, 삼십대에 와서는 모든 신망을 한 몸에 모은 가장 양심적인 인간으로 자처하고 싶어서였고......그러다가 그만 이제 제 구멍에 빠져 헤어나질 모서는 시눙이거든-." - P330

그는 무어라 얼른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었다. 설사 소년의 보드라운 가슴이 지나치게 ‘인도적‘이라고 해서 이상 더 ‘미운 자를 미워하라‘고 ‘어른의 진리‘를 역설할 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약한 탓일까, 반성해보는 것이었으나, 역시 ‘복수‘란 어른의 것인 듯싶었다. 착한 소년은 그 스스로가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미처 ‘미운 것‘을 가리지 못한다, 느껴졌다. - P336

그야 ‘무식하다‘는 말에 상구도 내가 노염을 띈 대답을 하려면-소설에 있어 천하 더러운 병이 그 너무 유식하고 싶은 병일게라-고, 말할 수 있을게고, 또-아무리 유식한 사람이라도 그 유식한 것이 그대로 나와, 소설이 제대로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본시 소설이란 그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는 게 소설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내 하고 싶은 말들이 나와서 능히 살 수 있도록 ‘집‘을 짓겠느냐,는 것이 소설일 게라고 말할 수도-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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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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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월 중순, 따뜻한 휴양지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갈 땐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을 들고 가는 편이라 주저 없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골랐다.

조인계획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청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본격 스포츠 미스터리”. 청년 작가...? 1985년에 데뷔한 1958년생 청년 작가라.... 의아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조인계획1989년에 출간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1989년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조인鳥人이라 불리는 핀란드의 천재 스키점프 선수에 필적할 선수라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니레이 아키라. 이 선수가 합숙 훈련 중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연인 유코가 바라보는 가운데 돌연 사망한다. 사인은 독살. 누가 이 천재 선수를 죽였을까. 그의 실력을 질투한 다른 팀인 닛세이 스키점트팀 선수일까? 아니면 같은 하라공업 스키점프팀 선수일까?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 것 같지도 않던 니레이 아키라가 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인계획의 차례는 징조-사건-경고-해명-체포-복제-계획-동기이다.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범인은 소설 중간부터 모습을 드러내며 그 동기는 마지막에 나타난다. 범인은 니레이 아키라의 코치인 미네기시 사다오였으며, 동기는 복제를 멈추는 것. 닛세이팀에서 조인을 만들기 위해 기계를 고안했고, 이 기계에 자신의 기록을 입력하며 실력을 향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니레이 아키라도 이에 힘을 실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네기시는 자신이 선수로서, 코치로서 몸담고 있는 스키점프계에 일어나는 이러한 일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스포츠계에서 더욱 가혹하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결과가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여지없이 실감할 터이다. 그러다 보니 잘하는 선수를 따라 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 사람의 기술을 흉내내보고, 그 사람의 훈련 루틴을 따라 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한들, 아니 그렇게 하다 보면 그 선수처럼 될 수 없단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좌절하리라. 그런데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기계만 이용해서 그 기술을 쓸 수 있다니. 어찌 탐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누구를 따라 하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나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200’이라는 별칭보다, ‘00만의 시그니처 기술이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과정이 깨끗하지 않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말을 어린 세대에게 하고 싶지는 않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내가 쓸고 닦은 길, 내가 뚫고 지나온 방해물들, 그 성취감들을 토대로 앞에 위엄있게 드러난 결과가 나 자신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길 바란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찌 되든 노력하고 고생한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위로, 따뜻한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1989년에 출간된 책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과거에 둘러싸여 있지도 않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공상과학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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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 - 발견하고 창조하는 소설 읽기 더행의 독서의 궁극 시리즈 2
조현행 지음 / 생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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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을 보면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저 재밌다, 시시하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묵직한 무언가를 얻는 모습을 보았을 때가 바로 그렇다. 같은 글을 읽고 어쩜 이리도 얻어가는 것이 다른지.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의 저자 조현행은 이를 정서적 독서사유적 독서라고 정의한다. 책이 재미있다, 재미없다, 라는 느낌 혹은 책을 읽으며 받은 위안이나 감동, 이러한 정서적 차원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독서가 정서적 독서이며, 개인적 감정에서 확산하여 이 세계와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사회적 차원의 독서가 사유적 독서라는 것이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는 문제는 아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로 지친 현대인이 소설을 읽으면서까지 머리를 쥐어 싸맬 필요가 있겠는가. 지겨운 현실에서 소설 속 세계로 도망쳤는데 사회를 사유해보라니.... 가혹하다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10을 얻어갈 수 있는데 겨우 3만 가져간다면 조금 억울한 상황이다.


작가 조현행은 블로그에 서평도 쓰고 에세이도 쓰며 활동하는, 문학 서평가이자 자유기고가이다. 블로그 대문 글이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이니, 책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것 같다.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의 주제는 크게 네 가지이다. 소설 읽기란 무엇인가, 소설을 왜 읽는가, 소설을 어떻게 읽는가, 그 방법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저자는 소설 읽기란 소설의 주제를 우리 사회에 확장해 질문을 던져보고 이를 사유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독서 방법으로 그동안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실제로는 어떤 의미를 지닌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 나를 그 질문의 중심에 세워 내 삶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시대를 탐사할 수 있고, 나를, 그리고 나와 다른 현대인을 알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소설인가? 현대인이 어떤지, 우리 사회가 어떤지 설명해주는 책은 널리고 널리지 않았는가? 여기서 저자는 먼저, ‘능동적 사고를 언급한다. 누군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가만히 앉아 듣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들은 내용이 내 것이 되기란 참 어렵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찾다 보면 이는 내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어떤 질문을 하기 위해 타인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공감 능력도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소설 읽기는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해주며, 3자의 입장으로 등장인물과 만나며 자기 객관화까지 할 수 있다. 소설을 안 읽을 이유가 없구나!


, 그럼,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앞서 언급한 대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설을 읽으며 공감을 했다면 내가 어떤 문장과 감정에 공감했는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그 부분에 질문해봐야 한다. 소설을 다 읽었다면 우리네 사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해석해보고 정리해봐야 한다. 방법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적용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내용에 푹 빠져서 와 재밌다, 하고 보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망의 네 번째 단계, 적용하는 법. 국내 현대 소설들로 저자가 직접 방법을 보여주는데, 이는 묘미이기도 하거니와 설명할 방도도 없으니 관심이 있다면 꼭 구매해 읽어보기를 바란다.


소설을 읽고 사유를 해보고 싶은 독자, 책만 덮었다하면 무슨 내용인지 잊어버리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하지만 나도 자신은 없다.... 몇 달도 안 걸려 아유 재미있네하며 소설을 읽고 있지는 않을까.

‘개인의 고통과 불행은 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 사회는 개인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인간은 이러한 불행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그에 대해 사유해보는 독서 방식이다. - P27

소설 읽기는 해석의 작업을 수반한다. 세상의 모든 소설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인간과 세계에 관하여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대부분이다. - P32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하나라도 더 알아내는 노력으로 인간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 P39

지금의 소설은 이제 거대 서사를 말하지 않는다(못한다). 국가와 역사, 독재 등과 같은 사회의 문제로 개인들이 저항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사람들은 바깥 세계의 문제보다는 ‘그 자신‘이 가진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국가와 민족, 해방과 같은 거대한 주제 의식을 담은 소설을 주로 써왔던 원로 소설가들은 지금의 소설가들이 써내는 글은 그저 자폐적이고 신경증적인 이야기, 흥미 위주의 소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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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으로 왜 그러한 소설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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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소설, 거대한 주제 의식을 담은 소설만이 훌륭한 소설이라고 보는 시각은 균형된 시각이 아니다. 소설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철저하게 탐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은 인간의 삶에 밀착하여 그들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소설을 읽는다‘라는 것은 소설의 ‘안과 밖‘을 두루두루 탐사하고 그 시대적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과 같다. - P47

소설은 ‘삶의 리허설이다‘라는 의미는 소설을 통해 내 삶에 과잉된 것은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줄 안다는 뜻이다. 준비의 시간이 있다면 삶이라는 본 무대는 그만큼 더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 P90

소설을 깊이 읽는다는 것은 소설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그로 인한 움직임의 특징들을 포착해내고, 숨겨진 이면들을 짚어내고, 그 현상에 대한 작동방식을 규명해 나아가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해석해 내는 작업이다. - P124

질문을 하는 행위는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다. 어떤 동물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인간은 질문하고 답하면서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왔다. 마찬가지로 잎으로의 세상도 질문하기를 통해 만들어갈 것이다. 이렇듯 질문하는 일은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고 직접 만드는 일과 같다. - P164

질문하는 방법은 배워서 익혀야 하는 훈련이다. 최초의 질문을 다듬어서 좋은 질문으로 발전시키는 훈련이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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