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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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너는 가족을 거부했을까. 가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보호하는 관계와 안이한 감정에 잠겨 위로를 찾는 그 거짓됨을 못 본 척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지.

 또 아이를 낳아, 어머니와 똑같이 애정에 이끌려 다니는 자신의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겠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부모가 되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너는 성장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면면하게 이어지는 자연계의 흐름, 봄이 되면 마른 땅속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현상,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깊은 땅속에는 봄을 기다리는 무수한 생명이 있잖아. 그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으 연쇄가 끔찍해서 너는 그냥 너이고 싶었던 거야.

 그러나 너 혼자 온전히 저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거대한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반려도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겠지. 지금 너는 그날에 대비해 혼자임에 익숙해지려고 준비하고 있구나.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둡고 먼 길을 홀로 걸어왔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면서 말이야.   - p.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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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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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먼저 봤어야 했다... 근데 그랬으면 영화가 더 재미없었겠지... 각설하고, 이런 데뷔작을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천재인 건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지만 역사적 배경을 바꿔 재탄생시키는 작가의 솜씨는 그야말로 탄복할만했다. 책을 읽는 동안 쓸데 없는 군더더기나 의미 없는 문장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훌륭한 목수는 못을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 작품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만큼 정확한 수식어는 찾아볼 수 없겠다. 완벽하게 짜인,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의 경우 실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설정 등을 배제하여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버렸다. 그중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살인범이 왜 그런 일들을 벌였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작품에서 일반 시민들이 잔인하게 아이들을 죽이는 살인자에 대해 상상하기를, 패전 후 러시아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나치 추종자들 중 하나일 거라는 대목이 나온다. 영화는 아마 그 부분을 슬쩍 차용하려 한 듯 하나, 그마저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냥'이라는 대답으로 넘어가기엔 우린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이 책은 액션/스릴러(알라딘 분류 기준)라는 장르 안에 가둬두기엔 너무 크다. 구 소련 공포 정치 시대의 배경과 인간 군상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리얼하다. 숨죽이고 눈 돌리고 웅크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껏 낮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한 책이다. 이런 책은 수상 타이틀이나 유명인의 추천이 불필요하다. 오래도록 살아남아 계속 회자되고 읽힐 테니까. 각종 지라시들과 선정적인 읽을거리 틈에서 오염된 내 눈과 뇌가 재충전 된 듯하다. 그야말로 좋은 작품이 주는 파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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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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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없고 예의 없고 배려 없는 사람들... 그들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 나이가 많다고 몸이 불편하다고 그 모든 것들이 다 없었던 일이 되거나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참아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나는 언젠가부터 짜증과 화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화'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소화할 수 있는 적정 한계량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상이 넘어가면 감정의 동요를 숨길 수가 없고 적절한 방법으로 발산하거나 해소하지 못하면 병이 난다. 결국 난 여기저기 계속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비는 점차 불어나고 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며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그 언젠가의 미래를 위해 오늘의 난 아프고 초라하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즐거움'이 줄어드는 것은 수험 생활만으로 충분히 넌덜머리.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라고 주절거리고 있다가는 언제까지고 출세하지 못하겠지만…….   - 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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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미니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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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쇄 살인마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본인이 만들어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정신이 살짝 가출한 이들이지만, [이니미니]의 살인범은 그야말로 또라이 기질이 충만하다. 사랑하는 연인, 엄마와 딸, 직장동료 등 피해자들을 꼭 짝을 이루어 납치한 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곳에 가두고 물 한 방울 주지 않는다. 총알 한 개가 장전된 총만을 놔두고 살고 싶으면 상대방을 죽이라고 한다. 둘 중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나긴 고통 속에서 결국 상대방을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결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오랜 감금 동안 피폐해진 몸과 마음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정신줄은 끊어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인 이가 나와 가까운 사람일 경우라면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살인범이 피해자들에게 던져준 게임(?)은 사실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를 죽이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 살인범은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진 않는다. 다만 방치한다. 심지어 한 명은 살려주겠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어째 역대 그 어떤 연쇄살인범들보다 더 악랄하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쏟아져 나오는 많은 장르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잘 만든 설정이다. 다만 주인공 헬렌 그레이스의 행동이나 심리적 변화 등이 너무 급작스럽고 개연성이 없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도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어 잘 넘어가던 페이지를 멈추게 한다. 사적인 생활과 감정을 배제하고 일에만 몰두하던 헬렌이 오랜 시간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마크와 갑자기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뜬금없고, 아무리 상황이 바뀌었다 해도 바로 그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녀가 비극적인 어린 시절의 고통으로 인해 제이크와 그런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 역시 억지스럽다. 납치되어 감금된 인물들이 굶주림에 고통받다가 겨우(?) 이삼일 만에 개미와 바퀴벌레를 별 거부감 없이 씹어먹으며 바삭한 식감을 언급하는 것도 좀 걸린다. 찰리가 헬렌에 대해 원망과 미움을 품었다가 그녀를 다시 존경(?) 하고 인정하는 감정으로 휙 돌아서는 부분도 그렇다. 특정 사건이나 감정적 배경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물들이 심경 변화를 일으키며 그걸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친절이다. 상황을 미리 깔아준다면 독자들은 주인공이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할 수 있다. 작가는 독자를 좀 더 믿고 덜 친절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제본 상태가 왜 이따위지... 책 중후반 쪽에 제본이 잘못되어서 페이지 순서가 뒤바뀐 게 여러 장 있었다. 게다가 오타도 많고... 책 만드실 때 좀 더 신경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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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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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최신작이다. 좀 더 아껴두려 했었는데 몸이 안 좋아 집에서 뒹굴거리던 차에 읽었다. 들고 다니면서 보기에 이 책은 꽤나 무겁다. 왜 이리 무겁냐...


이번 소재는 장기기증이다. 장기기증의 문제점을 소설로 잘 풀어냈다. 분류를 추리/미스터리로 하기에는 너무 리얼해서 어딘가에 실제로 있었던 일 같다. 사실, 확인할 길이 없어서 그렇지 이런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몇 년 전인가, 엄마랑 동생이 장기기증 신청을 했다. 어차피 죽게 될 몸, 여러 사람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동생의 경우 독신주의인지라 혼자 남게 될 경우 사후 처리까지 된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장기기증 자체에 거부감은 없다. 그러나 장기기증자의 신체에 피 묻은 붕대가 들어갔다던지 가위를 넣은 채로 봉합을 했다든지 하는 어이없는 뉴스를 듣게 될 때면 회의가 들었다. 고인에 대한 예의 문제나 의사로서의 윤리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런 행위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의 문제가 아닐까.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났을지라도 그런 취급은 받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아직까지 장기기증 신청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받는 사람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책에도 나오듯이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기부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입장이 이렇듯 고통스러운데, 의술을 행하는 자들은 더욱 경건한 마음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책에서 스나이퍼(살인자)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니다. 되려 관계자가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비뚤어진 욕망과 허황된 명예에 눈이 어두웠던 자들로 인해, 고통받는 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똑같은 고통의 무게를 그들에게 지워주려고 벌이는 일들이었다. 물론 살인이라는 방법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고통과 심정은 납득이 간다. 그 무게만큼이나 전달하는 메시지가 많은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과연 이런 일들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게 정녕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일까. 장기기증에 대해 여러모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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