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해신 서의 창해 십이국기 3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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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보살피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있어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은 사실 중요치 않다고 본다. 내 능력이 부족하면 훌륭한 신하를 두고, 내게 해결책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방책이라도 보고 따라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면이나 주위의 이목을 신경 쓰기 보다 그 자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쇼류는 말했다. 봉래에서 나라가 무너질 때 죽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나라가 아직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쇼류는 능력 있고 청렴한 신하들을 요직에 앉히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권력의 단맛에 취한 관리들을 내쳤다. 호화로운 의복을 벗어던지고 백성들의 삶을 직접 돌아보고 그들의 소리에 귀기울였다. 모든 백성들이 부유하게 살 수 있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하는 쇼류가 멋지다. 안국은 이런 왕을 얻었기에 500년이 넘는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게지... 그런데 왜 이런 흐뭇한 이야기는 책 속에, 그것도 판타지 소설에만 나오는 걸까.

로쿠타는 쇼류에게 나라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고야, 나는 너에게 풍요로운 나라를 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 p. 306

"로쿠타, 조만간 봉래에 가지 않겠어?"

그 말에 로쿠타는 고삐를 쥔 쇼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살짝 돌아본다.

"저쪽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어."

"나는 싫어. 왕을 데려가면 재해가 일어나니까."

두 세계가 본디 섞여서는 안 된다. 억지로 뒤섞어 길을 열면 재해가 일어난다. 기린만 건너가면 그리 큰 피해는 없지만.

"그러니까 혼자 갔다 와."

로쿠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아?"

"사령이 있으니 괜찮겠지."

"남을 따라 하는 김에 봉래도 따라 하게?"

짓궂게 말한 야유에는 쾌활한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요는 나라가 부유해지면 돼." - p. 35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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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절규
하마나카 아키 지음, 김혜영 옮김 / 문학사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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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요코의 삶은 본인의 의지라기 보다 환경과 주변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엄마, 동생, 직장 상사, 그리고 남자들... 사람에, 상황에, 돈에 휘둘려 요코의 삶은 점점 비참해져 간다. 그러다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 살인이었다. 우습게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범죄에 뛰어들자 되려 일은 잘 풀려가는 듯 보인다. 조력자도 생기고 경찰의 눈도 피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2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는데 꽤 신선하게 느껴진다. 요코의 뒤를 쫓는 경찰 아야노 역시 평탄한 삶을 살아온 이가 아닌지라 요코의 과거를 추적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막판 반전까지도 참 괜찮은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샌가 요코를 응원하게 되더라.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나 행한 일들이 결코 정상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많은 이들이 요코가 바랬던 것과 같은 것을 욕망하며 살고 있다고 본다. 단지 그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 요코는 행동으로 옮겼다는 차이뿐.

 

 너는 상경한 지 6년이 지나서야 겨우 도쿄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하고, 어디에 어떻게 가고, 거기서 무엇을 할지.

 이 번화가는 방대한 양의 선택지로 넘쳐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지방에서처럼 '상' 아니면 '하'같이 뭉텅이로 나누는 게 아니라 다종다양하고 세밀한 니즈needs에 맞춘 선택지가 있다.

 이것을 풍요라 하지 않으면 뭐라 할 수 있을까.

 도쿄에 있으면 그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신만의 '특별함'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아를 고를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너는 지금까지 먼저 '나'라는 존재가 있고, 그런 내가 돈을 쓰면서 생활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돈을 써본 적이 없는 인간의, 지극히 단편적인 이해에 불과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돈의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이고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더 역동적으로 유동하고 있었다.

 돈을 써서 고른 생활과 경험이 돈을 사용한 자신을 변화시킨다. 돈은 자아를 고르기 위한 도구다. 돈만 있으면, 어떤 인간으로 태어날지조차 선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이 세상에 저항해, 더 마음에 드는 자신을 선택해 살아갈 수 있다.

 돈만, 있다면.   - p.271~272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다.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자연현상이라 해도 그 앞날을 내다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게 나의 세상.

 그저 인간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선택지가 없는 자연현상의 의미를 반전시킨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면,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건 마치 뭐든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말 아닌가.

 "자유, 라는 거네."    - p.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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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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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적인 관점에서 읽지 말 것

 

2. 성경에 대해 이성과 논리,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부분에 대한 이야기

 

3. 에덴동산, 소돔과 고모라, 욥, 노아의 방주 등 우리가 아는 성경 속의 이야기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4.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는 '카인'이 이 땅의 많은 힘없는 피조물인 인간들의 대변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

 

5. 맹목적인 믿음으로 되려 희생양이 되기도 하는 의지 없는 인간들을 대변하는 이가

   어째서, 하필 살인자 낙인이 찍힌 '카인'일까!

 

6. 신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이렇게 쓰고 보니 출판사 홍보문구 같구나...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특정 종교인들의 반발이 있지는 않을까 새삼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런 책을 대놓고 집필한 작가의 뚝심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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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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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에세이는 고만 보련다. 재미도 감동도 작은 웃음조차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마스다 미리가 사실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도 아니고, 대표작에서 보여줬던 담백한 사색의 순간들도 더 이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가볍게 읽기 좋다고 치부하기엔 책값도,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작인 수짱 시리즈에서 멈췄어야 했어, 암튼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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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파괴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5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김희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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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들이 그러듯이 알고도 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책이 나에게 그렇다. 공포 스릴러라고만 하기에 그의 책은 부족하다. 상상의 범위 그 너머에 있는 처절한 잔혹함과 두려움이 있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악마 같은 살인자들이 하는 짓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두렵고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영상이나 삽화, 그림 등으로 접한 것도 아닌 단지 텍스트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연달아 읽는다는 것은 내게 무척 힘든 일이다. 마치 모르는 작가인 것처럼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그의 책을 읽어야만 오롯이 감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아예 놓을 순 없다. 정말 치명적인 매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세세한 묘사를 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그의 책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통해 상황을,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분명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임이 분명한데 너무나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존재한다. 출퇴근길의 혼잡한 전철에서 읽던, 상사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에 사무실에서 몰래 읽던 바로 몰입할 수 있다. 바닥을 짐작할 수 없는 늪 같은 매력,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맵고 짜고 단 음식에 열중하듯이 그의 책이 바로 그렇다.

 

이번 책은 다소 색다르다. 물론 스릴러인 만큼 피 튀기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작가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인 것을 감안하고 봤을 때, 이 정도면 청소년 관람가급이다. 다루는 분야가 정신 의학, 최면요법 등에 관한 것이라 그런지 확실히 덜 자극적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공포스럽다. 영혼 파괴라니... 육체와 정신의 단절, 숨 쉬고 의식도 있고 생각도 하는데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말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끔찍했던 기억 속으로 돌아가 그 순간을 무한 반복하며 겪어야 하는 최악의 고문에 가까운 형벌이다. 역시 제바스티안 피체크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이거다. 작가는 정신의학 분야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특색을 한껏 살리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의학 분야가 배경이라 해서 기억하기 복잡한 용어가 쏟아져 나온다거나 지루한 설명이 몇 페이지씩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 두께를 봐라,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엄청 얇다. 범인이 던지는 퀴즈를 함께 푸는 재미는 덤이다. 이번에도 나는 범인 맞추기에 실패했다. 한 살 더 먹어도 달라지는 건 전혀 없구나. 다행히 마지막 퀴즈는 풀었다. 뭐,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 대놓고 힌트가 있긴 하지만...

 

p.s. 혹시 마지막 퀴즈의 답을 모르겠는데 너무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질문 주세요, 바로 알려드릴게요. 답은 비밀댓글로 알려드립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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