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절규
하마나카 아키 지음, 김혜영 옮김 / 문학사상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즈키 요코의 삶은 본인의 의지라기 보다 환경과 주변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엄마, 동생, 직장 상사, 그리고 남자들... 사람에, 상황에, 돈에 휘둘려 요코의 삶은 점점 비참해져 간다. 그러다 처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 살인이었다. 우습게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범죄에 뛰어들자 되려 일은 잘 풀려가는 듯 보인다. 조력자도 생기고 경찰의 눈도 피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2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는데 꽤 신선하게 느껴진다. 요코의 뒤를 쫓는 경찰 아야노 역시 평탄한 삶을 살아온 이가 아닌지라 요코의 과거를 추적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막판 반전까지도 참 괜찮은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샌가 요코를 응원하게 되더라.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나 행한 일들이 결코 정상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많은 이들이 요코가 바랬던 것과 같은 것을 욕망하며 살고 있다고 본다. 단지 그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 요코는 행동으로 옮겼다는 차이뿐.

 

 너는 상경한 지 6년이 지나서야 겨우 도쿄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하고, 어디에 어떻게 가고, 거기서 무엇을 할지.

 이 번화가는 방대한 양의 선택지로 넘쳐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지방에서처럼 '상' 아니면 '하'같이 뭉텅이로 나누는 게 아니라 다종다양하고 세밀한 니즈needs에 맞춘 선택지가 있다.

 이것을 풍요라 하지 않으면 뭐라 할 수 있을까.

 도쿄에 있으면 그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신만의 '특별함'을 고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아를 고를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너는 지금까지 먼저 '나'라는 존재가 있고, 그런 내가 돈을 쓰면서 생활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돈을 써본 적이 없는 인간의, 지극히 단편적인 이해에 불과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돈의 관계는 그렇게 일방적이고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더 역동적으로 유동하고 있었다.

 돈을 써서 고른 생활과 경험이 돈을 사용한 자신을 변화시킨다. 돈은 자아를 고르기 위한 도구다. 돈만 있으면, 어떤 인간으로 태어날지조차 선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이 세상에 저항해, 더 마음에 드는 자신을 선택해 살아갈 수 있다.

 돈만, 있다면.   - p.271~272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다. 모든 것이 미리 정해진 자연현상이라 해도 그 앞날을 내다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게 나의 세상.

 그저 인간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선택지가 없는 자연현상의 의미를 반전시킨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면,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건 마치 뭐든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말 아닌가.

 "자유, 라는 거네."    - p. 5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