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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파괴자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5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김희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중독자들이 그러듯이 알고도 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책이 나에게 그렇다. 공포 스릴러라고만 하기에 그의 책은
부족하다. 상상의 범위 그 너머에 있는 처절한 잔혹함과 두려움이 있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악마 같은 살인자들이 하는 짓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두렵고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영상이나 삽화, 그림 등으로 접한 것도 아닌 단지 텍스트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연달아
읽는다는 것은 내게 무척 힘든 일이다. 마치 모르는 작가인 것처럼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그의 책을 읽어야만 오롯이 감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아예 놓을 순 없다. 정말 치명적인 매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세세한 묘사를 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그의 책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통해 상황을,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분명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임이 분명한데 너무나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존재한다. 출퇴근길의 혼잡한 전철에서 읽던, 상사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에 사무실에서 몰래 읽던 바로 몰입할 수 있다. 바닥을
짐작할 수 없는 늪 같은 매력,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맵고 짜고 단 음식에 열중하듯이 그의 책이 바로 그렇다.
이번 책은 다소 색다르다. 물론 스릴러인 만큼 피 튀기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작가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인 것을 감안하고 봤을 때, 이
정도면 청소년 관람가급이다. 다루는 분야가 정신 의학, 최면요법 등에 관한 것이라 그런지 확실히 덜 자극적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공포스럽다.
영혼 파괴라니... 육체와 정신의 단절, 숨 쉬고 의식도 있고 생각도 하는데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말조차 하지 못한다. 가장 끔찍했던 기억
속으로 돌아가 그 순간을 무한 반복하며 겪어야 하는 최악의 고문에 가까운 형벌이다. 역시 제바스티안 피체크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이거다. 작가는
정신의학 분야를 다루면서도 자신의 특색을 한껏 살리는 데 모자람이 없다. 의학 분야가 배경이라 해서 기억하기 복잡한 용어가 쏟아져 나온다거나
지루한 설명이 몇 페이지씩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 두께를 봐라,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엄청 얇다. 범인이 던지는 퀴즈를 함께 푸는
재미는 덤이다. 이번에도 나는 범인 맞추기에 실패했다. 한 살 더 먹어도 달라지는 건 전혀 없구나. 다행히 마지막 퀴즈는 풀었다. 뭐,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에 대놓고 힌트가 있긴 하지만...
p.s. 혹시 마지막 퀴즈의 답을 모르겠는데 너무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질문 주세요, 바로 알려드릴게요. 답은 비밀댓글로 알려드립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