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반 34번 -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이야기
언줘 지음, 김하나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아마도 유치원 재롱잔치 비슷한 행사를 얼마 앞두고 였을 것이다.
나는 집에 와서 무작정 엄마에게 유치원에 다니지 않겠다고 떼를 썼었다.
엄마는 유치원에 전화를 했고, 유치원 커튼을 뜯어 낸 사고를 친 것을 알아냈다.
나는 어린 시절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사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도 없었던 듯 하다. 
나는 어렸을 때, 지금의 나를 보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내성적인 아이였다.
지금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지만(별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말수도 없었고, 늘 혼자 생각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쩌면, 워낙에 대가족의 일원이다 보니, 특별히 눈을 끌지 않는 나는, 집 안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였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내게 마치 절대로 풀 수 없는 루빅큐브(나는 아직도 이건 절대 못하겠다.)와 같은 것이었다.
집에서는 혼자 노는 날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아니, 귀찮게 하지 않는 나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치원에 입학하고 부터는 조금 달랐다.
모두 끼리끼리 친구를 만들고 노는 일이 내겐 멀고도 힘든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별히 유치원에 가는 일이 싫었던 것은 아니였다. 어차피 집에서 혼자 노나, 유치원에서 혼자 노나 마찮가지였으니까.
문제는 내가 혼자 노는 방식이 커튼에 매달려 있는 형식이란 것이다.
그리고 끝내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그 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수습이 되었을 테고, 커튼이 아닌 또 다른 혼자 노는 공간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고, 조용한 아이라고 해서,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다는 착각은 하지 않는게 좋다.
생각이 많고,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아니였던 만큼, 나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내 멋대로 놀러 다니고는 했고,
그렇게 놀고도 혼나지 않을 만큼 영악한 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라든지, 규범이라든지, 도덕이라 든지, 그런게 특별히 내게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거나, 불편하거나, 답답한 적은 없었다.
아니 답답할 이유가 없었다. 시키니까 하기는 하지만 하기 싫다면 충분히 안하고도 남았고, 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꼭 다 하고야 마는 아이였으니까.
어쩌면 문제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부터 였는 지도 모른다. 겨우 그때서야 나는 내 안의 틀 밖으로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 기대, 규정지어진 틀. 벌거벗은 우리의 몸에 옷이 입혀진 순간부터.
말을 배우며, 말 속에 숨겨진 법칙을 내뱉는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이라는, 사회라는 틀 안에 갇히게 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 속에 살기 위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책의 34번과는 다르게, 전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로 있을 수 있다면, 영원히 라도 아이로 있고 싶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의심하고, 내 안의 틀에 방황하기 보다는, 그 틀이란 것 조차 인식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 틀이 인식되는 순간부터,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게 내 경우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하고 부터였고, 34번의 경우에는 학교를 입학한 그 시점에서 부터 였다.
벗어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틀어진 틀의 이음새를 맞추기 보다, 틀어진 틀을 부셔버리고 싶었던 때.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고, 학교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조금 더 용기가 있었다면 나는 34번 처럼, 창을 깨고 숲으로 뛰쳐 나갔을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시절 내가 생각할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어른이 된 것일까?
나의 신조가 하나 있다. "내가 못 하는 일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자."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하는 말이 있다.(잠시, 때때로, 사교육에 몸 담을 때가 있다.)
나는 절대로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너희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하지 못했다고, 너희 역시 하지 못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해자를 바라지도, 훈계하는 사람을 바라지도, 교훈을 주는 사람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아이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원할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가슴으로 마음으로 듣지 않는다. 그 위에는 이미, 편견과 경험이란 어른의 탈이 존재한다.
훈계해야 한다, 바른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도 자란다. 나도 그렇게 자라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내가 '바람의 언덕' '노을의 언덕'이라고 불렀던 곳이였다.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 가슴이 트일 수 있는 곳. 내 한숨까지도 바람결에 흘릴 수 있는 곳.
아이는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어른은 언젠가는 아이였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의 힘으로 나무가 된다.
나무는 뿌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보이지 않는 다고 뿌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뿌리는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고 영양을 공급해 주고 있다.
우리는 뿌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뿌리를 뽑아 서도 안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뿌리의 기억을. 또 다른 뿌리가 커다란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은 내게 추억 여행이란 아련한 기억을 선물 해 주었다. 짧은 글과 은은한 색의 그림들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만나게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그때를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생각한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시절 천진했던 꿈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자유롭게 날아다녔는지.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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