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래 전에 봤던 영화여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흑인 노예를 나무틀에 매달고, 채찍으로 내려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만은 선연하게 남아있다.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마도 '파워 오브 원'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얼마전 알게된 빌리 홀리데이의 'strange fruit' 노래가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싸울 수도, 피할 수도 없어. 야만인이라는 딱지를 달지 않고는." 그러면서 그는 도전적이 아니라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난 아무도 아니야. 난 사람이 아니야. 난 아무것도 아니야." p257

나는 자꾸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든다.
인간이 맹신한 '이성'이란 것들이 자행한 수없는 살육의 역사.
어쩌면 인간은 한 방향. 자신이 옳다 믿는 한 방향 밖에 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믿음이란 것들이 두렵기까지 하다.
인간이 선하다는 믿음도, 인간이 악하다는 믿음도, 신 앞에 평등하다는 믿음도, 내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는 믿음도, 나는 인간이지만 너는 인간이 아니라는 믿음도.

사실, 나는 차별이란 것에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차별이란 것을 특별히 받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 나를 '차별'했다고 해도, 나는 늘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대한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을 수도 있고, 원래 타인에 무관심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차별이란 것을 멀리 '인종'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 재산, 집안, 직업... 그 차별이란 것이 단순히 '우월의식'에, '선민의식'에 기반한 것일까?
 
피부색, 인종, 조국, 부모,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들.

옥타비안은 백인에 의해 키워진 흑인 아이이다.
철저히 실험체로 쓰여진, 하나의 소유 재산이었던.
옥타비안에게 최고의 옷과 집과 교육을 시켰던 것. 옥타비안의 어머니를 '공주'라고 불렀던 것.
그 기만의 뜰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극 무대에서. 언젠가 쓸모없어지면 버려질 인형의 집에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달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때가 오더라도 변치 않을 것 하나는 이런 모임일 게다. 그때에도 특권 때문에 장님이 된 젊은이들은 웃고 떠들고 춤추며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겠지." p228-229

인간은 정말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성만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끝없이 그 길로만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길이 잘못된 것이라고,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면,
방향을 바꾸라고 앞을 막고 있는 것들을 짓밟고라도, 계속 앞으로만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성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드는 지금, 어쩌면 그들이 믿는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흰 것만이 사람이라고 믿는 그들도, 모두가 똑같이 사람이라고 믿는 그들도.

옥타비안은 똑똑한 아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자신을 조명할 줄 알았고, 회의할 줄 알았다. 

"우린 다른 동물들의 살을 먹고 있어요. 우린 그들의 살로 우리를 채우고 있어요. 우린 그들의 묘지예요." p288

살육이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강력한 것일지도.
이만큼 피에 미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그 위에 있는 타종족을 몰살하는 동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인간이 주장하는 '이성'이란 '형이상학적' 사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동물은 모두 서열을 가진다. 자기 영역을 철저히 지키려 한다. 난폭한 동물일 수록, 그 성향은 더 심해진다.
윗 서열의 동물은, 아래 서열의 동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탐하지 않게 철저히 짓밟아버린다.
인간이 동물과 틀릴 것이 뭐 있을까?

색깔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색깔-갈색, 검은색, 흰색-은 보는 이의 눈에 있는 것이지 대상 자체의 고유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고통이 바늘 자체에 있지 않고 바늘에 찔리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p83

인간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고 만다. 그리고 피의 강을 만들고야, 건너서는 안될 것이라 돌아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보면 똑같은 과오를 또다시 만들고야 만다.

우리는 이제 인종차별이라든지, 인종청소라든지, 인간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모든 일들에 분노한다.
그것이 분노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들의 묘지'를 밟고 서야 배웠다.
하지만 역시, 우리는 바로 나에게도 존재하는 분명한 '차별'들을 알고 있다. 

옥타비안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기에.
'자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유롭고 싶다'는 '본능'으로 그 집에서 도망쳤다.

 
책을 읽으며 이성이 우리를 피흘리게 했다면, 본능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 다른 누군가를 피흘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책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우리 자신의 땅에서, 우리 자신의 가게에서, 우리 자신의 부두에서 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아량과 공명정대함을, 이성과 미덕을 함양하기 위해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증거를 마침내 찾을 수 있음을, 또 정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간의 완벽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p87

 STRANGE FRUIT
(이상한 열매) 


Southern trees bear strange fruit,
남쪽지방에 있는 나무들은 이상한 열매를 맺지요.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나뭇맆에도 피가 있고 뿌리쪽에도 피가맺히지요.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남부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검은 몸들이 한들거리지요.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포플라가로수에 이상한 열매가 매달려있죠.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장대한 남부의 목가적인 정경에 어울리지 않게시리.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튀어나온 눈에 혀가 비틀린 열매가 말이죠.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산뜻하고 달콤한 목련향기가 불어온 다음에는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Here is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제거해야 할 흑인들을 위한 열매입니다.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모으려면 비가, 마시려면 바람이 필요한 열매이지요.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썩게하려면 태양이, 떨구려면 나무가 필요한 열매이죠.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여기 이자리에 이상한 그런데 맛이 쓴 열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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