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귀신 동문선 문예신서 34
무라야마 지쥰 지음, 김희경 옮김 / 동문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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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신앙은 단순히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지(知), 정(情), 의(意) 즉 마음의 소산이고, 사회적으로는 생활과 환경의 소산이다.

바꾸어 말하면 민속신앙은 사상과 문화의 기록인 것이다. p213-214

 

요즘 젊은 사람들 치고, 사주카페 한번 안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세번정도 가 본 듯하다.

가본 감상이라면, 뭐, 꽤 유쾌한 경험이었다. 물론 나는 점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믿음에 한한 것이라면, 글쎄, 좋은 것만 믿는다. 사주카페에 가서, 사주를 보고, 타로라고 하는 카드점을 보고, 인터넷에서 역시, 우리는 쉽게 점이란 것을 접할 수 있다.

어쩌면 무속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지도 모른다.

무속이란 것이 우리의 민속 신앙이라는 것도 알고, 옛사람들이 많이 믿고 따랐던 것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공기가 있기에 숨을 쉬는 것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흘려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기피하거나, 아니면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사주카페에 가는 것은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한편, 무당집에 가는 것에는 '꺼리낌'을 갖는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 '하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귀신을 본 체험담을 좋아했다.

'이건 있었던 일인데'라고 시작하면, 대부분 호기심을 가지고, 더 큰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었다.

장난끼가 많은 나는 이런 이야기로 친구들을 놀리는 것을 꽤 좋아했다.

 

점과 무속, 그리고 귀신 이야기. 현대에 와서는 이것들을 마주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점은 믿거나 말거나, 무속은 미신, 그리고 귀신 이야기는 그저 무서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점은 '귀신'이란 존재를 믿는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귀신'이란 것은 어떤 존재이고, 우리에게 어떻게 여겨졌던 것일까?

 

우리가 현대화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였다. 그 전에 근대화를 이룬 것은 1900년대 부터였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가 그랬든이,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긍정적인 나라는 아니었다.(중국은 예외이지만)

그런 우리나라가 전통이 단절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선이후, 대한제국시절, 일제의 통치라는, 조선문물 말살정책이라는 역사적 아픔 때문이었다.

우리 전통을 살리려는 움직임에는 대한제국 이전의 것들을 돌이키려고 하는 것이 많다.

 

조선의 귀신 출판년은 1929년이다. 문화통치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아니, 조금 부정적으로 보자면, 아마도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쓰여졌던 것이 아닐까 한다.

1920년대는 조선의 문화말살정책 즉, 문화통치가 활발히 진행되는 시기였고, 그 전에 앞서, 조선의 문화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이 책이 그런 일환으로 쓰여졌던 것이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자료로 지금 우리가 우리 문물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각설하고, 그런 이야기를 빼놓고, 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조선의 귀신'에 대한 문화를 되도록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비하하지도 격하하지도 않고, 되도록 기록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듯하다.

두 편으로 나눠진 책은, 첫 편에서는 귀신의 종류에 대해, 두번째 편에서는 귀신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에서 부터, 전혀 생소한 내용, 그리고 무속이 아닌, 일반적인 생활의 일부로 변형되었을 내용들까지,

조선의 귀신은 다채로웠다.

 

이 책이 귀신을 보는 입장은, '손님'과 같았다. '손님'이라 함은, 집에 왔다 가는 존재이다.

이것은 부정적으로는 우리집에 위해를 가하는 존재이고, 긍정적으로는 우리집에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귀신'이란 것은 '손님'과 같이 왔다가 가는 존재였다. 집에 혹은 몸에.

집에 든다면, 가정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몸에 왔다면 개인에 영향을 주었다.

 

이 책에서 예를 들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병에 걸리면, '병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이 치료되면, '병에 나았다'라고 한다.

책에는 '병에 들었다'그리고 '병이 나갔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듯이 우리 사회에서 질병이란 것은 몸에 들었다 나가는 '손님'과 같은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손님'이란 것이,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혹은 의술이 있어도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서민에게 있어서, 그것은, 더 미지의 존재, 하지만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 미지의 존재를, '귀신'이라는, 알 수 없지만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들어왔지만 반드시 나가는 존재, 즉 '손님'으로 표현함으로, 반드시 몸에서 나가, 병이 나으리란 염원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에 조선의 귀신은 복을 주는 존재보다, 화를 주는 존재로 많이 나타났다. 특히 질병에 관련된 종류가 많았다.

따라서 귀신에게 제를 지내는 이유는 '화를 면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나라 귀신의 종류가 많다는 것, 그 귀신들이 집에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질병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한다는 것.

단지 많다, 라는 정도로 알고 있던 내용들을, 자세히 공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삼국시대에서 부터, 귀신의 내용과 귀신을 퇴치했던, 피해를 입었던 내용들이, 실려있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두번째 편으로 넘어가면, 양귀법, 즉 귀신을 다루는 내용이 나온다.

첫번째 편에서 귀신을 소개했던 내용에는, 과거의 자료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었다면, 두번째 편에서는 그 당시 민간에서 행해지던 내용을 조사해서 기록한 내용이 많았다.

'어느 시, 어느 누가, 무슨 일이 있었는데' 식의 내용은, 총독부 기록이나, 신문에 실린 내용들을 실례로 많이 들어놨다.

 

이 부분에 있어서 귀신은, 거의가 질병에 관련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서양에서 온 전염병, 말라리아나, 장티푸스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몸에 든 귀신을 쫓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무지가 아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가난하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하자, 울컥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먹을 것도 없었던 사람들이 병을 치료할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고, 하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 특히, 공물법에 나오는 전염병으로 죽으면, 시체를 풍장했고, 그 이유가 귀신에게 공물로 보내는 인신공양의 수단이었을 것이란 부분을 읽는데, 원망과 함께 헛헛함에 잠시 말을 잃었다.

 

양귀법에 있서,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정신병에 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많이 쓰였던 구타법이 있다. 그때는 복숭아 나무 가지, 특히 동쪽으로 뻗은 가지를 사용하는데, 복숭아 나무가 춘양의 절기, 늦봄에 나기때문에 생기가 충만하고, 특히 동남향으로 뻗은 가지에 가장 양기가 충만하기 때문이란다.

화기법은 전염병의 예방에 많이 쓰였는데, 이는 불로 깨끗이 하다,라는 의미가 있었다. 특히 '뜸은 그 출발점을 화기 퇴귀법의 한 형태로 열기법에 두고 있어 p249'라는 내용이 있어, 현재도 시행되는 한의학의 '뜸'치료가 정말 여기서 기원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아이를 나으면 밖에 '새끼줄'에 숯을 꼬아 걸어두는 것이, 봉박법의 하나로, '숯(사신이 즐겨 빙의)=악마'라고 여겨 그것을 봉박해, 아이의 건강을 비는 의미를 가졌다고 소개되었다.

 

책을 덮으며, 많은 실례와, 당시 '귀신'을 어떻게 여겼는지에 대해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질병, 즉, 재앙을 부르는 귀신이 아닌, 복을 주는 귀신, 기원의 대상이 되는 귀신과 기원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어쩌면,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이 책의 귀신이, 백제시대에는 바다의 용이었을 무왕 신화가, 백제가 멸망함으로 우물의 용, 혹은 지렁이로 격하된 것처럼. 객관성을 내세워, 큰 귀신을 작은 귀신으로, 복과 화, 우리 생활 전반에 철학처럼 자리했던 귀신들을, 단순한 사사로운 귀신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익히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본인의 손이 아닌, 우리의 손으로, 올바른 우리의 전통을, 무속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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