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제목만 봤을 땐 정말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들어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렇듯 아프게 쓰여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행복했을 그 사람과의 기억. 행복했으니 당연히 아픔도 있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그 아픔을 지독히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좋아지는 단계에서부터 서로 사랑을 하고, 나중에 그 사랑이 어떻게 망가져서 멀어지게 됐는지를... 이 한권에 다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열아홉 살 소년 폴. 대학 첫 해가 끝나고 집에 있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들어가게 된 테니스 클럽.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 적당히 쳤고, 적당히 맞춰줬으며, 사실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은 없었다. 파트너로 수전 매클라우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수전은 사십대의 가정이 있는 여자다. 말하자면 폴에게는 어머니 뻘이겠지.. 그러나 수전과 만나게 된 뒤로 폴은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며, 이후 둘은 걷잡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던 수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분명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한동안 수전의 집을 들락거리며 그녀와의 생활을 즐기고. 그녀와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폴은 마침내 수전과 도피할 결심을 한다. 둘이 살던 빌리지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난 그 얘기를 했을 때, 사실 수전이 안 갈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전은 두 집? 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좋았다. 그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생활하는 그 날들이. 그러나 어쩐 일인지 수전은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했고, 다시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폴은... 그 나이대의 사람들과 있는 걸 좋아했다. 수전은 알콜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테니스를 쳤을 때 그렇게 매력적인 수전은 이미 없었다.

그리고 수전이 술을 찾기 시작하자, 처음엔 모든 걸 사랑으로 감쌀 수 있을 것만 같던 폴은... 점점 지쳐가기만 했고. 급기야는 그녀를 다시 돌려보내기로 한다.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다는 핑계로.

시작은 사랑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같이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점점 더 그 사람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둘만의 공간을 발견했고, 더욱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떨어져 있을 때는 마냥 그립고, 애달프기만 했던 그 마음들이 같이 있어보니 자신과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둘씩 발견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게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혼하면 그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 그럼 어떻게 지내는 거지? 누군가가 가족이랑은 '정'으로 사는 거랬는데.. 정말 그런건가?

마음만으로는 감출 수 없는 또 다른 '사랑'의 면목들이 너무나 적나라 해서 더 마음 아팠던 책이었다. 저자의 다른 책이 영화로 나온 걸로 아는데.. 어떻게 만들어 졌을지 궁금하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성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이 '욥기'라는 것도 생소하다.

어쩌다보니 종교에 관련된 얘기겠구나... 싶었다.

소설은 '목양면 교회'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누가 불을 냈는지 모를 이 사건의 용의자와 형사와 대화하는 식이다. 그러나 형사의 말을 하나도 없고, 용의자들의 대답만 있어서 읽는 내내 내가 형사가 된 기분이었다.

최근직은 목양면 교회의 장로다.

젊은 나이에 자식과 아내를 잃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가 있어 지금은 물러나고, 아들이 대신 교회를 맡고 있지만 그래도 최근직 장로의 말을 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말하자면 왕을 세우고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흥선대원군 같은 느낌이랄까.

마지막에 하나님까지 용의자로 나와서 빵 터졌다.

내내 심각하게 누가 범인일까..를 생각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둘씩 맞춰보고 있었는데(물론, 그래도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나와서 처음엔 무게를 잡더니

나중에야 그들의 속사정을 얘기해주는데..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것 같았다.

제목만으로는 다소 어려웠던 이 이야기.

그러나 알고보면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핀' 시리즈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제목만 알지 실제로 읽어본 적은 없다.

거기다 나는 이 책에 나와서 유명해진 절. '개심사'가 있는 지방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의 여파인지 뭔지 아무튼 언제부턴가 '개심사'는 동네 사람들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겹벚꽃이 피는 척이면 관광차가 하루에도 몇십대씩 왔다갔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 통에 가는 길도 하루뿐인 곳이라 차가 막히면 답이 없다.

올해는 아니지만 몇년 전에 가다가 뒤돌아 온 적도 있다. '개심사'는 나에게 한적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 이런 곳이었는데 사람들로 꽉꽉 차다보니 여유를 느낄 수 없는 곳이 됐다. 그래서 아예 사람들이 없는 오후나, 꽃이 막 피기 시작했을 무렵. 그때에 더 가게 되더라.

이 얘길 하려던 건 아니었고.

이 책. '산사 순례'는 꼭 읽고 싶었다. 나는 단청을 좋아하는데 궁을 가도 볼 수 있지만 사찰에도 단청이 많다. 화려한 무늬가 들어있는 곳도 있지만 나무로만 된 곳도 있고. 무엇보다 아래에 달려있는 풍경.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그 풍경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 풍경 아래, 문이 활짝 열린 그늘에 앉아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눈을 감으면 바로 잠이 올 것 같은?? ㅎㅎ

단청뿐 아니라 창호지가 덧대여 있는 문들도 좋아한다.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는 그 문과. 햇빛이 비치면 그 창살 무늬를 고대로 바닥에 쏟아내는 그 문들.

아, 이런 게 왜 이렇게 좋은지...

한번은 사진 찍으러 갔다가 문고리랑 그 문만 엄청 찍고 온 적도 있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창호지의 무늬도 좋지만 창문의 독특한 문양들도 좋더라. 이 책을 읽다보니 올해 내가 가야 할 곳은 창 무늬가 독특한 절이겠다!!! 안 그래도 한옥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 마음과 더불어 독특한 무늬를 찍을 수 있는 사찰이라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신난다.

목록을 보니 내가 다녀온 절은 몇개 되지도 않는다.

아래 지방에 있는 곳은 '내소사'가 있고 '선운사'랑 '수덕사' 나머지는 가 볼 생각도 못 한 곳이다.

다른 곳을 가게 된다면 이 책을 들고 여기에 있는 내용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나도 그 곳에 있는 보물들을 조금 더 자세히 봐야겠다. 물론, 사진 찍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샘터 9월호

샘터 2018.9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8년 8월

이렇게나 날이 뜨겁고, 아직 여름은 가지도 않았는데 마음만은 벌써 9월이다.

한밤에도 더워서 에어컨을 켜고 자고,  시원한 바람은 불지 않을 것만 같은 날들이 계속됐는데 어느샌가 찬 바람이 났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서 아~ 이제 좀 살만하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절기는 기가 막히게 맞는다. 그때가 지났으니 곧 더워지겠지 하면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오고, 또 계절이 지나기 전에 다른 절기가 찾아와서 이제 좀 시원하겠구나~하면 두말없이 시원한 계절이 오곤 한다.

표지부터 벌써 가을이다. 시골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풍경.

구멍 가게 앞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나무들. 한동안 가물어서 바닥을 드러냈던 논에는 며칠동안 내린 비로 물이 찰랑거리고, 이제 곧 달이 바껴 9월이 되면 초록을 띄던 벼들도 노랗게 익어가겠지.

'집'이야기를 하는 건축가 정영한 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내 집!을 외치고 있는 터라 자연스레 눈길이 가서 읽었는데.. '어떤 집에 사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나는 무슨 대답을 했을까 싶다. 그러나 이 건축가가 묻고자 했던 건 달랐다. '그 집이 정말 당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인가'를 묻고 싶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나는 마당이 있는, 한옥을 꿈꾼다. 부모님께 얘길했더니 엄마는 마당에 풀들 관리며, 신경 쓸 게 아파트보다 많다고 싫다고 하셨다. 일단 한옥!!만 있으면 내가 할텐데. 아파트는.. 편안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위아래층 사람들 층간 소음도 신경 써야하고, 어쩌다 화분을 내놓고 물을 주려고 해도 아래집이 창문을 열었는지를 확인해야 하며, 무엇보다 보송보송한 빨래를 기대할 수가 없다. 나는 빨래줄에 널어놓고 싶단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눈길이 갔던 책 읽는 집안의 가정 교육.

예전에 어느 카페에서 본 건데 자기 집에 역사서나 아니면 역사에 관련된 책들이 많은데 어느 날 조카가 와서 한권씩 읽기 시작하더니 대화가 되더라며. 친구 중에 한명도 집에 티비는 없고, 책장에 책이 가득하니까 애들이 책을 읽기 시작하더라고. 부작용은 밥 먹을 때, 거기다 일어나자마자 책을 봐서 학교에 늦거나, 늦장을 부리는 거라고 했었다. 얼마나 부럽던지. 우리 조카하고 이렇게 같이 책을 읽고 싶었건만 내가 돌봐주지 않아서 그런지.. 이건 할 수 없었다.

정지용의 압천.

조만간 교토에 갈 예정이라.. 가보지도 않았는데 볼 수 있다는 설레임만 한가득이다.

그리고 서울에 가면 들러야 할 곳 충정각.

아직 덕수궁 석조전도 안 가봤는데 이렇게나 많은 곳을 알려주는 샘터가 조금은 밉다

이번 호도 잘 봤습니다~

행복을 연기하지 말아요

행복을 연기하지 말아요 - 비교하고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당신
니시자와 야스오 지음, 최은지 옮김 / 샘터사 / 2018년 7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일을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리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좋은 이야기를 듣고, 읽고 싶은 그런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직도 세상을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 뉴스에 연일 나오는 그런 살벌한 이야기말고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잔잔해지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

다른 사람들이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 책을 읽고 있을 때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가장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함께 하고 싶은 책.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안 그래도 긍정심! 이 부족한 내게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주어 조금이라도 나도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실천하기까진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좋은 이야기는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줍니다. 꾸미지 않아도, 비교하지 않아도, 관심에 얽매이지 않아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 문구가 오늘 따라 와 닿는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읽고, 나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나도 충분히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기 전에 먼저 나를 다스려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