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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 할머니의 임종 시간은 오후 네 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수록 긴장이 됐고,
그러자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수명 계획'이라는 게 생겼다.
자신이 편안해질 때에, 자신이 가고 싶은 때에, 정리가 됐을 때에 죽을 수 있다는 법이었다.
할머니는 뉴스에 이 이야기가 나올때부터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았다.
엄마는 반대를 했고, 아버지도 그랬다.
다만 언니만은 할머니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반대할 것만 같던 엄마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는 마음을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한 듯 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바구니에 있는 무수히 많은 약을 드셨고,
그동안은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걷는 것도 힘들어 하셨다.
아무도 몰랐지만 할머니는 밤에 물 마시는 것도 힘들고,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다고 하시며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편안하게 가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도, 이모도, 나도 할머니의 그 때가 다가오자 초조하기만 했다.
정말 할머니는 편안해보이셨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라고.
그리고 할머니는 자신이 바라시는 대로 편안하게 가셨다.... 라고 끝을 맺었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는 법이라니.
의료진이 와서 약을 전해주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니.
실제로 그런 법이 생긴다면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올 가을..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실 줄 몰라서. 정말 할머니는 편찮으셔도 언제고 옆에 계실것만 같았다.
아직도 힘들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 머리로는 보내드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고, 할머니가 온전한 정신이셨을 때 손을 잡아드리지도 못하고, 의식이 없을때만 잡아드렸다. 적어도 목소리라도 듣고, 할머니.. 하면 왜~ 하는 대답이라도 들었으면 했다. 할머니께서 입원하시기 전에 손톱, 발톱이 너무 길어서 깍아드렸는데 그때 "고맙다"라는 말을 들은 게 마지막이어서.... 전혀 기쁜 마음으로 해드린 일이 아니어서.. 생각할수록 눈물만 났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나였다면.
만약 우리 할머니가 저런 결정을 하신다면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다만.. 다만..
인정하고 싶은 부분은 조금이라도 밝은 정신일 때 할머니와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
그거 하나다. 다른 건 다 모르겠는데... 그거 하나만은 부러웠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았고, 그때가 다가오고 있는데 담담한 소설이었다.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작가의 문체는 이상할 정도로 담백했다.
초조함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 뿐.
'안락'이라는 제목과 똑 닮은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