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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안녕
로리 프랭클 지음, 황근하 옮김 / 시공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작별 인사 하기 싫어."
샘은 온라인 소개팅 회사의 프로그래머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여자친구가 없고, 하물며 어울리는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말을 건넬 때, 또 이 사람이다 싶은 순간. 몇번 그런적이 있었지만 그나마도 과거다. 그러니 현재는 솔로.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샘. 그걸 본인에게 적용시킨 결과, 놀랍게도 자신과 마음이 맞는, 마음에 쏙 드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회사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결과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프로그램으로 만난 운명의 짝 메러디스의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할머니를 너무 좋아했던 메러디스는 이 일로 인해 슬픔에 빠지고 헤어나오질 못하게 되고, 이런 메러디스를 위해 샘은 한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는데...
정말 기발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쓰면 읽기도 전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 그로 인해 어떤 효과가 발생할 것인지를 안 읽은 사람들도 미리 알아버릴 것 같아서 쓸수가 없다.
다만.. 음식을 먹을때도 그런 것처럼, 이 프로그램에도 분분하게 의견이 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다신 보지 않고 싶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간절히 원함에도 그 부작용을 알기에 프로그램을 만든 샘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그 부작용을 알면서도 샘조차 이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메러디스가 슬픔에서 벗어나고, 점점 기운을 차려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 불행은 말도 없이 샘에게로 찾아왔다.
마치 사람들이 "살만하니까 가버렸다"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원히 안녕하는 거 아니잖아."
메러디스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이렇게 얘기했던 샘이었는데 이젠 고스란히 이 말을 샘이 듣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들과 나눴던 감정을, 또 같이 있었던 그 공간까지 슬픔이 묻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방법은 영원히도 없을 것 같지만... 다만, 잠깐이라도 슬픔을 늦출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도 이 방법을 한번은 써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완전히 기대기만 할수는 없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고, 잊혀지고, 또 추억할 수 있게 된다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러다가 계속 슬픔에 빠져 살수도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곧 잃는 일이야. 안타깝지만 그게 진실이다. 오늘이 아니라 언젠가일 수는 있겠지. 내가 너에게서 사춘기를 면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이것 역시 너에게서 면해줄 수가 없구나. 넌 시간을 겁내고 있어, 샘. 어떤 슬픔에는 약이 없단다. 어떤 슬픔에는 나아질 수가 없어."
"그러면 도대체 제가 뭘 해야 해요?"
"슬퍼해."
"얼마나요?"
"영원히."
"하지만 그렇다면 왜 다들 항상 비찬한 가슴을 부여잡고 다니지 않는거죠?"
"왜냐하면 아이스크림이 아직도 맛있으니까. 그리고 23도의 화창한 날은 여전히 아름다우니까. 재밌는 영화를 보면 웃음이 나고, 일이 이따금씩 만족감을 주고, 친구와의 맥주 한 잔이 행복하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너를 사랑하니까."
슬픔에는 기한이 없다. 언제까지고 추억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찾아오는 것. 그것이 슬픔이니까.
메러디스의 할머니 하니까 생각났는데, 우리 할머니가 쓰러지셨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또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지셨지만 일말의 요소는 항상 갖고 계시다.
어렸을 때, 할머니와 보냈던 시간들. 엄마가 힘들 것을 염려하셔서 날 데려와, 오로지 날 위해서만 쓰셨던 그 시간들. 할머니와 보냈던 시간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항상 할머니와 떨어지는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도 슬퍼했을 만큼 울고 지나갔다는 것.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잘해드려야지 맘은 있지만 항상 그렇게 못하는 내가 밉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그 말이 딱 맞다. 헤어짐의 순간은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고, 나에게는 메러디스처럼 할머니와 다시금 대화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 되돌아 볼 수 있는 건 사진. 또는 할머니가 계셨던 방. 또... 뭐가 있을까?
읽고 나니 먹먹해지는 책이다.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뭐가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벌써 눈물이 날 것 같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