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평점 :
"있지. 그분이 사랑을 잃었을 때 심장이 아닌 폐로 숨어든 이유가 뭘까.
사랑은 여기, 쿵쿵 뛰는 왼쪽 가슴에 있다고들 하잖아."
"야, 이건 비밀인데 사람이 호흡을 멈추더라도 심장은 저 혼자 잠시간 뛰는 거 알아?"
"숨을 쉬지 않아도 심장은 뛴다고?"
"그러니까 심장이 멎는 것보다, 숨을 쉴 수 없는 게 더 슬픈 일이 아닐까."
수연과 단, 수연과 정연, 수연과 민아, 그리고 수연과 단과 은이의 이야기.
어찌도 이렇게 어지럽게 엮인 운명들인지 모르겠다.
몰랐다면 모를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숨었다 싶으면 다시 나온다.
기생이었던 어미를 잃고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약재로 얽힌 단과 수연과 은이는 한 식구가 되었다. 그나마도 연결고리라 할 것이
없었을텐데 동생 은이로 인해 한 식구가 되었다. 향장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잠시나마 잊고, 단이의 의원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던 그때.
은이가 갑자기 시집을 가겠다 했고, 그런 은이를 보내고 나니 단과 수연의 연결고리는 더 희미해졌다. 단이의 마음도 어떤지 알 도리가 없었던
수연이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단이가 수연을 붙잡았고, 괜찮아지겠지 싶었을 때 은이가 사라졌다.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고,
수연과 단은 자신들을 견디지 못해 각자 서로의 삶을 찾아나섰다.
수연과 민아의 만남 또한 우연이었다.
며칠을 굶고, 마포나루에 당도한 수연에게 예조참판의 고명 딸 민아의 결혼식 소식이 들렸다. 그저 일손을 돕고 품삯을 얻을 생각이었는데,
의기소침해진 민아의 모습을 보니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혼인날까지 남게 되었다. 민아의 수발을 들고, 민아의 모습을 꾸며주는 새 정이 들었나
보다.
궁으로 가겠다는 수연의 말에 삐친 민아는 마지막까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듯하더니, 떠나는 수연을 보며 뛰어나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수연과 정연의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어느 추운 날,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정연이, 마침 술을 찾다가 구하지 못해 돌아가던 수연을 보게 되었고. 왜인지 신경이 쓰여
따라나갔는데 신발 한짝을 흘린 채로 쓰러진 여자가 있더라. 그게 수연이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심양관으로 옮긴 수연과
정연은 그곳에서 또 만났다.
이미 두 명의 부인이 있던 정연과, 그래도 마음을 주었던 수연.
두 명의 부인 누구에게도 맘을 붙이지 못했던 정연이었던건가... 그래서 수연에게서나마 위안을 얻었던 걸지도..
수연과 민아의 두번째 만남은 증오였다.
알지 못한 민아의 증오.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 민아는 수연에게 고마움과 그리움이 아닌 증오를 보내고 있었다. 하여, 수연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이 모든 잘못은 자신이 몰랐던 그 글자 하나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그렇게 아끼고, 아껴주던 서방님을 오해로 보냈단 걸 안 민아는 미안함을 눈물을 쏟고 만다.
그리고 수연에게도...
수연과 단의 두번째 만남은.. 사랑은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처음에는 사랑이었고, 이번에는 그리움이었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수연을 죽여야 했을 때, 남몰래 단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어찌하여 죽지 않고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수연을 보았을 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수연과 정연의 두번째 만남은, 행복이었다.
자신을 묶고 있던 고리에서 빠져나와 겨우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랄까.
책의 소제목이 꽃의 향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책을 넘기는 내내 향이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치자꽃, 앵두꽃, 감꽃.
감꽃도 향기고 있고, 호박꽃으로는 쌈도 싸 먹을 수 있었단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얼마나 많은 향기들이 이 안에 들어있을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지고, 은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