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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슬픈 이별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고맙고 속 시원한 이별도 있다. 성대한 송별 파티를 하며 요란뻑적지근하게 헤어지는이도 있고, 누구의 전송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이별하는 이도 있다. 긴 이별이 있고 짧은 이별도 있다. 한번 헤어졌던 이가 멋쩍은 듯이 훌쩍 돌아오는 일은 흔히 있다. 그런가 하면 짤븡ㄴ 이별인 줄 알았는데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일도 있다.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생애 단 한번뿐인 진짜 이별도 있다."
이곳은 인간과 너구리와 텐구가 공존하는 세계다.
아니다. 분명히 인간의 세계인데 어째서 이런것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인간의 세상에는 분명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구리야 그렇다치고, 상상속에서나 살고 있는 텐구가 나오다니 말이다. 시모가모 야사부로는 너구리다. 인간세상에서 인간들과 같이 살고 있지만, 가족들은 분명 너구리이고 숲에 산다. 인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텐구에게 둔갑술도 배웠다. 형들과 동생과 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것은 가족들을 지탱해주고 있던 아버지가 없는 까닭이다. 아버지는 너무나 위대했다. 너구리들의 수장이었으며, 그 누구도 아버지의 큰 그릇은 따라올수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는 위대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어 주었다. 큰 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동생은 순진함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그러니 내가 할 수있는 일은 그저 재밌게 살면 된다였다. 위대한 아버지였기에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없다는 식이었지만 말이다. 둔갑술을 가르쳐줬던 스승님은 멋진 텐구였다. 여자에 빠져 모든것을 잃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 여자는 스승님께 텐구의 기술을 물려받더니 보란듯이 스승님을 뻥 차버렸고, 나는 그 여자와의 첫사랑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야사부로가 이해할 수 없던 한가지는 그렇게 위대했던 아버지가 어떻게해서 인간들의 냄비요리가 됐나하는점이다. 그 이면에는 형제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검은 계획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된 지금 우리 형제가 반격에 나선다!!
위대한 이별 하나가 남은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도 있다.
시모가모 가문을 하나로 이어주는것은 가족간의 사랑도 아니고, 끈끈한 형제애도 아니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 그것이 형제들로 하여금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단결을 갖게 했다. 바보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고,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아끼는 마음도 갖고 있다. 모든것은 위대했던 아버지의 가르침. 그러나 우리는 너구리다. 전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서 보여줬던 그 정신없던 세계가 다시 이곳에 나타나고 있다. 텐구가 나타나서 영역 싸움을 하고, 인간들이 재난에 휘말려 있으면 보란듯이 장난을 쳐서 기름을 들이 붓는다. 너구리들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그들 나름대로의 둔갑술로 여느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기대고 있을곳이 없어진 가족들은 그래도 나름대로 슬픔을 잘 이겨내고 있었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아버지의 죽음에 다른 누구도 아닌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의 검은 손이 있을 줄이야. 이 책에서도 역시 현실에서는 볼 수 없을법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구리의 둔갑술하며, 떠다니는 배들. 하늘을 날아다니는 텐구, 그리고 너구리 냄비요리까지.. 헉! 너구리가 먹는것이었던가...(그보다 읽으면서 이런걸 상상하고 있다니 나도 참..) 재미있는 이야기들 사이에 있는 마지막 반전. 정말 나쁜 사람이 나쁜짓을 한다고 그 얘기가 딱 맞다. 읽다보면 우리의 세계가 보인다. 물론 마지막은 언제나 선이 이긴다지만 말이다.
유쾌한 이야기였다. '매직 리얼리즘' 기법을 구사한다는 작가는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너구리가 주인공인 현대라니.. 만화책에서나 보던 요소들을 책에서도 볼 수 있다니.. 욕쟁이 스승님. 그 스승님께 예의를 다한다고는 하지만 곧잘 찾아오는 한계때문에 점점 스승님과 같은 성격이 되어가는 너구리 ㅋㅋ 정말 재밌는 형제들이다. 현실얘기에 지친 그대들이라면 이 너구리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라고 해주고 싶다. 너구리들과 둔갑하고, 전철이 되어 날아다니는 그들과 함께 도시를 누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