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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오랜만에 바나나씨의 책을 만났다.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씨를 그냥 바나나씨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과일이라서 더 그렇고.. 왠지 이렇게 부르면 더 정감가는듯해서.
처음에 만난 책은 '티티새'였다.
얇고 작은 책이라서 손에 들기에 딱이었다. 친구가 읽어보라고 권해줬던 그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을때.. 뭐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까 싶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책 역시.. 마찬가지다. 한껏 눌러놓은 내 마음을 뒤흔들고 곳곳에 숨어있는 감정들을 건드려서 일깨워 놓았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일상에 지쳤을때 만나면 참 좋을 책들이다.
-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행복이란 형태가 좀처럼 없다고 생각해 왔다. 어릴 때부터 손님을 대하는 장사를 하면서 많은 살마들의 눈물을 보고 배운 것이다. 삶에는 엇갈림과 슬픔과 고요한 행복만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거푸 나타날 뿐이다.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살아온 그녀. 유일한 버팀목이던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즐겁던 가게일은 그전만큼 집중할 수 없었고, 순간순간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점장이 오너와 상의를 했다며, 당분간은 다른곳에서 일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에이코는 자신은 정말 지금하고 있는 일이 좋다고 거절을 하고.. 그러자 그럼 옮기는 것 대신에 오너 집의 가정부로 일하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들어온다. 단순한 일이고, 딱히 손이 가지 않는 일이기에 쉬이 수락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그곳에서 그녀는 두마리의 동물들과 곳곳에 놓여있는 식물들을 돌보며 안정을 느끼고.. 집안의 소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는 오너에게 자꾸만 따스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그런 감정들을 깨달으면서 사모님에 대한 실망감은 더해만 가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것들을 느꼈을까..
읽는 내내,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차 한잔과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읽었으면 하고..
타히티의 맑은 하늘과 푸른색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도 문득 지금 이 생활을 던져버리고 싶어졌다. 딱히 계기가 있어야만 여행을 가는건 아니지만.. 한번쯤은 그런 계기가 찾아와도 좋은게 아닐까 하면서..
그리고 또 생각난것은..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이라고 하는 사람을 한번에 찾아낼수는 없는 것일까하는 거였다. 그런 사람은 왜 돌고 돌아서 힘겹게만 찾아야 하는것일까... 그럼에도 만날수만 있다면 하는 희망이 있기에 순간을 견디는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특별한것없이 담담하게 쓰는것 같은데도, 읽고있는 순간마다 잊고 있었던 것들을 알려준다.
- 많지는 않아도 진짜 친구가 몇명 있었다. 내 고집과 어눌한 감정 표현까지 모두 헤어리고 갖가지 친절한 말을 해 주는 친구들이.
하지만 결국 친구로는 부족하다. 친구들은 말과 행동과 자세로 위로해 주지만, 그런 때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대로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족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몸 냄새와 일상의 리듬을 알고 있고, 피부로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무심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몸을 담고 싶었다.
연애이야기 같지만 단순하게 그것만 표현하고 있는것이 아닌 이야기들.
바나나씨의 이야기에는 항상 일상들이 녹아있는 것 같다. 책을 보다가 눈을 들어 잠시 바깥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 그런것도 있었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들. 특별하지 않기에 더 가슴에 담아둘 수 있는 그런 바나나씨의 이야기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