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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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발걸음은 무거워집니다. 

삶의 날은 무뎌지고, 청춘의 열정은 식어만 갑니다. 

서른이라는 고개를 넘어, 청년이라는 말도 식상해져가는 요즘!


책 하나를 읽었습니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생경했습니다.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외치는 요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저자는 낯선 나라에, 낯선 길에 자신을 던져 놓습니다.


산티아고 900km 걸음길,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한 발자국 건너있기로 작가는 결정합니다. 참으로 외로웠던 길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길인 것 같습니다.

추위에, 배고픔에, 코골이에 그리고 무릎이 알려주는 늙음의 신호에 이르기 까지

일상에서 몰랐던, 일상에서 깨닫지 못했던 삶의 빈곤함이 한꺼번에 몰아쳐 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늙어서 고생은 환불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살짝 물음표 섞인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작가는 멈추지 않습니다. 

걸음걸음 산맥을 넘어, 뙤약볕 쏟아지는 광야를 걸어

그 속에 점점이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붙입니다. 


‘세르주’라는 청년이 나옵니다. 수레가득 살림살이가 가득합니다.

걷기에도 힘든 길에, 두발수레는 과연 약일까요? 독일까요?

하지만 수레를 끌고 가는 그의 걸음에 망설임은 없습니다.

도리어 와인 한잔의 알싸함을 나눠줄 줄 아는 여유가 그에게는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여유를 말한 뒤에 나눔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길 위의 여행자는 나눔 속에 여유를 먼저 말합니다.


지나가는 길마다, 죽음이 피어있습니다.

이 길을 걸었던 순례자, 여행자들의 삶의 종착지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몰랐을 지도 모릅니다. 

이 길의 끝이 아닌 중간에서 마침표를 찍게 될 줄은 말입니다. 

하지만 성자의 유해가 지나간 길 

산티아고 순례길은 죽음의 공평무사함을 증언합니다.

성인에서 범인에 이르기까지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을,

길 위의 무덤들은 오늘도 묵묵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행자에게 삼시세끼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그의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행자는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돈보다 값진 화폐가 있습니다.

바로 웃음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도 하지만

웃음 하나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늦은 저녁, 문 닫은 외지의 식당, 나그네에게 배고픔은 빚보다 큰 고통입니다.

하지만 웃음 하나로 맥주 하나와 오믈렛 그리고 샌드위치를 얻어내는

작가의 유쾌함은 그만이 가진 값진 여행자수표 일겁니다.


좁은 방안에서 세계를 만나는 여행자가 있습니다.

엘리아스 깔보씨입니다. 

그의 여행은 자신의 발이 아닌 타인의 발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형형백백의 사람들, 

그들의 옷을 맞추며, 순례자의 삶을 박음질하며

오늘도, 내일도 이야기 비단을 만들어가는 그의 삶은 즐겁습니다.

가게가 작아서, 걸어 본 나라가 적어서 불행할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행복하기 위한 그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작가가 만난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자연을 벗 삼으며, 말없는 것에서 말을 끄집어내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능일 것입니다. 

조각상을 보며, 풀을 보며 그리고 강을 보며, 

생각의 바다에서 낚아 올린 그의 글은 

그래서 담백합니다.


스스로를 용서해라.

기울어야 사랑이다. 

바람이 아니라 바닥의 흐름을 주시하라.


당연하면서도, 잊어버렸던 다짐입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잊어버린 다짐을 다시 찾는 길

그 길이 어쩌면 홀로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침내 종착지에 다다랐습니다.

성자의 죽음이 다다른 곳이지만 

산자의 생명이 다다른 곳이기도 합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여행

비우기 위해서였지만, 채워갔던 여행

그래서 산티아고 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마땅히 불러야 할 겁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두발만이 아니라 심장으로 온 몸을 넘어

영혼이 그 대지를 더듬듯이 걸어야 마땅한 길   

그 길이 산티아고 900km 라고....


헤세가 말합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책을 읽은 여기 이 청춘은 말합니다.

내 삶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다면, 떠나자. 그 곳으로....

끝이 아닌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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