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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평점 :
우리에게는 성공한 혁명의 기억이 없다.
멀리는 만적에서 가까이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임계점에 다다른 민심은 언제나 발화가 되었으나
결과는 언제나 새로운 체제가 아닌, 반동의 시대로
돌아간 슬픈 기억만이 남아있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서...
떠오른 첫 글감이다.
흔히 법학을 배우는 첫걸음은 헌법이다.
그래서 1학기 첫 개설과목은
기본권론과 통치기구론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이러한 낯선 학문적 출발에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어지러이 전개되는 한자어 그리고 조문이라는 논리적 체계는
신입생이 넘어야 하는 높은 장벽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똑같이 헌법을 다루고 있지만,
헌법 전문과 조문에 기반한 헌법 정신에 관한
저자의 진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아픈 기억도 있고, 가벼운 자랑도 있다.
그러나 국민이 국민다웁게 만드는 권리장전은
헌법임을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그리고 건국 이후 수명의 권력자를 생산한
우리의 정치 체제에 있어서, 진정한 헌법의 실현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그런 점에서 헌법의 실현을 위한 저자의 주장은
경제학을 전공한 자신의 이력처럼 흥미롭다.
바로 현재의 상황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라고 하기에는 70년, 80년 길거리를
전진하고 외쳤던 수많은 국민들의 흘린 피가
우리의 과거를 적신다.
하지만 오늘날 진보의 위기를 살펴보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민주주의라는 과실을 따먹은 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외피만이 민주주의일뿐 실상
텅빈 자유, 인권, 평등의 가치를 쫓아오지는 않았는지...
특히나 그것은 90년대 민주화 이후
소수의 운동가들만의 가치로 전락되고
자유, 인권, 평등은 일상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누구도 대중의 무지만을 꾸지랄 뿐
대중을 일깨우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7년 우리는 그 동안의 역사적 진보를 뒤로하고
물질적 성공만이 행복의 가치로 전도된 현실에서
그 누군가를선택하게 된다.
경제대통령을 말하던 그는 실패했다.
복지대통령을 말하던 그는 부인했다.
통일대통령을 말하던 그는 부정했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절차적 당위성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역대 최악이든 최고의 지도자이든
그 책임도 함께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투영된 시대적 가치를
조금은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도구가
되도록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자란다고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이 있다.
4.19와 5.18을 거치며 뿌린 피를
이제 우리는 헛되게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