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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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이 끝난 뒤 무기력에 빠졌다.

일상의 무기력이 아닌, 정신의 무기력이라고 할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회의 그리고 희망의 부재에 대한 

절망이라고 한다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까? 


어찌되었든 총선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진짜 밀림 속의 생존경쟁이 

펼쳐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FTA,, 의료민영화, KTX민영화, 투기지역해제, 갯벌민영화

우리은행 매각, 한중FTA 개시선언에 이르기까지

전리품마냥 속도전으로 실행하는 그 모습은

자뭇 섬뜩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우리사회는 어디로 가는걸까?

이제 '시민'이라는 연대는 깨어지는 걸까?


그런 와중에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팜플렛 '분노하라!'를 읽었다.

내용은 명쾌하다.


"불의에 분노하라. 그것이 청년이다." 라는 간명한 메세지

하지만 이것을 남긴 스테판 에셀의 삶은 길고도 평탄치 않았다.


아흔 다섯이라는 인생의 황혼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불의에 대한 마음 속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온 그는

레지스탕스로 불리는 세계2차대전시기 프랑스 저항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으며, 나치에 붙잡힌 뒤,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천운으로 살아남았다. 그 뒤로는 UN 세계인권선언 제정에 참여하여, 보편적 인권에 대한 확인과 인권 침해에 대한 개입을 선언문에 명기하여, 국가보다 앞선 인권의 소중함을 전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외교적, 정치적 업적보다 더욱 감명 깊은 것은 나이에 녹쓸지 않는 실천적 양심이다. 

 

특히나 전세계적 침묵의 카르텔이 성립되어져있는

중동문제에 있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적 억압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점은 그가 어느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익을 따지기 앞서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저항가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더구나 분노의 이면에 있는 창조적 가치에 주목하여,

인류의 긴 역사에 있어서 비록 짧은 반동은 있을지라도, 

반드시 인류의 역사적 진보는 계속되어진다는 것을 

그는 신뢰하였다.


그래서일까? 

노구에 이르기까지, 건강의 비결을 

그는 분노와 기쁨의 힘을 꼽는다.

분노와 기쁨이라는 극단의 이미지 속에서 

우선 그가 말하는 분노의 힘은 분노해야할 일에 분노함으로서 

자신이 서있는 곳을 지킬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복도 지켜지며, 이것은 개개인의 몫이기도 하지만 범인류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류의 전진하는 역사에 대한 신뢰는 나치의 몰락, 식민지의 해방, 독재자의 죽음을 통해 언제나 이루어졌음을 상기시키며, 당면한 인류의 문제도  70억 인구의 두뇌로 해결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다고 한다.


잠시의 실망이었다.

하지만 더 큰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일 수도 있다.

보름의 작은 실망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

더 큰 역사적 전진을 위한 찰나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후련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반드시 그리되리라 생각되어진다.

더불어 내안을 가득 채워줄 그 분노의 힘!은 

그 뜨거움이 식지 않도록 열심히 앎을 깨쳐가는 길 

그리고 그 앎을 실천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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