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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코넌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를 읽다보면,
그 눈부신 추리력이 경이로울 떄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이 잡혀가는 모습에서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오늘도 결국 정의가 승리했구나.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을 재구성한다.
아니 재해석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의 숨겨진 속살까지 드러내어,
과연 정의가 무엇인가? 라는 담론을 펼쳐낸다.
그래서 머리가 아파온다.
게다가 이것은 대개 소설이 아닌 실제에 기반한 이야기들이라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면서 남겨지는 질문
과연 정의의 신은 진짜 장님인가?
그리고 그 칼은 누구를 위해 쥐여져 있는가?
그러한 관점에서 누구나 틀릴 수 있다라는 전제는
묘한 뉘앙스를 가진다.
과연 불완전한 인간이 불확실한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가?
물론 흉악한 범죄자에 대한 단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범죄자에 대해 처벌로서 가지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리고 그 범죄라고 지칭되는 사회악으로서의 판단은
대개 상대적이다.
책에서의 표현에 따르자면, 피레네 이북과 이남에서의 차이처럼
장소와 시간 그리고 문화에 따른 법해석의 차이는 분명 크다.
당장 우리의 지난 70년대 있었던 긴급조치와 같은 법은
오늘에 있어서는 코미디지만, 당시에는 지엄한 법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믿는 확신이란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불완전성이라는 지반위에
시간과 장소에 따라 흔들리는 건축물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여기에 대한 정답으로 책은 '고민'을 대답해준다.
아니 세글자의 수식을 더하여 '치열한 고민'을 말해준다.
흉악범에 대한 사형은 정당한가?
거세하면 성범죄가 사라지는가?
아동성폭행범의 맨얼굴
연쇄살인범에게도 관용이 필요한가?
........
어쩌면 시시비비를 묻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이면에는 은폐된 범죄와 억울한 누명의 딜레마
화학적 거세가 가지는 불완전성 그리고 인격의 침해
유아기 성학대가 가져온 왜곡된 자의식이 있다.
물론 이것이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범죄라고 부를 수 있는 인류의 죄악에 대하여
이제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나?
무엇이 그것을 범죄로 부르게 되었다.
그것이 복잡하기에 정의의 신은 눈을 감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