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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강상중 지음, 오근영 옮김 / 사계절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한국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 한국인들은 어떻게 국가 없는 나날을 견뎌왔을까.
강상중은 자신의 어머니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다.
<어머니>는 국가가 없는 세계에서 철저한 각자도생으로 살아남은 한 재일한국인 여성의 이야기다.

흔히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그 문장의 표본을 보여준다.
그의 어머니는 열여섯에 나라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철을 주운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심지어 갈 곳이 없는 같은 조선인 출신 과부, 이와모토 아저씨까지 떠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녀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말을 중얼거리거나
어릴 적 살던 고향인 진해 산천에서 부르던 "한숨 같은 노래"를 중얼중얼 읊조리고는 했다.
그러한 말들은 타향살이를 견뎌내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배움이 얕은 자신을 한탄하곤 했는데,
자신의 '난민 같은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단지 배움이 얕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엄연히 태어난 나라가 있는데 나라가 없는 국민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나고 자란 진해가 바로 지척인데 갈 수 없는 땅이 되었고, 이미 몇십 년을 살아온 일본에서는 '조센징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다니는 개인의 삶은 이토록 한스럽다.
역사는 돌고 돈다.
70여 년 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지난하게 살아가던 강상중 어머니의 삶은
2014년 4월, 국가에 의해 아이들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에게 바통을 넘겼다.
분명 헌법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1900년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안 되었고,
2014년의 국가는 돈과 탐욕에 눈이 멀어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
그들은 생존이 기본 과제인 삶에서 실체 없는 국가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짜피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살던 국가따윈 무시하고 각자도생으로 발길을 옮기면 그만일까.
강상중 어머니의 지난한 삶이 그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국가라도 그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결국 비극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타지에서 눈물 흘리던 재일한국인의 삶,
세월호와 함께 잠겨 사라진 300여 명의 삶,
개인의 희생은 이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우리는 탐욕으로 침몰하는 국가를 똑똑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들이 아이히만이 되는 모습마저 잊지 않고 기록해내야 한다.
그리고 자꾸만 그들의 탐욕에 저항하고 모여 외쳐야 한다.
무너지는 국가를 바로잡는 길을 그것밖에 없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비극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단, 우리가 눈을 감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