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사회학 - 무엇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하인츠 부데 지음, 이미옥 옮김 / 동녘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우리는 모든 선택에 리스크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30여 년 동안 공부하고, 30세부터 20여 년 동안 일한 뒤, 50여 세에 정년을 맞아 100세까지 살아가야 한다. 화이트칼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간이 20년뿐인 것이다. 심지어 30세에서 50세까지, 20년 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내 월급에는 취직되기 이전의 내 삶, 50세 이후의 내 노후, 심지어 내 자식의 미래와 내 위 세대인 부모의 노후까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러니 우리는 돈을 벌기 전에도 불안하고, 돈을 벌고 있을 때도 불안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지나도 불안하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불안의 사회학>에 나타나는 사회는 불안으로 만연해 있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개인의 불안이 언급된다.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분명 독일의 사례이건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복지선진국으로 명명되는 독일임에도 중산층은 중산층에서 이탈될까봐 불안에 떨었고,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보다 밀려나 건강 등을 잃고 일할 수조차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까봐 불안해하고 있었으며,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은 관계가 허물어질까봐 전전긍긍했고, 개인들은 인터넷에 내 모든 개인정보가 떠다니고 국가가 나를 사찰할까봐 걱정했으며,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위협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책에는 불안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이 우리가 불안을 제거해야 할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혼자 공포에 떠는 것을 넘어, 타인까지 해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불안은 '북한과 통일하면 우리 세금이 무한정 들어간다', '제3국 사람들이 우리 일자리를 다 빼앗아간다'부터 흔히 일베하는 남자들의 여성혐오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개인을 파편화시키며,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 사이에서 누군가는 사회적 이익을 가로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주는 모 집단이 될 법하다.


불안이 이미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라면 그것을 사회가 존재하므로 생산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불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불안이 어떻게 생산되고 또 소멸하는지 들여다보라고 한다. 이는 즉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통제한다면 좀더 긍정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통제할 수는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불안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는 법은 사실 꽤나 미약하다. 타인은 원래부터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안정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불안 속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것 등인데, 이것으로 어떻게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안을 준 것이 '타인'이듯, 불안을 제거할 방법 역시 '타인'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타인을 적으로 간주했을 때는 분명 불안을 주는 존재이나, 그를 공동체의 한 사람,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았을 때는 비로소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언제나, 정답은 공동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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