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필립 그랭베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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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주 절친한 꼬치친구 3명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방과후에는 한동네에 살았기때문에 늘 같이 붙어 다녔고 특히 일요일이나 방학때는 아예 합숙을 할 정도로 붙어 다녔지요. 밤 바닷가 조그만 선창부두에서 4명이 나란히 드러누워 하늘의 별자리중 이름이 멋있는 페가수스를 우리 모임의 명칭으로 하고 회장도 정했습니다. 어른들은 '너희들! 지금 그렇게 죽고 못살지만 나중에 커봐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며 혀를 끌끌 차시기도 하셨죠. 어린 우리들의 마음은 도대체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나중에 말씀이 틀리다는걸 반드시 증명해 보일것이라 자신에 찼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지나 각자의 길로 나서고 차츰 험한 인생의 파고를 넘나들면서 정기적인 만남도 적어졌고 이기심이라고 해야하는지 어쩔수 없는 상황탓이라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차츰 서로에 대한 불신도 싹텃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의 두배수가 지나고 나니 이건 아예 친구라는 개념조차도 모호해지는것 같았지요.

 
만도와 루 이 두사람도 그렇게 시작된 친구였습니다. 만도는 개성이 뚜렸했으며 행동도 완강했습니다. 이에 반해 루는 겁이많고 부드러우며 이해심이 많은 아이였지요. 두사람의 그늘은 동네 패거리들이 만도를 쫓다가 같이 도망가는 루를 붙잡아서 만도와의 관계를 묻자 자기는 모르는 아이라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만도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자를 만나고서도 여자가 루를 경시하자 미련없이 차버립니다. 만도에게 있어 루는 샴 쌍둥이와 같은 존재이고 죽어서도 같이할 영원한 동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루는 자라면서 만도 못지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만도는 이를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일기장에 이렇게 써 놓았지요. "루는 줄곧 다른데서 시간을 보낸다. 약속을 세번 깨면 그와 결별이다"

 
이런 압박에 루는 점점 만도와의 만남이 줄어 들었고 이를 감내하지 못하는 만도는 이윽고 결별 통지를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 만도에게서 전화연락이 옵니다. 아주 초조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만나자고 합니다. 만도는 정신분열증을 보이며 자살의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않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루에게 같이 있어달라고 합니다.  함께했던 지난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느정도 이성을 찾은듯이 보이던 만도는 루에게 루와 지나왔던 날들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장을 건네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지요.
"너의 죽음이 내 변신을 완수하는데 불가결한 건 아닐까 싶어. 아니면 우리 사랑을 끝까지 밀어 붙여야 하는지도 모르지. 어느쪽이 됐건 그것만이 내가 체험하는걸 네게도 나줘 줄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이 들어."


필립 그랭베르는 소설가이자 정신분석가이지요. 그는 미친사람의 경우 어느순간 어떤 원인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미친사람의 인자를 속에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도의 경우가 그런경우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봤을때 루와 만도는 악연이라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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